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사브리나 카펜터가 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인간의 오감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은 시각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서도 시각을 통한 인지는 약 8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눈을 사로잡는' 같은 표현처럼, 한 번 강렬하게 인지한 것은 뇌에 남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 두 번째는 청각이다. 귀를 통해 들어오는 멜로디는 징글(jingle)처럼 맴돌아, 살다가 어느 순간 '이 노래가 뭐였더라' 머리를 번뜩이게 한다. 특히 중독적인 멜로디는 한국에서 '수능금지곡'이라는 명예 타이틀을 달기도 한다.
*징글 (jingle): 제품이나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짧은 음악. 주로 광고 목적으로 활용되는 cm송을 생각하면 된다. 발음 그대로 징글징글하게 머리에 남는다.
요새는 대부분의 아이스브레이킹을 MBTI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가끔 대화가 깊어지면 음악 취향을 비롯해 여러 취향을 묻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곤란해진다. 글은 읽어봐야 알고, 영화는 시청해야 아는데, 음악도 들어봐야 알지 않나. 그런데 나의 음악 취향이란 특정 장르에 속해있다기보다 베이스로 기타 소리가 들어가야 하거나, 인트로의 느낌이 좋아야 한다. 어떤 날은 빠른 BPM이, 또 다른 어떤 날은 느긋한 BPM이 끌린다. 확고한 취향이라 말하기에는 줏대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늘 현재에 충실한 답을 한다.
저번 달에는 <반지의 제왕> OST 들었고, 이번 달에는 사브리나 카펜터의 <Short n'Sweet> 앨범 듣고 있어.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2024년 9월 VMA에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는 Espresso로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다. 올해 4월 디지털 싱글로 Espresso가 발매된 이후, 다시 올해 8월 Expresso와 Please Please Please, Taste를 포함한 12곡으로 꽉 채운 앨범 <Short n'Sweet>으로 커리어 절정을 찍었다.
스포티파이 기준 무려 월별 리스너 8천만 명, 그중에서도 Espresso의 스트리밍 횟수는 14억 회다. 여기에 유튜브 espresso official mv 조회 수 2억 회까지 합치면 최소 16억 번의 espresso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진 것이다.
내가 사브리나 카펜터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VMA에서 상을 탄 지 얼마 안 되어 알고리즘에 자꾸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올해의 노래, 'Espresso'부터 컨트리팝 장르의 'Please Please Please',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 주인공 제나 오르테가가 출연한 MV로 화제가 된 'Taste' 등, 나는 자연스럽게 사브리나 카펜터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현재 사브리나가 진행 중인 Short n'Sweet 투어 영상도 계속 뜨면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 Taste MV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를 오마주 했다. 그러나 단지 이것 때문에 유명해졌다기보다는... 사브리나 카펜터, 카밀라 카베요, 션 멘데스의 삼각관계를 비유적으로 그려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여성가수가 입는, 여성인권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란제리룩을 좋아하지 않지만, 샤워 가운을 벗으며 시작하는 오프닝에 맞춰 매번 다른 바디슈트를 보여주는 컨셉이 흥미롭긴 하다. 특히 현재는 북미 지역을 돌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 의상은 물론 소품, 앵콜곡까지 변주를 준다. 그래서 자꾸 투어 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https://youtu.be/cF1Na4AIecM?si=X6J1KtE1-EEncK3l
마지막으로 <Short n'Sweet> 앨범 속 최애곡을 뽑아보고자 한다. 2024년 6월 공개된 'Please Please Please'다. 사브리나 카펜터의 현 남친으로 추정되는 배우인 배리 케오간이 MV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가사도 뮤비 내용도 남친에게 제발 사고 치지 말고 나 쪽팔리게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웃기다.
Please please please don’t prove I’m right
Please please please Don’t bring me to tears when I just did my makeup so nice
Heartbreak is one thing My egos another
I beg you don’t embarrass me Mother fucker
멜로디 자체는 단조롭지만, 그만큼 후렴구가 강력하다. 특히 제일 마지막 부분, mother xxxxker는 유명한 떼창 포인트다. 물론 이 부분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니다.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을 듣는 편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나의 취향이랄 게 있다면, 바로 '올드팝'이다. 사실 올드팝도 하나의 장르로 따지기엔 애매하고, 특정한 연도를 정하기에도 기준이 모호하다. 그냥 오래된 팝송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브리나 카펜터의 Please Please Please 역시 올드팝의 일종인 '컨트리팝'으로 장르 구분이 되어있는데, 레트로+디스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들으면 무슨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래서 음악 비평이 어렵다. 문학은 글로 풀어서 이해하면 되지만 음악은 느낌을 설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향을 텍스트화해도 실제로 맡아보기 전까지 와닿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사브리나 카펜터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물론 사브리나 말고도 블랙핑크 멤버들이 각양각색으로 보여주는 솔로 앨범들, 현 KPOP 기대주 키스오브라이프의 Get loud, 뜬금없는 타이밍에 생각이 나 버린 마네스킨의 Beggin' 등을 듣고 있다. 다음에도 이야기할 것들이 많으니, 부디 ep.2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 (from me to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