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이 보내준 사진.
광화문 교보문고에 '퀀트투자'라는 섹션이 새로 생겼다.
생각해보라.
불과 10년전, 아니 5년전만 해도 퀀트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을까말까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대형서점의 서가 한켠에 퀀트에 대한 전용 섹션이 생긴 것이다.
내가 학생이었던 당시에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다.
사실 퀀트에 대한 니즈는 그 속내를 들춰 보면 그것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투자 니즈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또한, 이는 앞으로 투자 업계의 지평이 글로벌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결국 수익성이라는 것은 장기적 트렌드로 보았을 때 그 나라의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해외 시장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한계를 긋고 좁은 시각으로 국내 투자만을 고수하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리스크 프리미엄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냥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국가와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돈이 나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를 집행하며, 또 그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으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힘은 이러한 자산 지배력에서 나온다. 글로벌 자산 지배력이 있다는 것은 세계 시장이 나를 위해 쉬지 않고 대신 일을 해준다는 의미다. 주식에서 채권, 나아가 외환과 원자재, 그리고 심지어 변동성 그 자체로까지 선진국의 투자 방식은 합리적인 틀을 기반으로 하여 그 투자 지평에 한계를 긋지 않는다. 과거에 그런 투자가 실패했다고 해서 새로운 시도를 그만두는 것은 투자 실패의 귀책 사유를 외부로 돌려버리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된 도구를 사용한 과거의 잘못된 의사결정 방식을 탓해야 한다.
투자를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시선을 세상 밖으로 돌려야 한다. 그들의 플레이는 어떻게 다른가? 왜 그들은 그렇게 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하는가?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는걸까? 그들은 도대체 어떤 역사적 맥락을 거쳤기에 지금과 같은 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잘못된 구조나 생각들을 빠르게 고쳐나가야 한다.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는 그 속도가 체감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결국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투자의 지평을 바꿔놓게 될 것이다. 마치 서점에 어느샌가 은근슬쩍 퀀트투자라는 섹션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스멀스멀한 변화는 그리 획기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크게 인식을 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만 사실 이러한 변화의 영향력은 부지불식간에 어느샌가 우리의 코앞으로 다가오게 된다. 10년 전, 5년 전을 지금과 비교해보자. 5년 뒤, 10년 뒤가 얼마나 기대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