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정도가 되면
착, 착, 착, 착, 착, 착, 착...
경쾌한?(경쾌하게 들리는 귀여운) 발소리를 내며 현관 중문 쪽으로 간다.
병원약을 먹기 시작한 후 나타난 증상이다.
어제도 어김없이 12시가 가까워지니
누워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병원약 속에 있다는 스테로이드 때문인지, 뇌에 관련된 약 때문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12시가 되면 녀석은 일어난다.
그리고 현관 중문 옆 벽을 긁기 시작한다.
벅벅 벅벅 벅벅 벅벅!
정말 끊임없이 긁는다.
"하아! 또 시작이네
야! 최쏘피! 너 신데렐라야?!"
처음엔 왜 그러는지 몰랐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알았다.
밥을 내놓으라는 녀석의 거센 항의라는 것을.
스테로이드약 부작용으로 요 근래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탈이 나지 않게끔 상황을 보면서 조절해 주려 노력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또 밥을 내놓으라니...
줘도 괜찮을까?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어제도 녀석이 달라는 간식을 조금씩 나눠서 수차례 줬다.
잠시 후,
벅벅 벅벅 벅벅 벅벅!
또 시작이다.
모르는척해도 소용없다.
온 거실을 착, 착, 착, 착 소리를 내며 배회하다가
다시 벽을 긁는다.
저 녀석 배는 이미 빵빵하게 간식으로 가득 차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자러 들어간 재수생 아들 방과
가장 멀리 있는 작은 방으로 쏘피를 안고 갔다.
"쏘피야, 오빠가 곧 수능시험이야.
오빠가 삼수하면 안 되잖아? 그지?
오빠 자러들어갔는데, 잠들 때까지 조금만 여기에 있다 나오자.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이 녀석 내 말을 알아들었나?
방문을 살짝 닫았는데, 녀석이 조용하다.
'15분만 있다가 다시 데리고 나와야지' 생각하며
난 잠시 거실 소파에 누웠다.
.
.
.
그리고 눈을 뜨니,
오늘 아침이다. 헉!
작은 방 문을 긁는 녀석의 소리에
난 후다닥 일어났다.
"아! 쏘피야! 미안해. 너 어젯밤 계속 기다리고 있었구나?! 미안해. 깜빡 잠들었어."
녀석은 나를 지나쳐 부리나케 나오더니,
화장실로 직행한다.
곧바로 뒷다리를 벌리고, 참았던 쉬를 눈다.
그리고 부엌 쪽으로 걸어와
물을 찹찹찹찹! 급히 많이도 먹는다.
"쏘피야, 너 밤새도록 참고 기다렸구나?!
미안해, 미안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
녀석은 거실 한켠의 자기 자리로 가서 눕는다.
넌 항상 이렇게 기다렸었구나.
미안해. 쏘피야!
어젯밤 힘들었었나? 그래서 이런 건가?
오늘은 오전에만 두 번 증상이 나타났다.
몸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녀석은 올스톱된다.
그리고 회색빛 두 눈에 두려움이 차오르며 흔들린다.
녀석은 그 눈빛으로 나를 찾는다.
"어? 쏘피야?! "
나는 녀석을 품에 가득 넣어서 꼭 안아준다.
그리고 증상이 괜찮아질 때까지 계속 안아준다.
이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생각과 마음은 다른 영역입니다."
흘리듯 틀어놓은 유튜브의 어떤 채널에서
오은영박사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녀석을 잘 보내줄 거라고,
행복하고 편안한 일상 속에서 갈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머리로 생각했었다.
내 품속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서 경직된 몸을 어찌할지 몰라하는 녀석을 안고 있으니,
눈물이 난다.
죽어가는 과정이 이런 걸까.
울지 않기로 했지만,
쉽지 않다.
생각과 마음은 정말 다른 영역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