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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Apr 22. 2024

내가 겪은 가장 슬픈 이야기

마지막 번째 전학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그땐 국민학교 3학년이었을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2학년이 채 되지 않았을 1학년말이 되었을 무렵부터 별거생활을 했다.


그리고 처음엔 외할머니랑 몇 개월 살았는데, 그때  번째 전학을, 그리고 채 두 달도 안 되어 외할머니로부터 친할머니에게 보내지면서  번째 전학을, 그리고 또 아빠가 날 데려가면서  번째 전학을, 그리고 3학년때정식으로 이혼한 후로 엄마에게 보내졌다 하면서 총 네댓 번의 전학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내가 3학년이 될 때까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말이다.


그리고 아빠에게 보내지며 전학을 했을 때, 아빠는 서울 중화동의 방 2칸짜리 반지하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몇 개월을 하루하루 엄마를 보고 싶어서 그리움에 살아야 했지만 아빠나 새엄마 앞에서는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는 엄마 이야기를 하면 속상해할까 봐였고, 새엄마에게는 혼날까 봐 티를 낼 수가 없었으며 내 친엄마에게는 미안하게도 새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비 오는 어느 날, 내 친구들은 전부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내 새엄마는 그럴 리 없었다. 가방으로 대충 머릴 가리고 뛰어가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누군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는데, 뒤를 돌아 얼굴도 보지 않았는데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재성아!!"


뒤를 돌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역시나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바로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체감상 근 1년 만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습한 날이었는데도 엄마의 품에서는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냄새가 났다. 나는 그 품에서 정말 엉엉 울었다.


AI로 만든 가상이미지


"으어어 엉~~  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왔어. 나 엄마랑 살면 안 돼? 응? "


그러고 고갤 들어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는 나처럼 울지 않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그때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의 목소리는 무언가로 막힌 듯한 느낌이었고 한마디 한마디의 말과 말의 간격이 한참이나 걸렸다.


" 우ㄹ...  우리 재성이... ㅇ  우산도 없이...  (꿀꺽) 참. 우리 아들 배고프겠다. 재성이 좋아하는 돈가스 먹으러 가자. "


엄마는 그때 당시 친했던 친구인 희숙이 이모랑 같이 왔는데, 날 진정시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 그 년... 아니 새엄마가 데리러도 안 와? "


엄마는 내 앞에 놓인 돈가스를 대신 썰어주고는 포크에 하날 찍어 날 먹여 주며 말했다. 나는 그 새 돈가스에 팔려 입에 넣고 씹지도 않고 삼키고 대답했다.


" 응? 응. 원래 그래. 엄마! 있지~ 그 아줌마는 매일 포도소주 먹어~"

" 포...포도 소주? "

" 응~ 맨날 맨날 먹어. 그리구 아빠랑 맨날 싸워 "


어린 나이에도 내 눈에 엄마의 표정은 기가 막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계속 새엄마의 흉을 계속 봤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엄마와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단 30분 만에 엄마와 또 헤어져야 했다. 엄마는 새엄마가 내가 너무 늦으면 혼을 낼 거라고 걱정을 하며, 울고 불고 난리난 나를 겨우겨우 달랬다.


" 훌쩍. 나 진짜 엄마랑 살면 안 돼? "

"  어서 가. 새엄마한테 혼나. 응? "


나는 울면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내 눈에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번을 뒤돌아보며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새엄마는 날 유도신문 했다.


" 엄마가 오늘 비 와서 데리러 갔는데 없더라? 비 맞고 왔어? "

" 네? 아...네. 안 데리러 오는 줄 알고... "


아마도 새엄마는 내 표정에서부터 나를 훤히 읽었나 보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새엄마의 말은 아주 날카로웠다.


" 엄마 만났니? "


나는 그 한 마디에 목소리에서부터 떨려왔다. 그때 나는 침착했다고 자부했으나, 어른의 눈에는 그저 어리석은 거짓말일 뿐이었나 보다.


" 아... 아뇨. 혼자 왔는데요? "

" 어떤 여자랑 같이 가던데? "

" 네?? "


그 새엄마의 후벼 파는 말에 나는 더 이상 대답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미 진탕 취해있던 그 새엄마는 알았다며 날 방으로 들여보냈고, 그날 저녁 새엄마는 아빠가 오기 전까지 포도소주를 먹었다. 그리고 퇴근을 한 아빠는 새엄마랑 크게 또 싸우더니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에 본인 옷이랑 내 옷을 담아서 한 밤중에 그 집을 나왔다. 아빠는 갤로퍼 조수석에 날 태우고는 잠을 자라고 청했고, 아빠는 운전석 문을 닫고 나가더니 연거푸 담배를 피우면서 희뿌연 연기를 연신 뿜어댔다.


그 이후, 아빠랑 새엄마는 날이면 날마다 싸웠고 아빠는 더 이상 날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마지막 번째 전학을 가야 했다. 그때가 아마도 4학년 중반쯤 인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때 내 담임 선생님은 이미 재성이가 6번이나 전학을 다녔다며 극구 말렸지만 결국 난 서울 중화동 반지하에서 의정부 가능동 2층으로 엄마에게 보내졌다.


나는 엄마가 웬 아저씨랑 같이 타고 온 근사한 승용차를 타고 의정부로 향했다. 내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너덜거릴 정도였고, 엄마는 의정부로 가는 동안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내게 말했다.


" 재성아!! 집에 가면~ 우리 재성이가 좋아하는 게임보이 사놨다? "

" 왓!! 정말?? 아싸!! "

" 그.. 그리고 재성아..."


그리고 엄마는 또다시 말을 멈칫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 여기 운전하는 아저씨가 이젠 재성이 새아빠야. "


그때 나는 그 아저씨가 내 새아빠라는 사실이 싫거나 하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반응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엄마는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새엄마를 새엄마라고 부르지 않아서, 새아빠를 새아빠라고 부르지 않아서 속상하게 하기는 싫었다. 내 반응이 그러자 엄마는 다행이라는 듯이 또 한 마디를 건넸다.


" 그리고 집에 가면~ 재성이 동생 있어~ 6살짜리. 이름은 황 아무개라고 해. "

" 동생? "


나는 어려서부터 동생이 있는 걸 싫어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이 동생에게 뺏길까 봐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나는 엄마를 속상하게 하기는 싫었기에 어설픈 연기로 좋아하는 척했나 보다.


그렇게 나는 황 씨 성을 가진 새아빠를 아빠로, 그 아빠의 아들인 황 아무개를 동생으로 여기며 마지막 전학 여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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