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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un 22. 2024

자두 이야기

'자두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저자가 사는 마을 형 집의 바로 옆에 자두밭이 있다. 300평 규모에 150여 그루의 자두나무가 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 밭은 형이 관리하면서 농사를 지었지만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고 한다(형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밭에 자두나무를 심었는데 밭이 경매처분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자두나무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안타까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두밭의 새 주인은 자두를 수확할 때마다 형에게 얼마간 자두를 선물했다고 한다. 저자도 작년에 형 덕분에 자두를 맛볼 수 있었다. 시중에서 파는 자두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과육이 풍부하고 당도 또한 높았다. 껍질이 어찌나 매끈하고 그 맛이 달콤하여 한 두 개로는 양이 차지 않고 최소 열개는 게눈 감추듯 먹었다금년에는 자두를 일정 분량 구입하여 식구들이 먹기도 하고 친한 지인들에게 선물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사현장을 누비는 바쁜 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자두 좀 따다 먹어!" "형, 올해는 사다 먹으려고 했는데..." 자두밭 주인이 사다리를 딛고 자두를 따다 그만 떨어져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출하를 위해 자두를 따던 자두밭 주인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싶다. 힘들게 보살피고 가꿔 올해는 유달리 탐스럽고 상품 가치가 높은 자두가 열었는데... 자두밭 주인은 형에게 자두 처분에 관한 모든 권한을 주었다. 자두밭 주인은 이왕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바에는 원주인에게 선심을 쓰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자두밭에 도착해 보니 이미 몇 사람이 자두를 따고 있었다. 자두밭은 주인의 정성과 부지런함으로 풀 한 포기 없이 정리정돈이 잘되었고, 그렇게 익은 자두는 진한 보랏빛을 띠며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두밭 주인의 불운으로 자두밭을 누비며 자두를 스스럼없이 딴다는 것이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다(오래전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돈을 내고 체리를 딸 때가 생각나며, 이 세상에 가장 마음이 편한 것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도 자두를 서너 개 맛본 뒤 자두를 따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씨를 밖으로 분리한 뒤 씹는 맛이 달고 촉감도 부드러웠다. 난생처음 자두밭에서 자두 따는 체험을 했다. 자두밭에서 질리도록 자두를 따고 자두에 취했다. 이제는 자두 파는 가게를 지나도 입에 도는 군침의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생겼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가야 할 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표준어 규정에 따르면 '오얏'이나 '오얏나무'는 쓰이지 않게 된 사어(死語)다. ‘자두'나 '자두나무’가 표준어다. ‘오얏’은 ‘오얏 리(李)’ 등의 한자 훈에 남아 있다. 또한 '자두꽃'의 이화(李花)와 '배꽃'을 나타내는 이화(梨花)를 구별하는데도 주의가 필요하다. 한글 '이화'만 놓고는 자두꽃인지 배꽃인지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려 시대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에서 이화는 자두꽃일까 배꽃일까. 이화(梨花), 즉 배꽃이다. 우리말은 한자어와 함께 의미를 파악해야 그 맛이 제대로 알고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자두가 보랏빛이 나는 복숭아를 닮았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자도(紫桃) 역시 사어가 되었다(여기서는 문맥에 따라 오얏나무 또는  자두나무를 사용할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자두는 일반 과일하고는 이미지가 다르다. 아마도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나는 자두꽃이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桂)의 성씨인 이(李, 오얏나무 '이')씨를 나타나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여서 그럴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자두꽃(李花)이 별다른 대접도 받지 못하고 상징물로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 19세기말 고종이 대한제국(1897~1910)을 선포하고 왕실의 문장(紋章)을 자두꽃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자두꽃은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었다. 고종은 덕수궁에 지은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중앙에 자두꽃 문장을 새겼다. 조선 왕조의 본가(本家)이기도 한 '전주이씨종친회'에서 사용하는 종문(宗紋) 역시 자두꽃이다. 대한제국시기에 설립된 학교의 이름 중 상당수는 교육구국(敎育求國)의 야심 찬 의지를 표방한 고종 황제가 하사하였거나 황실 인사와 관련된다. 보성전문, 이화학당, 배재학당, 양정의숙 등. 고려대학교의 전신은 보성전문학교였는데 보성(普成)이란 학교명은 고종이 설립자 이용익(李容翊, 1854~1907)에게 하사하였다. 이용익은 고종의 배려에 대한 감사와 보성전문학교의 특별한 위상을 표현하고자 황실의 문장인 자두꽃을 학교의 상징으로 채택했다(오늘날 고려대학교 본관과 중앙고등학교 정문에서 자두꽃 문양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참외밭에서는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 때문일 것이다. 이 속담의 원문은 길기도 하지만, 어려운 한자어도 보인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다. 어릴 적부터 이 속담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남에게 의심살 만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교육받았다. 고향 참외밭에서 서리(떼를 지어 남의 과일곡식가축 따위를 먹는 장난)를 해보았지만, 자두밭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이 속담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저자는 자두밭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번에 자두밭 주인의 통 큰 배려로 자두를 따면서 속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른의 키 높이에 자두가 달려있어 손을 뻗기만 하면 딸 수가 있었다. 괜히 자두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친다면서 손을 머리 위로 올리다간 영락없이 자두를 딴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자두나무는 이 씨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심한 박해와 핍박을 받았다. 고려 시대에는 저주받은 나무였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도선비기(道詵秘記)에는 500년 뒤 오얏 성씨(李)를 가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설, 즉 목자득국설(木子得國說)이다. 고려 왕조에서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한양에 오얏(李=木+子, 이 씨를 가리킴)나무를 심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 베었다. 오얏나무(자두나무)를 베어버림으로써 왕기(王氣)를 누르고자 함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는 한양에 벌리사(伐李使, 오얏나무 벌채꾼)라는 특수한 관직을 두고 자두나무를 베개 했다. 왕조 시대에 그것도 나라가 어수선하고 민심이 왕에게서 떠나면서 국운이 쇠락하게 되면 왕권을 지키고 왕실의 권위를 내세우는 자들은 과거 적 예언이나 구전으로 전해져 온 전설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서로운 새(鳥) 봉황이 내려앉은 곳에서 왕이 나온다는 전설에 솔깃하여 봉황이 머물기 좋아하는 오동나무, 그것도 벽오동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린 여수 오동도(梧桐島)에 오동나무는 보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고려 말 조정을 쥐락펴락했던 요승 신돈이 했던 짓이다. 


과일을 평가할 때, 과진이내(果珍李柰)이라는 말을 한다. 과일 중에 보배는 자두와 능금이라는 말이다. 옛사람들은 과일의 종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고 재량종 과일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에 자두와 능금을 최고로 쳤다. 그래서 桃李不言, 下自成蹊(도리불언, 하자성혜)라는 말이 생겼니 보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지 않고 널리 알리지도 않아도 그 아래에 길이 생긴다'.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의역하면 '덕이 있는 사람은 일부러 자랑하지 않아도 많은 이가 찾아와 따른다'라는 말이다.


저자가 복숭아와 자두와 관련하여 좋아하는 말은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다. 오늘날 이 말은 제자나 후배가 천하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훌륭한 제자나 후배를 많이 두었음을 칭송하고 축하하는 말로 쓰인다.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과일을 복숭아와 자두로 꼽듯이 도리(桃李)는 훌륭한 제자나 후배를 뜻한다. 교직에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저자가 바랄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도리만천하'가 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자두를 따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과일 중에 과일로 쳤던 자두에 대한 얽힌 사연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과일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할까. 


저자는 배나무밭에 만발한 배꽃 사이로 보름달을 본 적이 있다. 하얀 배꽃에 비치는 달은 하얗게 보였다. 황홀지경도 잠시였고, '아, 세상은 어떤 중간 매개체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형체가 달라지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년 봄 자두나무에서 핀 다섯 장의 자두꽃잎을 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흥분된다. 배나무의 이화(李花)와 자두나무의 이화(李花)에 파묻혀 한 세상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싶다. 부상으로 입원 치료 중인 자두밭 주인의 깊은 배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박상진. (2020). 우리나무의 세계. 파주: 김영사.

오수형. (2009). 동아일보. [한자 이야기] 桃李不言, 下自成蹊. 9월 26일.

정한솔. (2019). 고대신문. ‘보성에서 고려까지’ 114년 역사의 초석을 다지다.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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