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은 지행합일의 문제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 퇴계 이황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보다 더 참된 경구가 있을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침, 즉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퇴계 이황 선생님이 말씀하시고 계신 바로 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일치', 즉 지행합일(知行合一)이야말로 각자가 가진 삶의 정도(正道)를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최고의 금언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잘못된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바로 배운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모든 요소들에서 나타난다. 가령, 살을 빼는 방법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소식하는 생활을 하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멀리하고 야식을 먹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투자 또한 마찬가지다.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투자 방식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 그것을 배운 대로 묵묵히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옛날 터틀 트레이딩 실험이 알려준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절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는 또 어떤가? 인간관계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배려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면 된다.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안다. 다만 그 정답을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초상화가 우리나라 천 원권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의 이념과 생각이 조선 성리학의 기본적인 틀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최근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를 보다 넓히기 위해 몇 가지 고전들을 탐독해오고 있던 중, <주역>과 더불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또 하나의 책이 있다. 바로 앞서 말한 퇴계 이황 선생님께서 저술하신 책, <성학십도>다. 물론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책이 아니라 아래처럼 그림책, 즉 도해의 형식을 띄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성학십도>는 인격과 생활의 근거가 되는 성리학의 이론적 배경을 열 가지 그림으로 설명한 책이다.
그가 이러한 책을 집필한 이유는 바로 어린 선조에게 성리학의 전체 판도, 즉 성리학이라는 숲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선조는 왕이 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고 나이 또한 17세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이때 이황의 나이는 68세로 굉장히 연로했는데, 결국 이 책은 노학자가 그의 마지막 정열을 바쳐 어린 왕이 성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소책자였던 셈이다.
내가 이 성학십도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성리학의 '시각화'에 있다. 우리 인간의 뇌는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훨씬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즉,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추가적인 사고 처리를 거쳐야 하는 텍스트나 말보다는 그림이 이해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나 텍스트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림 한 장을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직관적' 이해를 가능케 만들어 준다.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성학십도 중 가장 첫 번째 그림인 태극도를 보면 어린 선조를 위한 그의 배려가 가슴 깊이 느껴진다.
# 퀀트 투자의 성학십도를 그려본다면
나 또한 어떤 퀀트적 개념을 설명할 때 최대한 시각화적 요소 혹은 메타포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야만 그것이 뇌리 속에 더 깊이 그리고 또 오래 남기 때문이며, 더불어 제대로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축적되어야만이 여러 개념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창조성이 생긴다. 만약 어려운 개념을 그저 어렵게만 설명한다면 그것은 청자를 무시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었던 리처드 파인만은 그런 점에서 현 인류를 개안시켜준 진정한 계몽가다.
<퀀트의 정석>에서 제시했던 7개의 빌딩블록에 대한 도해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순히 나열식에 그치기만 했다. 그래서 퀀트 투자를 위한 각각의 요소들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지 그 존재성을 확인하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요소들이 가진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성학십도>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려본 아래의 '퀀트를 위한 성학십도'는 각 요소들의 포함관계 및 영향관계, 즉 관계성에 보다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게 '퀀트 투자를 그림 한 장으로 그려주시오.'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줄 것이다. 혹시 또 모르지. 나중에 <퀀트의 정석>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면 이 그림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