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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Apr 24. 2024

퀀트, 노자에게 가르침을 구하다

# 한 어리석은 검객 이야기

한 검객이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강 중간쯤에 다다르자 갑자기 물결이 크게 출렁거렸고, 이 때문에 검객이 차고 있던 칼이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화들짝 놀란 그 검객은 곧바로 수중에 있던 작은 단도를 꺼내 칼을 빠뜨렸을 당시 앉아있던 뱃전에 표시를 새겼다. '여기에 칼을 빠뜨렸으니 배가 멈추면 곧장 여기 밑으로 잠수해 칼을 찾아봐야겠다.' 배가 마침내 건너편 나루터에 도착하자 그 검객은 표시한 부분의 밑으로 바로 다이빙을 해 들어갔다. 이른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단어로 회자되는 고사다.

각주구검의 고사

이 이야기 속 검객은 매우 바보 같다. 배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걸 고려하지 않은 채 상황을 고정불변된 것으로 바라보고 뱃전에 표시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배가 움직이고 있기에 칼을 빠뜨린 위치와 나루터의 위치는 당연히 다르지만 그 검객은 그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강물로 뛰어들었다. 각주구검의 고사는 이처럼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미 철 지난 시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우매함을 경고한다.



# 오직 머무르는 데만 모든 걸 걸었던 조선

그런데 무려 500년 동안이나 이러한 어리석은 각주구검을 지속한 나라가 있다. 바로 조선이다.


조선이란 나라를 생각해 보자.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조선의 집권층인 사대부들은 통치 이데올로기로 성리학을 채택한다. 문제는 이 성리학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통치의 수단을 넘어 모시고 숭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조선 내에서 발생한 정치적 논쟁은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보다는 누가 더 성리학의 원본 모습을 고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현실을 위해 이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현실을 이론에 끼워 맞추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리학은 그들에게 목숨보다도 중요한 종교 그 자체였으며 서원은 그들의 종교 의식을 위한 사원으로 전락해버렸다. 당연히 그들에게 현실적인 민생 문제나 국방 문제는 늘 뒷전일 수밖에 없었고 국가는 계속되는 외세의 침탈을 막지 못한 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망해가던 조선의 병림픽

그렇다면 조선 사대부들이 그토록 성리학이라는 이념을 금과옥조로 삼고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성리학을 직접 생산해낸 것이 아닌 그 이념을 외부로부터 수입해왔기 때문이다. 이념을 수입한 사람들은 그 이념이 도대체 어떠한 맥락과 환경에서 탄생된 것인지 알지 못하며, 그렇기에 현실과 그 모델 간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리 현실이 바뀌더라도 그러한 바뀐 현실에 맞게 이념을 바꾸거나 고쳐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저 외부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에 대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할 깜냥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성리학을 신줏단지 모시듯 죽어라고 지키기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성리학을 실제로 주조해내본 경험이 있는 중국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성리학을 고쳐서 썼다. 명나라 때에는 양명학으로, 청나라 때에는 고증학으로 유학의 색채가 바뀌었던 것은 이를 반증한다. 조선이 중국 송대에 만들어졌던 주자학을 고수하고 있을 때, 중국은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 맞게 그들의 모델을 계속해서 개선해나갔던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인에게 주인은 현실이었던 반면, 조선인에게 주인은 오히려 이념 그 자체였다. 조선에서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고유한 생각 없이 생각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기만 하는 지식 수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식은 고정불변의 것이며 고쳐 쓸 수 없는, 그저 숭배의 대상으로써 오용된다.



# 다시 복기해 보는 금융 모델러 선언

이쯤에서 2009년에 이매뉴얼 더만과 폴 윌맛이 작성한 '금융 모델러 선언'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보자. 여기서 그들은 모델에 종속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일갈한다. 후대의 퀀트들이 모델과 이념의 노예가 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러한 매니페스토까지를 작성해가며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델과 수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들이 없는 금융과 경제를 상상할 수 조차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델은 절대로 현실 세계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과 관련된 어떤 것의 모델을 만드려고 하는 것은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 못생긴 새언니의 발을 욱여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다.


금융 모델을 만드는 것은 매우 도전적이며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는 시장과 증권의 행동 속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찾기 위해 정성적인 것과 정량적인 것, 상상과 관찰, 예술과 과학을 적절히 융합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위험은 바로 모델에 대한 맹목적인 우상숭배이다. 

금융 시장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모델은 아름다울 순 있으나 인공적인 산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절대 숨결을 불어넣어 그것을 생동(生動)하게 할 수 없다. 모델과 실재를 혼동하는 것은 인간이 수학적 법칙에 복종해야 한다는 믿음에 의해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금융 모델러 선언 中


결국 모델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모델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현재 내가 서있는 토양에 맞게 모델을 입맛대로 수선하고 변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외부로부터 모델을 수입해 따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모델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도적인 모델 생산 능력이 갖춰졌을 때야만이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풀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 노자가 논하는 이론과 현실의 문제

노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거피취차(去彼取此)' 네 자를 제시한다. 즉,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저것'은 무엇이며, 또 '이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저것'은 이상, 관념, 안정, 완벽, 정형이며, '이것'은 현실, 실체, 불안, 불완전, 부정형을 뜻한다. 노자는 진리가 모델에 있지 않으며 현실에 있다고 말한다. 즉, 저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이야기하는 거피취차이며, 또 그가 주장했던 무위(無爲)다. 무위는 관념론을 버리고 실재 그 자체를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이론은 진짜가 아니다. 이론은 단지 진짜를 설명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어떤 것을 개념화해 그것을 관념의 세계로 가둬놓는 것, 그것이야말로 집착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집착을 내려놓고 보다 유연한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최진석 교수가 저술한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는 노자가 생각했던 이러한 이론과 현실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어내고 있다.


더 이상 타인이 만든 비전과 메시지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삶을 살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비전과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 수 있으려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구체적 토양에서부터 사유를 출발시켜야 합니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주도적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론 먼저 문제 나중’이 아니라, ‘문제 먼저 이론 나중!’이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다 무엇과 관련이 있겠습니까? 상상력이고 창의성입니다. 주도적인 삶입니다.

- 인간이 그리는 무늬 中


결국 세상은 모델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다. 따라서 모델은 그야말로 하나의 모델로서만 존재해야 할 뿐 그것이 현실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입으로만 이론을 설파하는 지식인보다는 직접 행동하는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 이론은 진짜가 아니라, 단지 진짜를 설명해놓은 것일 뿐이다. 세상은 그 자체로서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움직인다. 반면 지식은 고정적이다. 실천가는 다소 투박하더라도 세계를 직접 보고, 세계에 대해 직접 말한다. 그들은 세계를 사유하며, 사유가 사유로서만 그치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마침내 구체성과 조우한다. 노자의 생각과 사유는 이렇게 2500년 전부터 퀀트가 걸어야 할 사유의 길을 이미 준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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