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부자는 없다
2018년 3월, 경매로 낙찰받았던 상가에 세입자가 새로 들어와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120만 원으로 내놓은 매물인데 정말이지 상상하지도 못할 임대금액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무려 보증금 1억에 월세 20만 원이다. 스스로도 정말 놀라웠다.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투자를 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어마어마한 종잣돈이 생겼다. 해당 호실에 근저당은 낙찰가에 80%이지만 전세권 설정에 동의해주는 조건으로 세입자는 월세 낮추는 선택을, 임대인인 나는 2년간 한정된 자금이지만 종잣돈을 마련하는 선택한 것이다.
* 전세권 설정: 세입자 입장에서 보증금을 100%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 계약 만기 때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경우 다른 법적 절차 필요 없이 전세권 설정 등기를 근거로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경매 신청을 법원에 바로 신청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임대인에게 전세권 설정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은데 보증금이 높은 상가나 사무실, 업무용 오피스텔에서는 동의해주기도 한다. 등기 접수할 때 등기권리증 등 임대인의 서류도 같이 들어가기에 임대인 동의가 없으면 전세권 설정은 불가능하다. 전세권 설정에 따른 법무비용은 본인이 필요에 의해서 하는 임차인 측에서 지불하는 게 관례이다.
처음엔 보증금만 1억 인 전세로 계약하지 않겠냐는 문의가 왔다. 잠시 고민 후 1억은 안 되겠고 거의 안 하겠다는 의사표시로 1억에 월세 20만 원이면 계약 의사가 있다고 했는데 아니, 그럼 1억에 월세 20만 원으로 계약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순간부터는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이틀 정도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과연 1억을 가지고 월 100만 원 이상의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투자를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기존에 월세 120만 원을 받던 상가이고, 제안받은 계약을 하게 되면 월세는 20만 원씩 꼬박 받게 됐으니 나머지 차액인 100만 원을 다른 데 투자하여 매달 만들어내야 한다. 100만 원을 만드는 건 본전이고 그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내야 했다. 고민 끝에 가능하겠다는 결론이 나와서 계약금 1천만 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월세 수익 100만 원을 목표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투자에만 온 집중을 했는데 막상 계약서를 쓰고 나니 종잣돈을 불리는 투자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은 먼 길을 돌고 돌아 정답을 찾았다.
2년간 1억으로 어떤 투자를 하는 게 좋을까. 나름 많은 고민 끝에 당시 대여섯 가지의 선택지는 준비해둔 상태였다. 월 100만 원은 물론이고 베스트 시나리오라면 월 300만 원까지도 가능한 투자 방법이 있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다. 당신에게 지금 현 상황에서 2년 간 1억 원이 주어진다면 어떤 투자를 할 것인가? 부동산 내에서도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고 부동산이 아닌 다른 투자를 하더라도 결국엔 내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일 것이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120만 원을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20만 원으로 만들어 낸 중개사 분께 경의를 표한다. 수년차 중개업을 본업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실로 거의 무에서 유를 창출해낸 작업이다.
유능한 중개사를 곁에 두는 것 또한 부동산 투자에 있어 핵심 포인트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안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중개사 분과 유대관계를 쌓아 가다 보면 쉽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딱 맞는 조건을 매물을 찾을 수도 있다.
계약서 쓰는 날, 1억에 20에 들어오시는 임차 인분께 월급 받는 직장 생활은 해본 적 없는지 물어봤다. 어렸을 때 아르바이트했던 경험 말고는 군대 다녀온 후로는 줄곧 의류사업을 했다고 한다.
퇴실 상태를 체크하러 상가에 갔다가 짐을 옮겨놓으러 온 세입자의 차를 보게 되었다. 1억 원 상당에 웅장한 엔진음이 매력적인 독일차였다. 차를 보니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그렇게 우연히 차를 보고 나니 집도 궁금해졌다.
안 그래도 계약서 인적사항 주소부분에 동호수가 없는 게 궁금했는데 임차 인분의 주소를 찾아보니 역시나 그림 같은 집이 나온다. 마당이 딸린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시세는 차값에 약 10배 정도였다.
'월급쟁이 부자는 없다'는 없다는 얘기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