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라는 기계의 작동 방식과 생산성
'경제는 어떻게 발전하고 움직이는가?'에 대한 물음에 레이 달리오만큼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레이 달리오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경제라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매우 직관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따금씩 그의 저서를 간간이 다시 펼쳐 탐독하는 이유다.
레이 달리오는 경제 성장의 곡선을 세 가지 요소의 중첩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각각 생산성의 증가, 단기 부채 사이클, 장기 부채 사이클이다. 이 중에서도 생산성은 장기적인 방향성을 만들어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사실 인류 발전의 역사는 생산성 증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을 겪으며 우리 인류는 같은 자원을 가지고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이한 잉여생산물의 누적이 결국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생산성이야말로 경제라는 기계의 엔진이자 베타(Beta)라는 팩터의 중심축인 것이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죽고 난 뒤 아내에게 남길 돈 대부분이 S&P 500 지수에 투자될 것이라 여러 차례 말해왔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이라는 나라가 계속해서 혁신을 이루며 생산성을 개선해나갈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생산성 격차와 미국의 독주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올라온 파이낸셜 타임즈의 <Why America's Economcy is Soaring Ahead of its Rivals>라는 제목의 기사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의 흐름이 어쩔 수 없는 필연적 결과임을 말해주고 있는듯하다. 결론만 우선 이야기하자면, 경제의 성장은 결국 장기적으로 생산성의 증가에서 나오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러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토양, 즉 혁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분위기와 사회적 토양이 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데미 구오와 그녀의 친구 첸린 멍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작년 봄,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 과정을 중퇴한 그들은 불과 한 달 만에 그들의 스타트업을 위해 5백만 달러를 펀딩받았다. 이들이 만든 앱인 Pika Art는 AI를 사용해 꽤 와일드한 비디오 효과를 만들어냈고 이제 이 서비스는 기존 비디오 및 영화 제작 방식을 과거의 유산으로 만들 수 있는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불과 몇 달 만에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26살의 두 창업자는 1년 만에 1억 3,500만 달러의 펀드레이징에 성공했다.
이처럼 미국은 투자자와 정부 차원에서 모두 위험에 대해 더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캐나다 기술 기업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C100을 이끌고 있는 캐나다 기술 기업가 마이클 버는 “미국 투자자들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기술 분야 전반에 걸쳐 더 큰 위험을 감수한다.”라고 말한다. 성공적인 투자는 추가적인 벤처 펀드를 조성하고, 이는 다시 새로운 기업가와 기업을 탄생시키는 '플라이휠 효과(Flywheel Effect)'를 낳는 것이다. 반면 유럽의 투자자들은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위험 회피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는 심각한 걸림돌로써 작용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근 10년 동안의 생산성 격차를 만들어냈고, 또한 이는 미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2019년 말 이후 미국의 GDP는 11.4% 성장했으며, IMF는 최근 전망에서 올해 미국의 성장률을 2.8%로 예측했다. 2008~09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노동 생산성은 30% 증가하여 유로존 및 영국 대비 3배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렇게 누적된 생산성 격차는 세계 경제의 위계를 재편하고 있다. IMF는 유로존의 경제 성장률이 팬데믹 이후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올해 생산량은 0.8%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미국은 풍부한 자국 내 에너지 공급 덕분에 유럽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덜 받았을 수 있으며, 일부 G7 국가보다 더 빠르게 코로나19로부터 회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더 빠른 생산성 증가이며, 이는 보다 지속적인 경제 성과의 원동력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성'이란 경제에서 자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만약 이 생산성이 증가하면 근로자는 더 높은 임금을 받고, 기업의 수익성은 확대되며, 세수가 증가해 궁극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생활 수준이 향상된다. 이 생산성이라는 지표만 놓고 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미국을 따라올 국가는 없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2024년 9월까지 미국의 시간당 생산량은 2019년 말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8.9% 증가했으며, 이는 연간으로 2%에서 2.8%의 비율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들은 상황이 어떨까?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의 생산성 추이를 보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2000년대 들어 다른 선진국들의 생산성은 오히려 만성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중국 정도가 기술 R&D 지출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경제 대국이다. 시진핑 정부는 최근 2030년까지 중국을 AI 혁신의 '주요'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OECD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AI에 투자된 벤처캐피털 규모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역동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Preqin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G7 국가에 투자된 벤처캐피털 자금의 83%를 미국이 차지했다. 또한 미국은 2024년 첫 10개월 동안 전 세계 전체 외국인 직접 투자(FDI)의 14.6%를 유치했으며, 이는 사상 최고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처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다시 말해,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선결되어야 할까? 그들은 그 답을 '성장과 평등의 병립 불가능성'에서 찾았다. OECD에 따르면 미국은 경제력에 비해 소득 불평등이 G7 국가 중 가장 심하고 기대 수명이 가장 낮으며 주거비도 가장 높다. 또한 경쟁이 극심하며 수백만 명의 근로자가 불안정한 고용 조건을 견뎌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미국이 계속해서 높은 생산성 증가를 달성하고 이에 따라 국가가 계속 부강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악조건 덕분이다. 이러한 악조건이 오히려 생산성 증가의 원천이다. 왜냐하면 배부르면 눕고 싶고 누우면 퍼질러 자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파는 것이며, 배가 고파야만 사냥에 나서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성장보다는 안정이라는 노선을 택한지 오래다. 혁신보다는 규제, 파이의 확장보다는 파이의 배분에 방점을 두고 국가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미 역동성과 혁신성이라는 날개를 스스로 꺾어버린 것이다.
# 야생성의 회복
마틴 울프의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문은 이러한 논리에 힘을 보탠다. 그는 <What Makes the US Truly Exceptional>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최고의 국가이자 최악의 국가라고 말한다. 즉, 번영과 잔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잔인함이 역설적으로 지속적 번영의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즉, 어떻게 보면 매우 야만적일 수도 있는, 좋게 말하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Wild, Wild, West'의 허슬 문화가 현재 미국 경제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가능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복지는 개나 주고 각자 알아서 생존하자는 약육강식의 개인주의가 다른 선진국 사람들의 눈에는 비문명적인 처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국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파는 것이며, 배가 고파야만 사냥에 나서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올해 11월 연설에서 유럽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녀는 장기적인 번영을 위해서는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로존의 경제 및 사회 모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부를 창출하는 능력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누는 것도 뭐를 만들어내야 나누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것도 생산해낼 수 없는데 분배를 논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최근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이탈해 미국 증시로 이른바 '투자 이민'을 떠나는 현상 또한 사실 이러한 생산성 격차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주가란 결국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는데, 이러한 기업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어떤 기업이 부가가치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냐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 대해서는 장기적 우상향을 기대해도, 한국 증시에서는 '인버스도 국장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부분의 리소스가 주거용 부동산 및 의대 보내기에 몰빵되어 있는 국가에서 부가가치가 창출될리 만무하다. 이른바 대분기의 시대다. 다시 말해, 중국이 생산을 미국이 소비를 담당하며 전 세계가 다 같이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고 각자도생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국가만이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야생성과 공격성을 되찾아오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