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IS 비즈니스 리뷰
QIS 비즈니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볼커룰이 도입되면서 투자은행에서 불가능해진 프랍 트레이딩을 대고객 비즈니스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에서 태동한 커스터마이징된 퀀트 운용 비즈니스다. 이러한 QIS 비즈니스의 기본적인 스킴은 여러 자산군에 존재하는 팩터 전략들을 투자은행들의 자체적인 개별 지수로 패키징해 고객들이 쉽게 퀀트 전략에 대한 익스포져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 유니버스에 포함된 자산군은 주식뿐만 아니라 금리, 통화, 원자재 나아가 변동성과 상관계수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실로 넓다.
그런데 이렇게 QIS라 불리는 시장의 전체 규모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놀라지 마시라. 2024년 현재 기준 QIS 시장의 파이는 자그마치 5,530억 달러, 즉 한화 기준 약 7,000조 이상의 아주 큰 시장이다. 가끔 외사 IB들과 콜을 하다 보면 미국, 유럽, 일본의 QIS 시장 동향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러한 선진국에서 소비되는 퀀트 상품과 서비스의 규모는 실로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 헤지펀드로까지 비즈니스를 확대해 가고 있는 QIS
이러한 QIS 비즈니스는 퀀트 전략을 스왑(Swap) 혹은 구조화 채권(Structured Note)의 형태로 전환해 고객이 해당 전략의 익스포져를 빠르고 저렴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편리성 때문에 사실 QIS는 원래 연기금이나 패밀리 오피스 같은 기관투자자를 위한 도구였으나, 최근에는 헤지펀드들마저 QI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여러 투자은행들은 말하고 있다.
일례로 UBS의 QIS 구조화 글로벌 부문 대표인 줄리오 알피니토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무했던 헤지펀드의 QIS 투자가 이제는 QIS 북에서 한 자릿수 혹은 두 자릿수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한때 이러한 QIS 비즈니스에 회의적이었던 헤지펀드들마저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QIS에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QIS 상품의 쉬운 접근성과 거래의 용이성, 그리고 철저한 사후관리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제네바에 본사를 둔 도미니크 앤 코에서 옵션을 트레이딩하는 피에르 드 사브 또한 이러한 헤지펀드 고객들 중 한 명이다. 작년에 그는 그의 논문을 통해 QIS를 까대기 바빴으나 갑자기 언젠가부터 급격히 태세를 전환해 새로운 포지션을 빠르게 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QIS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전략이나 포지션을 태우고 싶을 때마다 내부적으로 인력을 새롭게 고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QIS로 가볍게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도 있고 또한 매매체결만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에 직원들이 부가가치가 더 높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예로 약 40억 유로의 AUM을 운용하는 핀란드의 베리타스 연금 보험의 CIO 카리 바타넨은 비즈니스를 셋업할 때 처음부터 트레이딩 팀을 구성하지 않고 이를 아웃소싱하여 QIS로 전환했다고 한다. 그는 QIS의 좋은 점으로 완전한 투명성을 꼽았다. 어떻게 트레이딩 시그널이 산출되는지 그 내부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기에 현재 특정 전략이 왜 그러한 포지션을 잡았는지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마치 ETF처럼 고객이 매우 자유롭고 유연하게 퀀트 전략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QIS라는 퀀트 뷔페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운용함에 있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퀀트 전략들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 또한 자체적으로 운용이 불가한 자산군 - 가령 원자재 옵션이나 스왑션 등 - 을 커버하거나 혹은 포트폴리오의 허점을 빠르게 메꾸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투자은행의 QIS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코어-위성 전략(Core-Satellite Strategy)의 프레임워크를 차용해 QIS가 위성 전략으로써 기능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 왜 퀀트 시장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가
이처럼 QIS를 위시한 퀀트 투자 관련 비즈니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1) 전통적인 주식-채권 패러다임의 종말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전통적인 주식-채권 패러다임의 종말, 즉 롱온리 자산배분 스킴의 종말을 꼽을 수 있다. 사실 당신이 생각하는 전통은 엄밀히 말해서 전통이 아닌 최신 편향(Recency Bias)의 산물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주식과 채권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통념이 사실은 2000년 이후 불과 20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견고하지 못한 사고체계라는 의미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이를 보다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데이터는 이러한 통념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가를 깨우쳐준다.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QIS 비즈니스의 파이는 급격히 커졌는데, 그 이유는 2000년 이후 진전되어 왔던 디플레이션 시대의 투자 방식이 효력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금리가 오르는 동시에 주식과 채권의 상관관계도 상승하게 되면 전통적인 주식-채권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률은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지난 몇십년 동안의 할인율 하락, 즉 금리의 하락은 자산 밸류에이션이 급격하게 상승할 수 있도록 순풍 역할을 해주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더이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경우 투자자들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냥 안분지족의 마음으로 현재에 만족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훨씬 더 매력적인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과연 이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전자를 선택하려고 할까?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절대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인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항상 발전적인 방향으로 도전을 거듭해 기어코 답을 찾아내는 족속들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후자를 택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2) 불투명하고 비유동적이었던 기존 대체투자 비즈니스의 위기
두 번째 이유는 불투명하고 비유동적인 대체 투자 비즈니스에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전통적인 투자의 대안 역할을 해왔던 대표 주자는 다름 아닌 ELS와 부동산 투자였다. 문제는 이제 서서히 투자자들이 이러한 불투명하고 비유동적인 프리미엄을 얻는 것에 대한 위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트레이딩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유동성 프리미엄(Illiquidity Premium)에 생각보다 높은 할인율을 매기는데, 그 이유는 신용파괴원리가 작동되는 상황이 되면 탈출구의 문이 굳게 닫히면서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시장에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ELS 사태와 부동산 PF 사태는 이러한 비유동성 프리미엄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금융업의 특성상 한번 금융사고가 터지게 되면 어떤 나라든 간에 거기엔 당국의 규제가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러한 규제의 도입은 앞으로 비슷한 종류의 위험을 테이크하지 못하도록 해당 영역에 족쇄를 채워버린다. 이를 미루어보아 앞으로 기존의 비유동성 프리미엄을 얻고자 하는 투자 스킴이 똑같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문제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슈다.
반면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들을 대상으로 하는 QIS 전략은 그 전략의 특성상 실시간으로 자신의 포지션과 손익을 모니터링할 수 있으며 또한 이에 따라 위험 또한 기민하게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다. 심지어 퀀트 전략 중에는 이러한 유동성 고갈 상황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전략마저 존재한다. 이러한 전략을 구비해놓는다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유동성 고갈 현상을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반가움으로 대하는 호연지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QIS 비즈니스는 매우 투명한 방식의 비즈니스이다. 체계적이고 계량적인 규칙에 따라 모든 전략들이 운용되기 때문에 QIS 비즈니스는 고객과 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룰북(Rule Book)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룰북에는 해당 전략이 어떤 스킴으로 운용되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디테일들이 전부 쓰여있으며 당연히 QIS는 철저히 이 룰에 따라 포지션을 구축한다. 금융투자업에서는 앞으로 비즈니스의 투명성 제고를 계속해서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퀀트 비즈니스는 이러한 투명성을 기본으로 하기에 '오히려 좋아'인 셈이다.
3) 진정한 의미의 커스터마이징
마지막 이유는 바로 퀀트 투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커스터마이징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화 비즈니스의 본질적인 목적은 애초에 커스터마이징에 있다. 하지만 ELS 같은 기존의 구조화상품을 상기해 보면 사실 커스터마이징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하우스가 그저 천편일률적인 상품만을 공급하기에 바빴다. 구조화상품이 구조화상품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QIS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의미의 커스터마이징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객은 QIS에 대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고, 언제나 자유롭게 이를 켜고 끌 수 있다. 또한 때로는 전략에 대한 선형적인 투자가 아닌 전략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콜옵션을 구매하여 비용을 조금 내더라도 전략의 하방을 닫아놓는 것 또한 가능하다.
QIS 거래는 기본적으로 OTC 거래이기 때문에 보통 메일로 거래상대방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최근에는 투자은행들의 자체적인 QIS 거래 플랫폼을 통해 전략들을 선정하고 원하는 만큼 가중치를 설정하기만 하면 설정한 대로 바로 운용이 시작된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매매체결만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QIS를 사용할 수도 있다. 전략을 개발할 능력은 내부적으로 확보되어 있으나 이를 실제로 체결시킬 역량이 부족하다면 이 기능만 따로 떼서 투자은행에게 위임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테일러 된 금융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더불에 최근 글로벌 IB들은 조금 더 새로운 자산, 새로운 팩터, 그리고 새로운 주기로의 확장을 통해 점점 더 퀀트 전략 스펙트럼의 폭과 깊이를 넓혀나가고 있다. 전략 또한 점점 더 창의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일례로 도이치뱅크의 경우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주식을 사고파는 QIS를 런칭해 운용 중이며, 제이피모건은 영국산 가스 같은 틈새시장에 대한 전략 등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 결국은 누가 퀀트 비즈니스를 선점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
결론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퀀트 투자와 관련된 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누가 먼저 여기에 깃발을 꽂을건가이다. 이러한 새로운 먹거리에 관심을 보이며 미리 조금씩 준비를 해나가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들리는 반면, 아직까지 매너리즘에 빠져 현상 유지에 급급한 곳들도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새로운 것은 위험한 것이라는 안일한 마인드에 사로잡혀 가만히 있는 것이 퇴보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퀀트가 만능인 것은 절대로 아니며, 퀀트 투자에도 응당 그 고유의 속성에 따른 여러 리스크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리스크를 아예 회피하고자 새로운 수익의 원천을 발굴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회피한다면 결국 이는 100%의 확률로 자멸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분주히 감마를 생성해내지 않는다면 언젠가 세타는 당신을 덮치게 된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며, 언제나 디폴트값이 'Keep Running'으로 설정되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어떤 비즈니스든 간에 리스크라는 것은 관리의 대상이지 절대로 회피의 대상이 아니다. 결국엔 개척 의지를 가지고 처음 비즈니스를 돌파해 내는 자가 항상 가장 많은 수확물을 가져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안정을 추구하는 스탠스는 역설적으로 가장 큰 불안정을 초래하는 스탠스다. 향후 10년간 금융투자업의 개꿀잼 관전 포인트는 누가 먼저 기민하게 동분서주하여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메이저로 발돋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