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력(學習力)이란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다. 학습력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적용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주로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으로 수행되는 학습(學習)이 지식이나 기술을 배워서 익히거나 습득한 결과물이라면, 학습력은 그 학습을 하는 데 필요로 하는 능력의 총합이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체 힘을 쓰는데 근력이 필요하듯이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학습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를 결과물로써의 학습에 둔다면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학습환경, 즉 주로 부모의 경제력과 같은 배경 자산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부모찬스라고 하던가. 이런 사회에서 학습은 곧 학력이 되고 학력사회로 즉결된다. 그래서인지 적자생존이 판을 치는 정글처럼 끊임없이 경쟁하고 성취하며 인정받아야 하는 세계에서 학습을 넘어 학습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가방끈이 긴 사람, 즉 학력이나 학벌이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아니라, 가방끈은 짧더라도 그 가방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로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70대의 형은 다루지 못하는 기계가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전답을 포함하여 대단위의 위탁농사를 짓고 있는데 다양한 농기구를 활용하여 그 몫을 해내고 있다. 그의 집에는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 농기계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필자가 언젠가 "형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기계들을 자유자재로 잘 다룰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았더니, "기계들의 작동원리는 비슷하다. 스위치를 켜고 끄고 빨리 가고 늦게 가고 왼쪽 오른쪽 뒤로 가면 된다"라는 답을 했다. 필자는 더 궁금하여 "그럼 기계 매뉴얼을 보면서 작동하냐?"라고 물었더니 형은 "나는 글을 잘 모르지만 몇 번 만져보면 알게 된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낯이 뜨거워졌다. 필자는 우리말과 외국어로 된 매뉴얼을 읽을 줄 알지만, 읽을 줄만 알 뿐이지 사실 기계작동에 필요한 문해력은 한참 낮은 수준이다. 새로 구입한 가전제품을 작동시키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필자에게 그 형이 정말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형의 기계에 대한 뛰어난 학습력이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다. 인공지능은 분명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일의 능률을 높일 것이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일상에서 활용되고 산업계에 적용되면 우리 사회는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넘칠 것이고 범죄는 고도로 지능화될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의 부작용은 대학에서 집단부정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대학교수가, 인공지능시대에는 학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인공지능시대에 인간의 학습력이 더 중요해졌다. 교육기관에서 배우는 지식과 기술, 즉 학습의 결과물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몇 분만에 알아낼 수 있다. 이제는 교육기관과 사회에서는 구성원에게 인공지능 등 고도화된 테크놀로지가 알려주는 지식과 기술의 진위 여부를 식별, 판단, 분석하는 능력,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 협업 및 소통 능력, 윤리적 판단이나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학력사회 또는 학벌사회에서 학습력사회로 거대한 변화(Mega-trend)가 일어나고 있다. 명문대 졸업장으로 평생직장생활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학습력사회에서 수능점수는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하나의 증표에 불과할 뿐이다. 학습력사회에서는 교육기관의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생존을 넘어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학습력이 곧 생존력이라고 하면 지나치다고 할 것인가.
학습사회에서 학습(학력)이 주요 성공요인이고 인공지능이 방해꾼이라면, 학습력을 요구하는 학습력사회에서는 인공지능조차 우군이다. 지식과 정보가 시대의 가치 척도가 된 지식정보사회에서 평생학습을 강조하는 이유다. 앞으로 배우고 익힌 지식에 머물러 있는 사람과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는 사람의 차이는 갈수록 극명해질 것이다.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학습력사회에서도 공자의 명제는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