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뮤지컬로 보았던 ‘위키드’가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꼽아 기다렸고, 오늘 드디어 볼 수 있었다.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마지막엔 급기야 전율이 느껴졌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내용이 들어가 있으므로, 영화를 보신 분만 보세요!)
아름답지 않은 ‘진실’의 발견
어머니의 부정으로 태어난 엘파바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녹색’으로 태어난다. 세상에 나오는 순간 모두에게 외면받으며 기묘한 힘을 내뿜던 그녀는 동생과 함께 (어쩌다) 학교 생활을 함께 하게 된다.
녹색 피부로 화려하게 등장하며 또다시 모두에게 외면받던 찰나, 마담 모리블의 눈에 띄게 되면서 그녀의 학교 생활은 달라진다. 일대일 마법 교육을 받게 되고, 마법사 오즈의 초대를 받아 에머랄드성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진실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위키드’의 뜻은 ‘사악한 자’이다.
마법사 오즈 일당은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고, 원했던 대로 엘파바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그녀를 마녀로 매도한다. 그들이 ‘마녀(위키드)’로 명명하고 공포하자,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제 피해야 할 최악의 존재가 되고 만다.
지독한 아이러니
이 장면을 보면 영화 전반이 ‘아이러니’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끊임 없이 묻게 된다. 진짜 ‘위키드’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묘한 장치로 진실을 가리고, 내부의 단결을 위해 애꿎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어 집단에서 배제시키는 그가 바로 위키드가 아닌가. 이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마을의 평화를 위해 팻말을 설치하고 이리떼가 온다고 경고하는 촌장의 위선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이강백의 <파수꾼>이라는 희곡이 떠오른다. 영화에서는 동물이 그 희생양이 된다. 악인들의 욕망으로 인해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던 인간과 동물의 세계는 분열되고, 동물들은 거주의 자유와 언어를 상실한다. 그리고 터전에서 배제당한다.
엘피바는 염소 교수가 강단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보며 분개한다. 그리고 극도의 연민을 느낀다. 새로 등장한 인간 교수가 철창에 넣은 아기 사자를 데려 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자 그녀는 또다시 분노하며 모두를 잠재운다. 엘피바는 무기력하게 배제당하는 아기 사자의 모습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고, 위력으로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당함의 실체이자 배후가 오즈라는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녀의 외로운 선택을 응원하며
하지만 에머랄드 성을 둘러싼 마을에는 변화가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진실을 알지 못하며, 위키드인 엘피바를 쫓기 위해 모두가 내달릴 뿐이다. 엘피바는 가장 낮은 곳을 향했다가도,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솟구친다.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한계를 넘어, 중력을 넘어 날아가는 엘피바. 오즈의 성으로 향할 때는 글린다와 함께였지만, 이제 그녀는 혼자이다. 그녀의 외로운 선택이, 가고자 하는 하늘이, 선과 정의의 하늘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를 뜨겁게 응원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