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라시아 Feb 04. 2023

글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러웠고, 부럽다.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작년 말,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를 아껴 가며 읽었다. 그녀의 작품을 챙겨 읽는 편이지만 고이 아껴서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즐길 거리가 온전히 텍스트뿐이었던 때, 소설 속 단어 하나, 단어와 단어가 만나 오묘하게 빚어내는 빚깔이 그야말로 ‘문학적’이어서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런 김애란의 산문집이라니, 당장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뒷부분에서 그녀는 책을 읽을 때 밑줄 긋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연필과 종이가 맞닿는 서걱거림을 느끼며 밑줄을 마구마구 긋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북으로 읽어서 이점이 참 아쉽다. 마음에 닿는 부분은 사진으로 담아두었지만 충분히 마음에 차지 않아 종이책으로 다시 구입하고 싶다. 넘쳐나는 물건 탓에 여간해선 책을 들이지 않는 요즘이라 구입하고 싶은 책이 된다는 건 내 마음에 그야말로 쏙 들었다는 뜻이다.     

  책에서 나온 인물들이 사실은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도도한 생활>에서 빚보증을 잘못 섰던 아버지, 맛나당을 운영했던 <칼자국>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 이야기들이 작가의 서사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김애란 작가가 각종 상을 받고 등단했을 때 부모님께서 무척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그분들은 소설 속 인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작가를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이 새삼 궁금해졌다. 작가들이 작품에서 구현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신의 실제 부모의 이야기에 조금은 빚지고 있을테니까. 그것을 보는 부모들은 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가 부모님의 연애 ‘썰’을 풀며 자신이 셋째라고 밝히는데, 나와 같이 첫째에 이어 둘째를 낳으려다 쌍둥이가 생긴 경우여서 또 격하게 반가웠다.(흐흐) (119p. 현실적인 우리 어머니, 하나 버리자고 했을 때, 낭만적인 우리 아버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 – 나, 잊지 않고 있다.)     

 문학 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김연수 소설가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청춘의 문장>에서 나의 가슴에 환하게 들어왔던 문장을 다시 소환하기도 한다. 김연수가 두돌쯤 된 아이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뒤돌아보던 아이의 얼굴을 보던 그때의 여름을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문장이다. ‘편혜영’ 작가,  윤성희 작가와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그 어려운 이행을 유머러스하게 써 놓기도 했다.

(어딘가 틈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땐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을요) 이외에도 문학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 그것에서 비롯된 동질감, 그리고 ‘애정’을 드러낸다. 난 문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문학을 읽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애정’한다.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은 세월호에 대한 글이다. 참담함, 분노가 느껴진다. 전 국민이 바라보며 가슴을 쳤던 그 장면과 황망한 슬픔에 대해 김애란 작가가 글로 표현해줘서 너무나 다행스럽고 고맙다고 느꼈다. 기우는 봄, 기울어가는 배에서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라고 밝게 말하던 여학생을 더 떠올리며, 그들의 고통에 내가 영원한 타자라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낀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러웠고, 부럽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전할 수 있음이 부럽다. 김애란의 소설뿐 아니라 이런 산문을 만나게 되어서 기쁠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성적 존재는 어떻게 종교적 존재가 되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