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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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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된 Dec 07. 2020

나는 2500원의 확실한 행복을 찾았다.

우울할 때의 찾는 돌파구, 확실하지만 소소한 행복. 맥주

퇴근하는 길은 꽤나 기분이 좋으면서도 쓸쓸하다. 왜일까? 고민해보니, 노을의 몫이 크다. 산 뒤로 넘어가는 주황빛의 노을이 짙은 남색으로 변한다.  빛을 바라보며 퇴근을 하면 일렁일렁한 색때문에 하루를 끝마쳤다는 상쾌함과 쓸쓸함이 함께 밀려온다. 오늘은 내가 뭘 잘했고, 못했는지 나만의 품평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는 퇴근시간의 대부분은 칭찬의 시간보다 반성과 자책의 시간이 길다. 이런 시간들이 반복되어 쌓이다 보니, 퇴근길의 쓸쓸함에 기대어 내 자존감을 연필 깍듯 스스로 깎고 있는 모습에 의문이 든다. 반성만 하고 자책은 말아야  텐데. 노을의 주황색은 따듯한 색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이 든다. 일이든, 공부든 욕심대로 되지 않았을  퇴근길의 빛은 우울함을 한층 증폭시켜  기분까지 움직인다.


내 행동에 대해서 '그래도 되지, 선 넘어도 되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와 반대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그때는 이랬어야지,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라던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찌질함을 보였을 때라던가 이런 아픈 생각들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오늘의 반성은 상대방의 의견을 좋게 수용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못나 보였다. 상대방이 내가 제시한 의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줬을 때, 나는 쿨하게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표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냥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한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오는 길은 술이 땡긴다. 건강을 생각해 끊으려 다짐했던 맥주였지만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향한다. 4캔에 1만원하는 행사 맥주를 기웃거리며 어떤 종류를 택할지 한참을 고민한다. 마음에 드는 맥주를 챙겨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분 좋게 누른다. 그 순간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먹을 상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언제 우울했는지 싶을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에 맥주가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구나를 깨닫는다. 2500원의 행복이 어디 있을까. 비싼 돈을 써도 이렇게 가성비 넘치는 행복감을 주는 것이 있었던가? 맥주만큼이나 나에게 위로감을 주는 소비가 어디 있으랴. 우울이 소비로 전환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내 감정을 물건으로 컨트롤하고 싶지 않다는 복합적인 신념을 가지면서도,  내 우울을 책임져줄 수 있다면 이런 소비쯤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오만 생각의 고민과 행복이 스쳐 지나가고 현관문을 연다. 


안녕~ 다녀왔어. 나랑 같이 맥주 마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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