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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필요한 것

③ 비뚤어진 편견을 버리는 것

by 염철현

차별과 관련하여 유명한 실험이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이 커튼을 치지 않고 음악 실기 시험을 본다. 평가자는 백인들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백인 평가자들은 백인 수험생보다 유색인 수험생에게 낮은 점수를 주었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종에 따라 점수가 정해졌다.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이 초래한 결과다. 잘못된 편견은 성차별로도 이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오케스트라 단원은 대부분이 남성이었다고 한다. 특히 관악기 부문에서 여성 단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디션에서 칸막이를 치고 이름 대신 수험번호만으로 심사한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합격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편견이 개입될 여지를 제거하게 되면서부터 여성 관악기 연자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만약 누군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보는데 그 시험을 평가하는 평가자의 가슴에 비뚤어진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면 그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이고, 그날은 그의 인생을 망치는 날이 되고 말 것이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움을 스스로 짓밟고 추락시키는 괴물에 다름 아니다. 우리말 중에서 '편'자로 시작되는 단어치고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은 거의 없다. 편식, 편 가르기, 편파, 편향, 편집증... 인류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개인이나 집단의 편견이 모여 결국엔 인종차별이나 대학살로 이어진 경우를 보게 된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 백인의 황화론(黃禍論)에 따른 황인종 배척,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색인 차별은 편견의 결과물이다.


2025년 11월 7일 제임스 왓슨이라는 천재과학자가 97세로 사망했다. 왓슨은 유전 정보를 담은 디옥시리보 핵산(DNA)이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내, 현대 생명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DNA의 아버지’로 불렸던 과학계의 거탑이었다. 1916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왓슨은 15세에 시카고대에 입학하여 22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5세 되는 해에 DNA 구조가 두 가닥이 꽈배기처럼 꼬인 사다리 형태, 즉 3차원의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추론하여 논문으로 발표했다.


왓슨은 유전의 메커니즘과 돌연변이 발생 이유를 밝히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과학계에서는 왓슨의 성취가 없었다면 오늘날 유전자 치료 같은 생명과학의 진보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그를 과학계의 거인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 유전자 지도 프로젝트(휴먼 지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도 왓슨이었다. 과학계에서는 왓슨의 성취를 다윈의 진화론, 멘델의 유전법칙과 함께 생물학의 3대 발견으로 꼽을 정도다.


왓슨에게는 치명적인 신념이 내재하고 있었다. 2007년 영국의 모 신문사와 인터뷰에서 "서방의 아프리카 지원정책은 ‘흑인과 백인들의 지능이 동등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고 믿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필자는 이 대목에서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을 역임한 버락 오마바 대통령을 생각했다.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마바는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을 8년씩이나 했으니 말이다).


그는 여성 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왓슨이 과학계에 남긴 기념비적 성취에는 숨은 동료 연구자 로잘린든 프랭클린이 있었다. 여성 과학자 프랭클린은 왓슨이 DNA 구조를 규명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된 X선 사진을 제공했고, 그 역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왓슨은 프랭클린을 무례하고 비협조적인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했다(왓슨의 성취를 비판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왓슨이 프랭클린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X 선 사진을 도용하여 무단 게재했다고 주장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왓슨과 동료들은 이론을 만들었고, 프랭클린은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 자료를 완성했다). 만약 왓슨이 유아독존이 아니라 약간의 양심을 가진 과학자라면 플랭클린을 폄하 또는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기여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왓슨은 그의 비뚤어지고 편향된 신념을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가 인류사에 남긴 찬란한 업적은 그의 편견이란 커다란 그림자가 빛을 가렸고 불명예를 안게 주었다. 과학계의 거인에서 논란을 일으킨 문제 인물이 되었다. 어떤 연구소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과학계는 천재과학자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잘못된 신념을 가진 천재라도 퇴출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생활고에 쫓겨 노벨상 메달까지 경매로 내놓았다고 한다. 노벨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이러려고 이름을 딴 노벨상을 만들었나'하고 후회했을 법한 일이었다.


왓슨은 97세라는 비교적 장수를 누렸지만 그의 비뚤어진 신념 때문에 그의 생애가 편치만은 않았으리라. 찬란한 과학적 성취조차도 인격적 결함을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인류가 지향하는 인간존엄이라는 신성한 대의명분을 송두리째 흔드는 범죄에 다름 아닐 것이다. 흔히 사용하는 말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말이 있다. 안하무인격의 사람은 눈 아래에 보이는 사람이 없어 교만하고 방자하여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을 업신여긴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신념에 따라 누군 나치가 될 수 있고, 또 누군 쉰들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계의 거장 왓슨이 떠나면서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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