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예민하고 불안한 기질의 성향이 더욱 짙어질 때가 있다. 문제행동이 내 탓같고, 내가 적절히 엄마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큰 해가 될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의 삶도 챙기며 살면서,
아이의 세계를 책임진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였다.
교육이면 학교 교과 공부만 해도 한국사, 세계사, 영어 듣기,말하기,쓰기 읽기, 수학 연산, 서술형, 사고력, 도형, 심화.. 간단히 읊어도 이 정도인데 경제, 인성, 성, 철학, 예술.. 등 교육만 해도 카테고리가 끊임없고, 아이 성장, 건강 또한 챙겨야 할 방향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Adhd를 가진 나는 하나를 생각하면 끝없는 가지가 이어지고, 맥락 없이 다양한 생각에 잠식되기 일쑤였다.
도대체 엄마들은 이 많은 것들을 다 하며
가계부도 적고, 부모 교육도 가고, 가사에 병원이며 각종 여행, 체험을 다 하는 것인지
완벽주의에 빠진 나에게 엄청난 시련이자
부족한 엄마라는 낮은 자존감에 우울했다.
저 많은 것들을 매일 놓치며, 일상적인 것들 조차 못해준다는 사실이 평균 이하의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질 정도였다. 가끔씩 기본적인 것만이라도 잘하라는 뉘앙스의 조언이 스치기만 해도 나의 발작 버튼이 눌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인 것을 모르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해주려는 나의 마음들을 몰라 주는 것 같아 억울하고 야속할 지경이었다. 대충 육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냐는 발악 비슷한 몸부림이었다.
결국 지나고 보니까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의 한계로 포기하는 게 많아졌다. 말은 포기지만 내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음에 좌절감이 커 상실의 고통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내 무너지는 상상의 미래와는 정반대로 아이들은 스스로 해내는 것도, 가르치지 않아도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졌다. 어쩌면 이미 할 줄 알았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눈에 내가 완벽하지 않고 덜렁거리고 뚝딱거리는 엄마라는 사실 또한 들통이 났다
비장한 다짐에 허세가 들린 엄마는 늘 결과물도 못 내놓는 허당인 엄마인 것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다 아는 아이들이 그런 엄마의 노력을 가상하게, 귀엽게 봐주는 기특한 아이들의 모습이 내게도 보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도 같이 큰다는 말이 이런 걸까. 미련하게도 육아 13년 차에 깨달았다.
내가 해주지 않으면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아이들을 나약하게만 보는 편견이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불안한 시선,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나의 영향력이 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오만함이었다.
내가 있어도, 없어도 너희가 가진 잠재력으로 뭐든 해낼 아이들이다. 그것이 사회적 성공이나 물질적인 부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행복을 찾고, 타인에게도 선할 수 있는 조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지혜가 있을 너희라는 것을 굳게 믿어볼 것이다.
그런 믿음과 지지가 아이들을 더욱 단단히, 올곧게 만드는 진짜 양분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