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이 아니라, 홍첨지전인 이유
나는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어떤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에는 스토리가 좋은, 배우가 좋은, 연출이 좋은, 시청률이 높은 등 수많은 조건이 따를텐데 그걸 고루 갖춘 드라마? 형체가 그려지지 않는 질문에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레퍼런스'다.
질문을 바꿔보자. 나를 키운 드라마는 무엇일까.
사극으로는 <선덕여왕>이, 로맨스로는 <이번생은 처음이라>가, 막장으로는 <품위있는 그녀>가, 판타지로는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 있겠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름 예시를 들 때 절대 빠지지 않는 '홍길동'이 아닐까. 호부호형 하지 못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는 그 홍길동 말이다.
흔히 우리가 아는 홍길동은 허균이 쓴 <홍길동전> 속 의인일 것이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배경은 광해군 시대이며, 실존인물로서 홍길동은 드라마와 같이 연산군 시대다. '인간 홍길동'을 재구성하고 싶었다는 기획의도처럼,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은 홍길동전이 아니라 새로운 '홍첨지전'을 만들어냈다.
전체적인 시놉시스는 아기장수로 태어난 홍길동이 희대의 폭군으로 불린 연산군과 대적하며 백성의 편에 서는 이야기다. 총 30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인 요약은 다음과 같다.
1-5화: 주인을 죽여야만 했던 길동의 아버지이자 씨종 아모개의 일생
6-10화: 아모개의 몰락 이후 길동 집안의 풍비박산
11-20화: 본격적인 길동의 의인 생활 시작, 그리고 홍첨지의 탄생
21화-30화: 연산군과 홍길동의 대적
실제 홍길동이 존재하던 시대의 연산군을 메인빌런으로 세움으로써 사극으로서의 정체성을 녹여내되, 홍길동의 인생을 재구성한 픽션으로 흥미를 더 했다.
먼저 역사 고증의 경우, 연산군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무오사화(연산군 4년,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세조를 욕보이는 사초를 썼다는 이유로 관련 사림파를 숙청한 사건), 갑자사화(연산군 10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위 문제를 반대하던 세력을 모두 숙청한 사건)를 녹여냈다.
다음으로, 홍길동의 비범한 능력은 '아기장수 설화'로 바뀌어, 힘이 세고 쉽게 죽지 않는 길동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했다. 특히 길동이 혹독한 싸움과 고문에도 몇 번이고 살아나는 장면은 백성의 편을 드는 '소시민 히어로'로서 죽지 않는 긍지와 정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뿐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의 모습은 전국 각지에서 '홍첨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길동과 일곱 형제들에 의해 만들어진 소문임을 보여준다. 또한 길동이 세운 술집의 이름은 '활빈당'이요, 홍길동의 무리가 해낸 의인 활동은 길동의 연인, 가령에 의해 '홍첨지전'으로 기록된다.
내가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이 집 ... 캐릭터 맛집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역사적으로나 콘텐츠적으로나 잘 알려진 캐릭터를 다시 쓰려면 이전 콘텐츠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역사를 너무 해치면 안된다. 온전한 창작 캐릭터가 아닐 뿐더러, 자칫 '님 설마 사료를 무시하고 캐해하신 거예요?' or '나의 연산군은 이게 아니야!' 하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그런데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은 다르다.
홍길동, 연산군, 장녹수 같은 원래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가령, 모리, 수학 등 가상 캐릭터에게도 구체적인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 본격적인 캐릭터 소개에 앞서, 공식 홈페이지에는 인물관계도가 나와있지 않아 간단히 정리 해보았다.
벌써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홍길동이 사실 장녹수의 전 연인이었다는 설정은 연산군과 홍길동을 단순한 정적(政敵)이 아니라 사랑의 라이벌로 만들기까지 한다. 더불어 작품 후반부, 궁에 들어간 가령을 맘에 들어하는 연산군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사각관계가 될 뻔한 장면도 있다. '전 연인과 재회하는 캐릭터' 설정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사람으로서 ...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 이제 본격적으로 캐릭터를 분석해보자.
홍길동(윤균상) : 건달에서 성장형 소시민 히어로가 되기까지
길동은 씨종 아모개의 아들로, 본디 성이 없었다. 노비들은 대부분 성이 없는 채로 살거나 주인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동은 억울한 백성들을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성을 '홍'이라 칭했다.
길동의 무리는 홍가네 혹은 홍첨지들로 불리며, 피만 나누지 않았지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아모개가 아내도 잃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하자 복수를 위해 모였다. 이후 아모개가 충원군의 계략에 의해 몰락하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길동은 다시금 형제들을 불러모은다. 이것이 홍가네의 탄생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들은 '건달'이다. 그래서일까, 건달로 살면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언젠가는 화로 돌아온다는 걸 알려주듯, 사적 복수를 위해 충원군을 몰락시켰던 이들은 역풍을 맞는다. 이 점은 홍길동이 아기장수로서 엄청난 힘과 생존력이라는 영웅적 면모를 가지고 태어났을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온전히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즉 홍길동은 애니메이션 <원펀맨> 에 나오는 먼치킨(완성형 히어로)도, 영화 <캡틴 아메리카>에 나오는 스티브 로저스처럼 처음부터 정의에 죽고 정의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단 뜻이다. 하지만 길동은 점차 선비들이 말하는 능상(윗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의 기준에 의문을 가지고, 억울히 죽어가는 백성들을 돕는 의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종국에는 지독한 신분제 사회에 상-하,남-녀 간의 차이를 강조하는 강경보수 유교사회인 조선 시대, 민심을 빼앗은 희대의 역적으로 재탄생한다.
연산군(김지석) : 어리고 약한 왕에서 폭군으로
아마 사극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캐릭터는 장희빈, 광해군 그리고 연산군이 아닐까? (추측이다)
연산군이 등장한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왕의 남자>, <간신> 그리고 이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다.
실존인물을 담아낸 수많은 콘텐츠를 보아도, 연산군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흥청망청 논다는 의미처럼 흥청과 망청을 만들어 음주가무에 푹 빠져 실정을 하는 폭군의 면모와 어릴 적 박탈당한 모성에 대한 애정결핍으로 장녹수의 치마폭에 쌓인 여린 모습이 공존하는, (실록에 따르면) 희고 아름다운 미남자가 아닌가.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속 연산군은 홍길동과의 적대 관계로 설정된 그야말로 메인빌런 역할이다보니 폭군의 면모를 더욱 강조했다.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욕보이는 자들을 부관참시(관 뚜껑을 열어 시신을 참수하는 것)하고, 죄 없는 백성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성악설을 믿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장녹수와의 관계성이다.
장녹수(이하늬) : 창기가 아니라, 예인
장녹수가 누구인가. 연산군 이야기를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숙용 장 씨가 아닌가.
연산군-장녹수의 관계성은 주로 모성으로 표현되곤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분노, 결핍으로 인해 장녹수에게 어머니와 같은 정을 찾았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괜히 '장녹수의 치마폭에 쌓인 연산군'이라는 표현이 유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녹수와 연산군의 긴밀한 관계는 여자에 빠져 실정을 한 폭군이라는 기록으로 남았고, 장녹수는 경국지색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희대의 나쁜 년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속 녹수, 아니 공화는 다르다. 연산군을 모성으로 품는 게 아니라, 그의 속내에 깊이 묻힌 고독을 알아주는 이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로하는 수단이 바로 춤과 노래다.
사실 그것을 먼저 알아본 이는 연산이 아니라 길동이다. 녹수가 공화이던 시절, 그리고 길동이 홍첨지가 아니라 방물장수이던 시절 둘은 옛 연인이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길동은 공화를 떠나고, 이후 공화는 궁에 들어가 이름을 녹수로 바꾸고 연산군의 눈에 들게 된다. 심지어 녹수라는 예명은 길동이 지어준 것이다(!) 길동-녹수-연산 사이의 삼각관계는 훗날 연산군이 더욱 폭주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서사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개인적으로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길동도, 연산도 아닌 장녹수라 생각한다. 그 예로 녹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독한 년이라 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 선택이 잘못됐다고 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이는 녹수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임금의 눈에 들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요, 그 독한 모습마저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의지였음을 알린다. 한편으로는 죽기 전 길동에게 "나는 네 덕분에 창기가 아니라 예인이 되었다."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춤과 노래를 할 때 가장 행복했던 자신의 모습을 계속 담아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옥정을 그저 숙종을 매혹케한 악녀가 아니라, 한복 디자이너이자 사랑에 빠진 나머지 정치싸움에 휘말린 한 여성으로 표현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장녹수 역시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신분상승을 위한 욕망을 가진 여성이자 진정한 예인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캐해라고 할 수 있다.
가령(채수빈) : 조선시대판 천일야화의 화자
한편 가장 독특했던 캐릭터도 있다. 바로 길동의 연인 가령이다.
가령은 작품 내외부적으로 '화자'를 담당한다. 가령은 백성들을 구하고 못된 왕을 몰아낸 홍첨지들의 일을 기록한 '홍첨지전'을 쓰고,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지어는 연산군 앞에서도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을 사로잡는(이라 쓰고 목숨 부지라고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천일야화의 화자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작품을 볼 때, 시청자인 우리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전지적 작가시점이자 작품의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작품 내부에 또 다른 화자 가령이라는 캐릭터를 삽입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홍첨지전'을 정말로 이야기꾼에게 전해듣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을 단순히 주인공 홍길동의 연인으로만 소모시키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물론 이 작품의 인기에 길동-가령의 '길령 커플'이 미친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녹수와 길동이 연인이던 시절부터 길동을 짝사랑하던 가령은 길동이 복수를 위해 세력을 키울 때부터 따라나서 돕는다. 자신을 그저 여동생으로 생각하던 길동에게 당당히 마음을 고백하고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혼례까지 올리게 된다.
이때 가령은 길동에게 서방이라 부르는데, 가령의 서방~❤️이 너무 사랑스럽다. 90년대생 동년배들은 모두 공감할 얘기를 해보자면, 감히 <공부의 신> 속 현정(지연)의 서방~❤️에 비할 수 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빌런 모임이다. 사실 주인공 홍길동의 무리가 꽤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빌런 폭이 적어보일 수가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개개인에게도 매력적인 서사가 부여되어 있다.
모리: 충원군의 심복
먼저 모리에 대해 말해보자. 모리로 말할 것 같으면, '길동과 같으나 다른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모리 역시 길동과 같이 아기장수의 운명을 타고난 자이나, 그 힘을 충원군과 연산군을 위해 쓴다. 그 이유는 권세가들에 대한 충심보다는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길동에 대한 적대심에 가깝다. 같은 아기장수이나 그 힘을 백성들에게 쓰고 주변 사람들의 신임까지 얻은 길동과는 달리, 자신은 아기장수의 힘이 두려웠던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하고 자신이 따랐던 주인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즉 영웅 홍길동의 대척점이 연산군이었다면, 아기장수 홍길동의 대척점은 모리인 셈이다.
하지만 종국엔 길동이 그런 모리를 포용하며, 그를 홍가네 일원으로 받아준다. 그러나 진짜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모리가 가령을 짝사랑하는 츤데레 캐릭터라는 점이다. 모리가령 ... 이 조합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길동가령이 압도적인 메이저 커플이라는 점에서 모리가령을 파는 사람은 사약을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이뤄지지 않을 거 알면서도 밀어붙인다는 뜻)
참봉부인 박씨, 조정학: 과거 아모개에게 죽임을 당한 조참봉의 가족
참봉부인 박씨와 조정학은 아모개 가족이 노비로 있던 조참봉 댁의 부인과 아들이다. 이들과 길동은 서로 집안의 원수로 묶여 평생을 복수에 갈아넣는다. 결말 부분, 둘은 연산군의 눈 밖에 나 노비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천출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하던 정학과 그의 어머니에게 내려진 노비로서의 삶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요, 완벽한 복수가 되었을 것이다.
상전 김자원: 어릴 적부터 연산군을 보필한 내관
마지막으로 상전이다. 상전은 연산군에 대해 "내겐 아들같은 존재"라고 말을 할 정도로, 연산군의 깊은 고독을 아는 몇 안되는 측근이다. 연산군이 폭군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그의 책임이 없다고는 못한다. 그러나 상전은 연산군을 사랑하니까 놓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아도 말리지 못한다. 그저 사랑의 방법이 잘못되었을뿐, 이 드라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건 길동을 향한 가령의 사랑과 연산군을 향한 상전의 사랑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길동이 가령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듯 연산군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주는 이가 한명쯤은 존재했으니 균형이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서 드라마 PD가 되고 싶은 내 포부를 밝히고 글을 시작했다. 구구절절 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좋다는 이야기를 써내려왔지만,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도 이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지점은 바로 길동의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주인공의 형인 길현, 혹은 여동생인 어리니를, 혹은 일곱 의형제들 중 한명을 죽일 터인데 적당히 목숨의 위협까지만 해주고 온전히 죽이지는 않아준다. 일례로 황주목 전투에서 형제들이 배때지며 팔다리에 화살을 맞아 각혈을 하는데도 죽지는 않아준다. 가장 픽션이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비록 드라마지만 한 명의 인물도 버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시청자의 마음을 잘 알아줬달까. 본디 드라마는 현실처럼 잔인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느정도 상상력이 가미된 해피엔딩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앞에는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이 안에서라도) 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니까.
우리의 또 다른 작가, 가령이 '홍첨지전'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냈듯이, 나 역시 역적의 후기를 이 말로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여기에서라도)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참고로 이 드라마 ... 정말 크레딧까지 완벽하다.
안예은의 <봄이 온다면>에 맞춰 '다같이 만세!'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