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를 아껴 가며 읽었다. 그녀의 작품을 챙겨 읽는 편이지만 고이 아껴서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즐길 거리가 온전히 텍스트뿐이었던 때, 소설 속 단어 하나, 단어와 단어가 만나 오묘하게 빚어내는 빚깔이 그야말로 ‘문학적’이어서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런 김애란의 산문집이라니, 당장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뒷부분에서 그녀는 책을 읽을 때 밑줄 긋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서걱거림을 느끼며 밑줄을 마구마구 긋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북으로 읽어서 이점이 참 아쉽다. 마음에 닿는 부분은 사진으로 담아두었지만 충분히 마음에 차지 않아 종이책으로 다시 구입하고 싶다. 넘쳐나는 물건 탓에 여간해선 책을 들이지 않는 요즘이라 구입하고 싶은 책이 된다는 건 내 마음에 그야말로 쏙 들었다는 뜻이다.
책에서 나온 인물들이 사실은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도도한 생활>에서 빚보증을 잘못 섰던 아버지, 맛나당을 운영했던 <칼자국>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 이야기들이 작가의 서사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김애란 작가가 각종 상을 받고 등단했을 때 부모님께서 무척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소설 속 인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작가를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이 새삼 궁금해졌다. 작가들이 작품에서 구현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신의 실제 부모의 이야기에 조금은 빚지고 있을테니까. 그것을 보는 부모들은 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가 부모님의 연애 ‘썰’을 풀며 자신이 셋째라고 밝히는데, 나와 같이 첫째에 이어 둘째를 낳으려다 쌍둥이가 생긴 경우여서 또 격하게 반가웠다.(흐흐) (119p. 현실적인 우리 어머니, 하나 버리자고 했을 때, 낭만적인 우리 아버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 – 나, 잊지 않고 있다.)
문학 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김연수 소설가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청춘의 문장>에서 나의 가슴에 환하게 들어왔던 문장을 다시 소환하기도 한다. 김연수가 두돌쯤 된 아이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뒤돌아보던 아이의 얼굴을 보던 그때의 여름을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문장이다. ‘편혜영’ 작가, 윤성희 작가와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그 어려운 이행을 유머러스하게 써 놓기도 했다.
(어딘가 틈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땐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을요) 이외에도 문학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 그것에서 비롯된 동질감, 그리고 ‘애정’을 드러낸다. 난 문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문학을 읽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애정’한다.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은 세월호에 대한 글이다. 참담함, 분노가 느껴진다. 전 국민이 바라보며 가슴을 쳤던 그 장면과 황망한 슬픔에 대해 김애란 작가가 글로 표현해줘서 너무나 다행스럽고 고맙다고 느꼈다. 기우는 봄, 기울어가는 배에서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라고 밝게 말하던 여학생을 더 떠올리며, 그들의 고통에 내가 영원한 타자라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낀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러웠고, 부럽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전할 수 있음이 부럽다. 김애란의 소설뿐 아니라 이런 산문을 만나게 되어서 기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