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병 시 힘든 점을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첫째,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더욱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봐야 하는 것
점점 스스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진 다는 것을 하루하루 목도하는 것.
불과 올 1월 가지만 해도 그때가 제일 힘든 시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엄마의 상태가 그때만큼만 되셨으면 참 좋겠다.
둘째, 병원 외래진료 시 예전에는 보호자 한 명만 동행을 해도 되었지만, 이제는 운전하는 보호자 한 명과 운전 시 뒷 좌석에서 엄마를 케어하는 보호자, 두 명의 보호자가 병원 동행을 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식 두 명이 평일에 휴가를 내야 한다. 병원 진료 일정을 휴가를 내기 좋은 날짜에 맞추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엄마 혼자서도 병원에 다니셨고 요양보호사님과 동행한 적도 있었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신 후로는 자식들이 꼭 동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와 여동생, 남편과 제부가 똘똘 뭉쳐 서로의 일정을 조절하며 잘 대응하고 있다.
여동생이 가까운 곳에 사는 건 아니지만 지방에 살고 있지 않아 병원 동행을 할 수 있고, 부축을 해서라도 엄마가 직접 외래 진료를 가실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셋째,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
비의료인인 보호자가 의료적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로, 환자는 매우 힘들어하고(‘힘들어하다’보다 ‘괴로워하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이러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상황이 더욱 악화될까 봐 응급실행을 택한다. (특히, 주말에는 응급실 외 대안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엄마는 응급실에서의 오랜 기다림과 여러 가지 검사로 피로감과 힘듦을 호소하셨다.
주말 응급실은 대부분의 환자/보호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기다림의 연속이며 그다지 유쾌한 기억들은 아니다.
한 번은, 엄마가 응급실 침대에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식들한테 정말 미안해” 하며 우시기 시작했다. 응급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엄마와 나를 일제히 응시하였다. 여기서 나까지 운다면 신파극의 한 장면이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K-장녀 아니던가! 그것도 아들 없는 딸만 있는 집의 장녀. 그 내공으로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엄마에게 힘이 되는 말들을 해 드렸다.
“엄마가 나 어릴 적부터 피아노 학원이며 영어학원, 수학학원 다 보내주고 대학교도 등록금 걱정한 적 없이 잘 마치게 해 줬고 내가 하는 건 뭐든 응원해 줬잖아.
엄마가 아이를 봐줘서 직장생활도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엄마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건 다 엄마 덕분이고 엄마 지분이 상당해.”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는 대답으로 잠시 안정을 찾으셨다.
모든 병들이 그렇겠지만 파킨슨병은 정말 모진병이다. 인지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제어할 수 없다니…
이렇게 응급실 가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결국, 엄마가 요양병원 얘기를 꺼내셨다...
엄마가 기록한 2022.12.23 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