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딸들의 전쟁선포
"엄마, 같은 방 쓰는 친구들하고 생각해 봤는데요!"
올해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간 딸아이가 전화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뭘 생각해?"
하얀 새치가 가득한 남편의 머리카락을 염색 중이라 딸아이의 진지함에 AI 맞먹는 건조한 말투로 되물었다.
"밥이요."
"밥? 밥이 왜?"
"식비가 너무 많이 나올 거 같아서요. 오늘 친구들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해 봤는데 식비를 아껴야 할거 같아요."
딸이 머물게 된 기숙사는 식사 미포함 기숙사였기에 끼니 해결은 딸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학식이 6,000원인데 점심, 저녁 다 학식으로 해결해도 하루에 12,000원이고 음식점에서 먹으면 더 많이 나와서 힘들 거 같아요. 그리고 밥만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간식도 먹고, 옷이랑 화장품도 하나씩 사야 되는데 너무 여유가 없어요."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4명의 대학 새내기들이 머리를 맞대고 용돈 사용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것 같다.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라버린 지금, 식비는 그녀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내 통장에서 돈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난다면 좀 더 여유 있게 보내주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이런, 저런 어려움도 겪어봐야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친구들하고 함께 계획해서 용돈 잘 써봐."
그저 잘해보라는 응원을 해줄 뿐, 알뜰하게 살아가는 건 그녀들의 몫이다.
일주일 동안의 대학생활을 지내고 금요일 저녁 딸아이가 집으로 왔다. 반가워서 펄쩍 뛰는 강아지들과 코를 비비고 뽀뽀를 하며 거실을 뒹구며 그들만의 회포를 푼다.
"어이구,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
내 말에 마지못해 손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는 이내 반찬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반찬 좀 만들어 가야겠어요! 각자 반찬 2~3가지씩 만들어 가기로 했거든요."
딸의 머릿속엔 온통 반찬으로 꽉 차 있었다.
"내일 엄마가 만들어 줄게. 걱정하지 마!"
그제야 안심하는 딸아이의 얼굴이 빙그레 웃음으로 가득했다.
옛날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던 호환, 마마.
사실 나도 호환과 마마가 뭔지 잘 몰랐고 그 뜻을 알았을 때는 그런 게 있었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20살 딸아이들이 몇백 원에 벌벌 떠는 것을 보면 식비가 더 무섭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동그랑땡과 멸치볶음, 장아찌무침, 김치볶음을 들고 비장하게 기숙사로 떠난 딸.
4명의 딸들이 다시모여 각자 가지고 온 반찬들을 풀어놓고 뿌듯해할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딸들아!
부디 지혜롭게 식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길...
이 전쟁이 결코 슬픔이 아니라 너희들의 삶에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거라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4명의 딸들이 내 눈엔 그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