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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Nov 30. 2022

그는 왜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월든>을 처음 만난 건 박혜윤의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책이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기자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는데, 저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소로의 <월든>이었다. 박혜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지식인 그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몇 년 간을 살게 된다.


그를 월든 호숫가에 자리 잡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성공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행하는 노력과 그에 소요되는 시간이 불필요하다고 여겼고, 적게 소유하고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할 때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자연에서 머무르며, 통나무로 집을 짓고 콩밭을 매고 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생활이 그의 삶을 노동으로 잠식하는 게 아니라 더 큰 만족을 가져다 준 것은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그것에 얽매이게 되고, 노동하게 되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몰두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진다는 이야기는 법정의 무소유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애쓰느라,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들을 놓치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며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들은 무엇일까? 내 삶을 그 자체로 음미하고 내면에 직면해 보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눈은 외부로 향해 있지만 우선으로 탐구해야 할 대상은 나의 내면이라는 넓은 바다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고장 젊은이들의 불행은 농장과 주택, 창고와 가축과 농기구들을 유산으로 받은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일단 얻으면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차라리 광막한 초원에서 태어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자신이 힘들여 가꾸어야 할 땅을 보다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이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왜 한 ‘펙’의 먼지만 먹어도 될 것을 그들은 60에이커나 되는 흙을 먹어야 하는가? 왜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가? 그들은 이런 모든 소유물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어렵사리 한평생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18p)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 당시 내가 생활했던 것처럼 소박하게 산다면 절도가 강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 "너도밤나무 그릇으로 만족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니." (260p.)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312p.)
하루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사소한 부분까지도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음미해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38p.)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148p.)


소로는 통나무집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월든>에서 그는 한 장을 할애하여 독서의 의미,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다.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독서는 어찌 보면 고된 노동이다. 내 소중한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하며, 텍스트로 제시되어 있는 여러 문장들을 내 안에서 구조화하고 내면화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렇게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만큼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하루하루 일상이 참 바쁘게 흘러간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소로의 글을 읽고 나니 잠시 멈추어서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애를 쓰는 그 시간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이루고자 하는 그것이 만약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소요하는 그 시간을 좀더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처럼 저자가 부러웠던 적은 처음이다. 모든 생활을 접고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만을 갖춘 채, 자연을 벗삼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지금 내 삶과 너무 거리가 멀어서. 어쩌면 소로가 지금 나를 보면 당신이 입고 있는 그것, 당신이 추구하고 있는 그것만 포기한다면 더 멋진 삶이 찾아올 거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기’,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 소로는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월든>을 통해 그를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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