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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 Jun 21. 2024

웹소설 <데못죽> 속 박문대는 왜 메인보컬이어야 했을까

박문대, 류건우, 러뷰어 이 셋의 만남 기쁘다


결국 빠져버렸다. 몇년 전부터 날 ‘데한민국’으로 잡아가려던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이하 ‘데못죽’) 에. 아직 '데한민국' 국민이 아니던 시절, 이미 데못죽에 빠져있던 주위 친구들은 너도 속절없이 데못죽에 빠지게 될 거야 ... 라며 입덕을 종용했다.

(* 데한민국: 데못죽 세계관 속 남돌 ‘테스타’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을 이르는 말)


출처: 유튜브 '진돌' 느슨했던 일반인 코스프레계에 긴장을 주는 오타쿠 판별법


1n년차 케이팝 고인물로서, 3D 아이돌만 덕질해봤던 나로서는 2D 가상 아이돌은 상당히 낯설었다. 나는 2D 캐릭터를 보면 '잘생겼다' 보다 '잘그렸다' 소리가 먼저 나오는 3D 한정 오타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못죽>을 계기로 나는 이 시선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지금부터 2030 동년배 여성들을 사로잡은 <데못죽>의 인기 이유와 왜 주인공 '박문대'가 메인보컬이었어야 하는지에 대해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표지



간단하게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에 대해 소개해보자.

<데못죽>은 카카오페이지에서 독점공개되어 총 644화로 완결된 웹소설이며, 현재 웹툰으로도 제작되어 시즌 2까지 연재된 상태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데못죽)

작가: 백덕수

웹소설: 총 644화 (완결)

웹소설 연재: 2021년-2023년


작가: 장진, 소흔, 백덕수

웹툰: 총 67화 (휴재 중)

웹툰 연재: 2022년-현재


등장인물
(왼쪽 위부터) 김래빈, 차유진, 이세진 / (왼쪽 아래부터) 류청우, 배세진, 박문대, 선아현


<데못죽> 속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 상장 주식회사'를 통해 데뷔한 7인조 남돌 TeSTAR (테스타) 이다.

테스타의 공식 팬덤명은 Loviewer (러뷰어)이며, <데못죽>을 덕질하는 팬들도 '러뷰어'로 통칭한다.

주인공은 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 금발머리를 하고 있는 '박문대'다.


하지만 박문대의 몸에 들어와 있는 건 진짜 박문대가 아닌 '류건우'다. 자다 일어난 사이 3년 전으로 회귀해 23살 박문대의 몸에 들어온 29살 공시생 류건우는 난데없이 상태창으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웹툰 <데못죽> 1화 속 상태창


데뷔가 아니면 죽음을


난데없이 모르는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회춘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면 사망한다는 '시스템'의 농간을 보여주며, <데못죽>은 시작한다.


▶ 본 포스팅에는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속 결말까지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아이돌 회빙환물의 시작



으레 웹소설의 시작이 그렇듯, <데못죽> 역시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의 규칙을 따른다. 하지만 우리는 <데못죽>의 장르가 아이돌을 소재로 한 현대판타지 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데못죽의 성공 수식 = 2D + 아이돌

<데못죽>은 본래 실존하는 3D 아이돌의 캐릭터성을 차용해 가상의 2D 아이돌을 만들어냈다. 이는 기존에도 존재하던 시도지만, <데못죽>은 가상 아이돌의 팬덤화를 성공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화 지점이다.


<데못죽>의 배경은 현재의 대한민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수많은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는 케이팝 산업이 여전히 부흥하고 있으며, 그 과열된 열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데뷔를 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욕하면서도 보는 사람이 대다수다. 실제로 2016년만 해도, 전국민이 <프로듀스 101>를 시청하며 '내 손으로 만드는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지 않았는가. 비록 시즌 4까지 가는 동안 희대의 투표 조작으로 인해 메인 PD 구속 엔딩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이렇듯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아이돌 팬들에게 재미와 PTSD를 동시에 선사하는 소재다. '내 새끼'를 데뷔시킬 것이냐 마느냐가 내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개인 서사, 방송 분량, 악마의 편집 유무 등을 제하고 나면 그나마 손 쓸 수 있는게 열렬한 홍보와 투표 독려뿐이다. 그래서 팬들은 모금을 해 전광판이나 영상광고로 N번 아이돌 김뫄뫄를 홍보하고, '내 새끼 투표해서 데뷔 시 몰디브 여행권을 드립니다' 식의 보상형 투표 독려를 감행하기도 한다.

(TMI: 나는 실제로 프로듀스101 시즌4로 데뷔했었던 뫄뫄군에게 투표를 했고, 1등 상품에 당첨이 되었지만 … 당첨자 확인 기간이 딱 하루 지난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수령하지 못했다. 뫄뫄쿤 갤러리 일동 여러분, 돈 좀 굳으셨을까요?)


테스타 멤버들


<데못죽>은 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소재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데뷔조에 들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피하고, 등수를 올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무대를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도파민을 자극하기 딱 좋은 전개에 독자들은 빠져들기 시작한다.


<데못죽>의 성공원인에는 익숙한 맛의 KPOP 소재, 치열한 경쟁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사실적 묘사, 입체적인 캐릭터와 이야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더욱 열광하는 이유는 냉철하게 말해서 ‘병크없이 안전한 덕질’에 있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3D 아이돌이 아니라, 마음놓고 덕질할 수 있는 2D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멤버의 동태눈깔이나 ‘아진짜요?’ 같은 태도논란, 그동안 케이팝팬들을 ‘좋아했던 걸 쪽팔리게 하는 놈은 뒤져야 한다’라는 분노 속에 던져둔 각종 성•마약•음주 문제들에게서 자유롭다. (물론 작품 속 이야기가 진행되며 비슷한 병크들이 소재로 사용되지만, 어쨌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데못죽>은 기존 2D팬들은 물론, 반복되는 최애 아이돌의 병크에 지친 3D팬들까지 사로잡는 작품이 되었다.





박문대이자 류건우, 너 뉘기야

(왼쪽) 박문대 / (오른쪽) 류건우


하지만 '병크없는 덕질'은 엄연히 작품 바깥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작품-독자 사이의 문제다. 우리는 작품 내부적으로 어떤 점이 <데못죽>의 매력을 완성시켰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데못죽>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불리는 이유에는 아이돌이라는 소재도, 실제 테스타라는 그룹이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들의 개성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물을 마음대로 회귀시켰다가, 죽으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세계관, 그리고 그를 탄탄하게 구축해놓은 기반에서만 탄생가능한 성장서사에 있다.


그리고 그 성장서사의 중심에는 역시나 주인공 '박문대'가 있다. 대부분의 회빙환물 주인공들이 그렇듯, '원래의 나'는 '자신이 빙의한 자'의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3살 박문대의 몸에 빙의한 29살 류건우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고아, 도와줄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 고등학교 중퇴 등 박문대가 처한 상황을 파악한 뒤 '데뷔 못하면 죽음'이라는 위기를 넘기기 위해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 주식회사' (이하 아주사)에 참가한다. 다행히 류건우는 과거 아이돌 행사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명 '찍사' 였기 때문에 아이돌 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련하게 아주사에 참가하게 된다.


류건우로 살 때는 아이돌 산업 근처의 관찰자이자 팬의 역할이었으나, 박문대로 살 때는 아이돌 산업의 종사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박문대(류건우)는 팬의 입장도 제대로 헤아리고 그에 맞춰 행동할 줄 아는 영리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물론 빠른 눈치와 행동 검열로 인해 악플러들에게는 '음습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때 재미있는 점은 영혼의 본체인 '류건우'가 '박문대'를 굉장히 타자화한다는 점이다. 물론 생판 모르는 남의 몸에 빙의한 거라 당연히 타자화할 수는 있지만, 요지는 박문대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행동으로 이루어낸 성과임에도 제 3자의 시선처럼 바라본다는 점이 재미있는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인은 아마 본체 류건우가 지닌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능력'과 '무덤덤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웹툰 <데못죽> 1화 속 박문대의 능력창


박문대를 바라보는 류건우의 모습은 마치 '부캐 키우기'처럼 보인다. 현재의 '나'이지만 본체였던 '나'가 아닌 것. 껍데기인 육체만 같고 성격과 살아온 인생과 환경은 모두 다른 것. 그래서 본능적으로 타자화가 가능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박문대(류건우)는 상태창을 통해 자신의 외모, 끼가 낮은 것을 확인한 후 스탯을 분배해 올리기도 하고, 아주사 참여 시에는 편집 방향을 생각해 행동을 치밀하게 계산하며 엄청난 메타인지를 보여준다. 진짜 게임을 하듯이 말이다. 결국 류건우는 '평범한 공시생이던 내가 아이돌 멤버가 되어버렸다' 같은 어느 웹소설 제목처럼 박문대를 어엿한 아이돌 그룹 '테스타'의 메인보컬로 만든다.





박문대의 포지션은 왜 메인보컬이어야 했을까


류건우가 빙의한 박문대는 아주사 시작 당시 '보컬' 포지션으로 들어왔다. 이후 차근차근 스탯을 쌓아 가창 실력을 높이고, 테스타 데뷔 후에는 공식 메인보컬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매우 영리한 시도이자 작가의 치밀한 계획처럼 느껴진다.


메인보컬 포지션 설정에서 주목할 점은 ‘아이돌의 중심은 여전히 노래’라는 논리다. 아이돌이 퍼포먼스 중심형 무대를 한다는 이유로 아티스트와 비교되는 일은 이미 흔한 고정관념이다. 그걸 깨는 건 실력이다. 그렇다면 무슨 실력? 춤 실력? 아니다.


흔히 실력파 아이돌은 '가창 실력을 기반으로 퍼포먼스까지 잘하는 사람'으로 일컫어 진다. 박문대는 이 지점을 명확히 꿰뚫고 있다. 아이돌이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방법 역시 근본적으로 '노래'다. 즉 아이돌의 수단은 노래 → 노래의 중심은 가창 → 그걸 발전시켜 박문대는 메인보컬 포지션으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진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게 말이다. 사실상 어느 분야에서든지 대체 불가한 인력이 된다는 것만큼 좋은 특성은 없다. 그러나 그 분야가 특히나 매력으로 먹고 사는 아이돌 산업인 만큼, 박문대는 굉장히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물론 아이돌의 기본은 외모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 역시 존중하며, 상당 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외모가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아도, 매력 싸움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것이 아이돌이라는 존재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


테스타 멤버들


데못죽 세계관 속 테스타는 실력파 아이돌로 그려진다. 자체제작 프로듀싱, 다채로운 컨셉, 멤버 개개인의 개성 다 좋지만 실력파 아이돌의 기본인 가창을 잘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박문대는 그 중심이다. 이기기 힘든 서바이벌도 노래를 통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데뷔 이후에도 스탯을 S까지 찍으며 그야말로 ‘노래로 알박기’를 시전한다.


(왼쪽) 박문대 / (오른쪽) 청려


이는 주인공을 배제시킬 수 없는 절대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예로 청려의 문대 집착이 있다. <데못죽>에는 테스타 멤버들 말고도 주요인물이라 할 수 있는 '청려'가 등장한다. 청려는 테스타의 선배 가수이자 보이그룹 '브이틱'의 리더로, 박문대의 정체를 의심하는 또 다른 회귀자다.


현재 브이틱은 메인보컬이 사고를 쳐 탈퇴한 후 그의 빈자리를 나머지 멤버가 메꾸고 있다. 청려는 박문대의 보컬 실력을 눈여겨 보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박문대를 데려가려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문대의 입지는 단단해지고, 필요성은 증가한다.


"그래서 매번··· 노래 잘하면서 제정신인 어린놈 찾는 게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216화, 청려


몇 번을 회귀한 청려도 가창 실력을 B+ 이상으로는 올리지 못했으니, 박문대 같은 메인보컬 롤이 탐났을 만도 하다.





[속보] 박문대 서술 트릭에 또 속았다 ... '피해자 속출'


마지막으로 <데못죽>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을 짚고 마무리 해보려 한다. 바로 [박문대의 서술 트릭]이다.


웹소설 <데못죽>에서는 박문대(류건우)의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이 번갈아 서술된다. 주로 박문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전지적 작가시점은 나레이션처럼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 '박문대'의 눈으로 작품 속 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데뷔가 절실한 연습생들, 그런 연습생들에게서 자극적인 요소를 뽑아내려는 방송국 놈들, 그리고 자신을 수상하게 바라보는 아이돌 선배까지. 우리는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단순히 데뷔 실패가 아닌 사망에 이르는 '박문대'가 무사히 데뷔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하지만 웹툰 <데못죽> 은 말풍선만 1인칭일뿐, 독자는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다. 아주사를 보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매번 다른 컨셉으로 등장하는 경연 무대를 기다리고, 언제든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스릴을 맛보며 말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서술트릭이다. 웹소설에서 박문대가 숨겼던 표정이나 행동이 웹툰에서는 서술과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박문대의 서술 트릭]이 발동된다. 가령 선아현을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얼빠 문대, 웹소설에서는 표현되지 않았던 문대의 글썽이는 눈물 등이 웹툰 연출로 그려진다. 덕분에 웹툰의 매 인기댓글은 ‘박문대 서술트릭에 또 속았다’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작가가 자신의 주인공을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것. 그것이 주인공의 힘이다. 특히나 웹툰 <데못죽>도 원작 웹소설의 인기를 따라 열풍인 상황에서, [박문대의 서술 트릭]이 회자되는 현상은 주인공의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더욱 부각하는 요소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입덕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길고 길었던 <데못죽> 박문대 캐해 글이 끝났다. 그렇지만 ... 내 최애는 선아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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