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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 Feb 24. 2023

영화 <소공녀>의 하루살이, 미소

나도 미소처럼 하루살이로 살아본 적 있었다


원래 독립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보다 자본냄새 나는 이야기가 좋았다. 현실에서 사람냄새 많이 나는데 뭐, 하는 감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를 보고는 그 관점이 모두 뒤집혔다. 본디 책을 덮고, 크레딧이 올라가면 작품 속 인물들은 휘발되기 마련이었는데 처음으로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에게는 궁금증이 생겼다. 하물며 나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고 버리는 게 익숙한 사람인데도, 미소에게는 여전히 이천원이 오른 위스키를 먹고 담배를 피니? 묻고 싶었다.


소공녀 메인포스터




주인공 미소는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 한솔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좁고 추운 집에 살고, 옷을 벗으면 너무 추워 섹스조차 하지 못하지만 미소는 영화 내내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담배값이 오르게 되고, 담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미소는 방을 빼고 얼마 안되는 짐을 가지고 나가게 된다. 미소의 직업은 가사도우미지만 정작 자신의 집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미소는 계란 한 판씩을 사들고 친구들을 찾아간다.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영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소공녀>가 특히 좋았던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독히 현실적으로, 과장된 것 없이 표현되면서도 미소가 그들의 '집'이라는 공간을 방문함으로써 한국 사회 속 '가정'의 다양한 유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소에게는 다섯명의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 함께 시간을 보낸 밴드부 친구, 문영 현정 대용 록 정미다.

집 크기도, 동거인의 유무도, 가구의 형태도 모두 다른 다섯의 집을 돌아다니며 미소는 '집'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세운다.




계란 한 판을 든 소공녀와 다섯개의 집



첫번째로 찾아간 친구, 문영은 담배 때문에 집을 포기했다는 미소의 말에 예민해서 누군가와 같이 자지 못한다는 핑계를 댄다. 미소는 그 말에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문영은 그런 미소에게 말한다.

"여전하구나." 

여전하다는 말에 왜 미소보다 내가 더 상처받는 기분이 들었을까.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여전하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닐텐데도.



두번째로 찾아간 현정은 미소를 반갑게 맞아준다. 하지만 현정의 집에는 시부모와 남편이 있었고, 그들은 불쑥 찾아온 미소가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한국적'-당연히 좋은 의미는 아니다-인 가정 속 현정은 맛없는 밥이어도 마땅히 아침점심저녁을 챙겨야하는 사람이다. 그런 현정에게 미소는 몇 개의 반찬을 해준 뒤, 조용히 현정의 집을 떠난다.



세번째로 찾아간 대용의 집. 대용은 신혼부부지만 아내가 금방 집을 나가고, 대출받은 아파트에 홀로 남아있다. 대용은 술로 밤새우는 모습을 미소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하지만, 미소는 대용의 집을 청소해주고 밥도 차려주며 위로를 해준다.


이때 이런 미소의 위로에 대응하는 대용의 태도는 더없이 허세 가득하고 가부장적이다. 남들 앞(그것도 친하게 지냈던 여자 사람)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쪽팔림을 핑계로 '여자 알러지'라는 말로 둘러대고, 밥하고 청소해주던 미소가 떠난다고 하니 대뜸 이렇게 말한다.

"이래서 여자는 집에 들이면 안된다"

이 지독한 현실 고증. 소름이 돋았다. 생각하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러한 전형성을 담아놓은 감독님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네번째로 찾아간 록이의 태도는 더 하다. 어쩐지 과도하게 친절한 록이의 노모와 노부가 함께 사는 주택에서 묵기로 한 미소. 손님방에 고추를 말려놓은 턱에 미소는 록이의 방 바닥에서 자게 되는데, 록이는 대뜸 미소에게 결혼하자는 소리를 한다. 

"연애는 남친이랑 하고 결혼은 나랑 하자,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 보여드리고 싶다, 마침 너도 오갈데 없지 않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실제로 자신을 뻔하니 쳐다보는 록이의 모습에 '폭력적'이라고 응수하는 미소의 대사도 있다. 그 다음날 미소는 밖에 나가려 하지만 밖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 다 잠겨있다. 록이의 가족들이 미소를 못 나가게 가둔 것. 하지만 미소는 부엌의 작은 문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다.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현실에서는 저런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꼬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다섯번째로 찾아간 정미는 부잣집에 살고 있다. 정미는 편하게 있으라며 미소에게 따로 손님방을 내어주고, 미소는 집세 걱정 없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미소는 어딘가 불안함을 느낀다.

'부잣집에 살면 꼭 내가 부자가 된 것 같아. 근데 기분이 안 좋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야.'

미소가 문제를 생각하는 것처럼 미정의 집에서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상하게 이전까지와 비교하면 분명 풍족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데도. 손에 꼭 쥐고 있을 소유감이 없어서? 금방 사라질 허상 같아서? 아마 애써 피해온 것 같은 질문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 남편의 눈치를 보는 정미는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미소가 음악을 하며 놀았던 과거를 꺼낼 뻔하자 맘에 들지 않아함을 드러낸다. 그날 저녁, 정미는 술과 담배를 사랑한다는 미소의 말을 비웃는다.

"그 사랑 참 염치없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 안 들어?"그러자 미소는 답한다.

"난 당당해. 난 세상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


미소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오히려 찔린 쪽은 나였다. 사실 알고 있다. 그렇게 답할 수 있는 미소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부럽지는 않다는 걸. 사랑하는 걸 택한 미소가 멋지다고 느끼면서도 미소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서. 물론 이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기에 어느 쪽을 탓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욱신거렸다.



그래서 더욱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미소가 부디 행복하라고. 허구의 인물임을 알면서도 작품 속에 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너는 여전히 이천원이 오른 위스키를 먹고 담배를 피니.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을까. 답이 없을 질문들을 때때로 던져보며 잘 살고 있기를 바랐다.





한편, 나도 미소처럼 집을 옮겨다니곤 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학교와 서울에서 하는 동아리를 오가며 일주일에 두세번은 왕복 세시간의 버스에 갇혀있어야 했다. 가끔 회식이 있거나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를 할 때면 막차가 끊겨 기숙사에 갈 수 없었다. 참고로 서울사람 기준 막차가 아니라 고속버스 막차다. 늘 저녁이 될 때면 서울 마실을 나왔다 들어가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조용한 피켓팅(피튀기는 티켓팅)을 해야했다. 그마저도 놓치면 난 갈 곳이 없었다.


새벽까지 머리 쓰는 것도 힘든데, 몸 뉘일 곳이 없다는 건 서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만 재워주세요-, 하는 하루살이가 되었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 길바닥에서 잘 수 없으니까. 미소는 숙박의 대가로 계란 한 판이라도 들고 갔지, 나는 정말로 맨몸이었다.



남의 집을 간다는 건 그 사람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는 일이라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동반한다.


나는 '우리집' '내 방'이라 인식하지 않은 곳에 가면 늘 긴장을 했다. 한편으로는 남의 집을 방문할 때면 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두근대기도 했다. 이걸 봐도 되나? 이렇게 내밀한 곳까지 공유해도 되나? 싶은 두려움이 만든 두근댐이었다.


첫번째 집, 성균관대 앞 찜질방

이것도 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간 첫번째 집은 성균관대 앞의 한 찜질방이었다.

밤샘 회식이 있었던 날, 그때는 함께 술집에서 밤새는 게 더 안전할 줄을 모르고 씻고 싶어서 찜질방을 갔다. 근처에 여성전용이 없어서 그냥 찜질방을 갔더니, 주말 새벽 세 시의 찜질방은 정말 무서운 곳이었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이리저리 코를 골며 널브러져있고 그곳에 젊은이라곤 나밖에 없었다. 몸일 뉘일 자리따윈 사치였고 겨우 구석에 낑겨들어가 누웠다. 그 당시 스무살, 동아리 하나 하자고 이래야하나 현타를 맞기도 한편, 누가 나를 밟고 지나갈까봐 떨면서 잠에 들어야 했다.


두번째 집, 분당 삼촌집

그나마 두번째는 분당에 위치한 삼촌의 집이었다. 적당히 분당선 막차를 잡아타고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삼촌과 친하지 않는가? 아니다. 그냥 남의 가정집에 간 내가 불편했다. 나는 내 것이 없으면 안되는 소유욕을 가지고 있고, 이걸 해석하면 내 것이 아니면 모든 게 불편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번은 캠핑을 간 삼촌집에서 나홀로 자야할 때가 있었다. 삼촌은 영원히 모를 테지만, 그땐 집주인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건들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아무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소파에 쭈그러 잠이 들었다. 거실의 책장에 올려진 어항을 보다 선잠이 들었고, 새벽 6시 첫 차가 다닐 무렵 일찍 집을 나왔다.


세번째 집, 아는 언니의 집

세번째는 동아리에서 알게 된 언니의 집이었다. 그때쯤에는 동아리에서 어느정도 인연을 쌓아 하루만 재워달라고 비빌 수 있는 정도가 된 때였다. 이 밑으로도 나를 재워준 수많은 언니가 있으니, A 언니라 칭하겠다.


A 언니의 집은 건축 유튜브에 나올 것 같은 주택이었다. 옆으로 넓은 주택이 아니라 위로 높은 주택이라 1층엔 거실과 큰방, 2층엔 부엌과 언니 방이 있는 독특한 구조였다. 남의 가정집을 불쑥 찾아간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적당히 철면피가 깔린 하루살이였기에 적당히 적응할 수 있었다. 마치 '현정'의 집에 놀러간 것 같았다. 손님이 온다고 따뜻하게 온도를 올려준 언니와 철제 프레임의 침대, 신기한 것이 많던 책상까지.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다음날 아침 미역국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까지 남아있다.


네번째, 아는 언니의 자취방

네번째도 동아리에서 알게 된 팀원 언니의 자취방이었다. 자취러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 있다. 밤샘 회의를 한 뒤에 차가 끊기려할 때면 우리집 갈래?를 할 수 있는 마법.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는 외로운 개똥벌레, 아니 대학생은 그런 언니들의 말이 참 고마웠다. B 언니의 다 늘어난 체육대회 기념티셔츠를 빌려입고 바지도 냉큼 주워입었다.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스킨로션도 야무지게 발랐다.

그러나 몇 번의 하루살이를 거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 다음날 아침이면 괜히 내쫓기듯 집에 가야한다는 것. 집에서 터미널까지, 터미널에서 학교까지, 학교 정문에서 장장 15분은 걸어야 나오는 기숙사까지 갈 길이 멀었던 나는 집주인이 자고 있을 무렵 아주 조용히 씻고 집을 떠난다. 그러면 가끔은 서러웠다. 일요일 오전, 조용한 학교를 걸어올라가면 또 다시 현타가 왔다.


다섯번째, 아는 언니의 쉐어하우스

다섯번째는 친한 언니가 사는 쉐어하우스였다. C 언니의 동기들과 함께 산다는 쉐어하우스는 방학 때라 모두 비어있었다. 아파트를 잘게 쪼개놓아 개인 공간은 확보하되, 공용 공간은 널찍했다. 그뿐인가. 라면이 무제한이고 거실엔 다같이 밥을 먹거나 과제를 하는 큰 테이블이 있는, 그야말로 로망의 쉐어하우스였다. 언젠간 나도 내 친구들을 모아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들게 할 정도였다.





나도 누군가를 재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아파트, 주택, 자취방, 쉐어하우스까지 정말 다양한 집에서 하루살이를 체험한 일은 조금은 서러웠고, 장기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집은 없어도 취향은 있다'고 말하는 미소와는 다른 방향일지라도, 집이란 무엇인가에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계기가 되었으니까. 또한 언제 이렇게 다양한 집에 가볼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은 영원히 집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 씁쓸하다. 그래도 나는 <소공녀> 속 미소를, 집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감히 '홈리스'라 칭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하루만 살고 죽는 게 아니라 어제를 지나 오늘, 오늘을 지나 내일을 사는 '하루살이'다. 뭐라도 없다는 뜻보다는 산다는 뜻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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