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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Sep 04. 2023

몇 미리 넣으신 거예요?

미의 기준은 바뀌니 살만한 세상 아닌가!

어린 시절 어른들은 짱구를 두 가지로 나누셨다. 

앞짱구와 뒷짱구로 말이다. 

뒷 머리가 나온 짱구(뒷짱구)는 흔한 편이었는데, 나처럼 이마가 볼록 나온 앞짱구는 좀 귀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아랫동네 공터로 놀러 나가는 날엔 동네 어른들은 나를 보고 

"쟤는 이마가 나와서 앞짱구여~"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어린 마음에 '앞짱구'란 그 말이 얼마나 기분 나쁘던지... 기분이 좋지 않은 그런 날엔 거울 앞에 가만히 앉아 찬찬히 내 얼굴과 이마를 살펴봤다.


작은 얼굴에 평범한 턱선. 보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콧대 위쪽 이마를 보면 넓고 볼록 나온 이마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흡사 로스웰 외계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의 이마는 보기에 좋은 일반적인 이마였고 아빠의 이마는 푹 꺼진 조금은 못난 이마였는데 유전자의 농간으로 그 둘 사이에 앞짱구가 태어난 것이다.


어린 나는 이마를 넣어보기 위해 벽에 이마를 대고 서있거나 잘 때 이마에 공책을 여러 권 올려놓고 자기도 했다. 뭐, 결과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었지만 심신의 안정을 위해 한 동안 절절한 도전을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과 이마의 비율이 조금씩 맞춰지면서 고등학생 시절부터는 적어도 로스웰 우주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앞짱구' 이마는 반짝반짝 볼록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나라 미의 기준이 바뀌면서 내 이마는 광명을 찾게 되었다. 내 나이 삼십 대 중반 정도부터 인가... 볼록한 이마 열풍으로 '이마성형수술'이 인기였다. 지하철과 광고판에 도배된 수십 군데의 성형외과 홍보에는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똑같은 이마들이 걸려있었다.


흠하나 없이 둥그렇고 볼록한 이마들이 줄을 잇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참 흡족한 마음이었다.

그래!

이제 당당하게 시원하게 이마를 까고 다니자, 내 이마에게도 광명의 날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듣는 외모에 관한 질문은...

"이마 하신 거예요?" 내지는 "이마 하신 거 아니죠?"이다.


조금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은 전자의 질문을 하고, 혹시나 내 기분이 상할까 봐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은 후자의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나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수술한 이마만큼 예쁘진 않죠~' 하고 웃으며 넘긴다.


보통은 이런 질문과 이런 답변을 반복했는데, 몇 해전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질문을 받았다.


"몇 미리 넣으신 거예요?"


순간, 당황스러워 "네?" 하고 되묻는 나에게 그녀는 이마를 가리키며 똑 같이 질문했다.

"이마, 몇 미리 넣으신 거예요?"

표정을 보니 정말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글쎄요... 보통 몇 미리 넣나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넣어져 있어서 양을 모르겠네요."

"어머! 자연산? 진짜 이마?"

태어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노골적인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에는 내 이마가 예뻐도 너무 예뻐서 피곤하다는 너스레로 넘겼던 것 같다. 그녀는 나에게 돈 벌었다고 하면서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미의 기준이 바뀌니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살만한 세상이다. 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었던 내 이마가 여성들이 좋아하는 예쁜 이마에 가깝다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지도, 책으로 이마를 누르는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텐데...


솔직히, 앞짱구가 예뻐 보이는 이 기준이 오래도록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모적으로 자랑할만한 게 없는 나에게도 예뻐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주름이 생기지만 그래도 내 이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 나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고 동그랗게 버텨준 이마가 오늘따라 반짝거린다. 세상은 돌고 도니 살만한 세상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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