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닭다리가 싫다고 하고 싶다
군입대를 위해 휴학한 아들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신체검사에서 저체중 진단을 받은 이후로 계속 기름진 음식을 찾고 있다. 원래 치킨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걱정이었는데 저체중 탈출을 핑계로 더 당당하게 치킨을 먹는다.
"어머니!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이 군대에서 종이 인형처럼 팔락거리면 좋으시겠습니까? 다 군입대를 위해 먹는 것이니 너무 뭐라 하지 마십시오."
"으이구, 말이나 못 하면..."
내 핀잔과 다르게 능글거리며 '어머니'를 외치는 아들이 밉지 않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는 딸이 빠진 3명의 조촐한 치킨파티!
나는 아이들이 치킨을 먹을 수 있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렇듯 닭다리를 먹지 않는다.
"엄마, 오늘도 닭다리 안 드세요?"
"응. 안 먹어."
"치킨 두 마리라 다리가 네 개나 있는데..."
"나 닭다리 별로 안 좋아하잖아~"
닭날개를 뜯는 나에게 남편이 딱 한 번만이라도 먹어보라고 닭다리를 내밀어도 아직은 먹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닭다리를 양보하는 것은 나의 사랑의 표현이다. 처음엔 닭다리를 먹고 싶어도 참았다면, 지금은 먹지 않는 게 마음이 더 편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나의 닭다리 양보는 너무 신파일까?
내가 어린 시절 엄마는 항상 김치를 많이 드셨다.
고기나 멸치 계란 반찬이 있어도 거의 김치만 드셨다. 어린 마음에 엄마는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까 생각했는데 조금씩 자라면서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아이들을 억척스럽게 키우시며 반찬이라고는 김치 하나 놓고 식사하시는 엄마에게 죄스러워 멸치는 너무 까끌거려서 싫고 고기는 냄새가 나서 싫다고 우기기도 했다. 그렇게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반찬 맛이 이상해서 그런가 싶어 멸치와 고기를 드셔보곤 했다.
"맛 괜찮은데? 자꾸 심술부리지 말고 먹어!"
내 요상한 방법으로 엄마가 맛있는 반찬을 한 입이라도 드시고 나면 나는 괜히 눈물이 차올라 목이 멘 상태로 고기와 멸치를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엄마는 엄마만의 방법으로 가난 속에서 세 아이들을 위해 최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내가 지금 닭다리를 먹지 않는 것은 힘든 시절 우리에게 반찬을 양보하신 엄마의 사랑과 같은 의미다. 내가 튀긴 것도 아니고 핸드폰 클릭 몇 번만으로 집 앞까지 배달된 음식이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때 괜히 뿌듯하다.
맛있게 닭다리를 뜯던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제 그만 양보하시고 드세요. 사랑이 지나치십니다."
"응. 50살 되면 먹지 말라고 해도 먹을 거야."
"크흡...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해가 지날수록 능글맞아지는 녀석이다.
"그래, 짜식아! 닭다리 양보 한 거면 정말 다 준거야. 알지?"
"당연히 알죠. 닭다리라니... 그건 찐사랑이죠!"
어쩌면 모성은 세월과 상관없이 언제나 신파일지 모른다.
엄마가 되는 순간 자녀를 향한 희생과 양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 똑같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치만 드시던 80년대 나의 어머니도, 짜장면이 싫다고 했던 90년대 노래 가사 속 그 누군가의 어머니도, 닭다리가 싫다고 하는 2023년의 나도 우리는 그저 자녀를 사랑하는 엄마이다.
"야! 그냥 다 먹어. 양보 그까짓 거 다 소용없어!"
공부도 싫다, 엄마도 싫다, 학교도 싫다는 아들 때문에 속상한 친구의 말이다. 자식은 전생의 원수가 맞는 것 같다며 속상해하는 친구는 밤 9시가 되어 가도록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왜 이 시간까지 밥을 안 먹었어?"
"태진이 아직 안 들어왔어. 오면 같이 먹어야지."
자식에게 양보는 다 소용없다고 아들은 전생의 원수가 맞는 것 같다고 했지만 친구도 결국, 아들을 기다리며 밥도 먹지 못하는 사랑 많은 엄마다.
오늘도 30분째 아들의 굿거리장단 족발타령과 자진모리장단의 치킨 타령이 시작되었다. 적당히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닭다리를 양보할 것이다.
아직은 조금 더 닭다리가 싫다고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