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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Jan 10. 2023

'아바타2(물의 길)'이 나에게 건네는 말들

영화 '아바타' 1편이 나왔을 때(2009)도 분명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었는데 화면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는 것, 그리고 조금 졸렸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영화의 어떤 부분도 나에게 이렇다 할 감흥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큰 기대없이 '아바타2(물의 길)'를 관람했다. 워낙 유명한 영화고 영상미가 좋다 하니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에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 영화는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잔상이 참 많이 남는다.


이전의 지구와는 다른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바타 1을 보았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 지구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아바타 1이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미세먼지, 코로나 같은 것들은 재난 영화에서나 떠올릴 법한 것들이었다. 언젠간 지구의 자원이 고갈된다는 경고 메시지가 꾸준이 있어왔고 아바타 1도 그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겠지만, 그때의 지구는 지금만큼 살기 힘든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뿌연 유해물질로 흐려진 대기에 둘러싸인 채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의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스크린을 가득 채운 판도라 행성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워 보인다고 '남'의 것을 가져도 되는가

인간이 찾아낸 대안은 판도라라는 행성이다. 그곳에서 자원을 얻는 것뿐 아니라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나비족이 오랜 세월 살아가고 있다.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곳,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곳에서 인간보다 파랗고 큰 나비족이 살아간다. 나비족이 결혼을 하고 생명을 잉태하고 가족을 이루고, 부족을 이루고 숲과 강을 벗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곳은 그들의 터전이다. 내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름답다고 해서 '남'의 것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대답한다 하더라도 그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우리'와 '타인'

인간은 '우리' 종족을 새로운 삶을 위해 희망을 찾아 떠났고 그 종착지가 바로 '판도라' 행성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나비족은 우리와는 다른 '타인'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나와 타인'이라는 단순한 대립구도를 놓고, 나와 다르며 나의 이익에 반하는 자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발상은 지극히 폭력적이다. 부족을 찾아와 제이크의 소재를 물으며 집에 불을 지르는 인간의 모습은 그러한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가 그 타인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우리와 타인은 정말 다른 것일까? 그 이분법이 깨진다면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타인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맞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파이더'와 제이크'에게 있다. '스파이더'는 인간으로, 너무 어려 비행선에 타지 못해 나비족과 생활하며 야생의 상태로 자란다. 나비족의 말을 익히고 나비족처럼 행동하며 그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한다. 침탈자인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이지만 나비족의 삶을 사는 스파이더는 '우리'인가 '타자'인가. 그 경계는 모호해진다. '제이크'도 마찬가지. 나비족이 되어 자녀까지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그는 '우리'의 영역에는 발도 디딜 수 없는 것일까.



빼앗기는 자의 시선.

많은 역사는 침략자의 시선으로 기술되며, 승리의 결과로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아바타는 아무런 죄가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인데, 침략자로 인해 터전을 훼손당하는 피침략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인간은 제거해야 할 대상을 제거할 뿐이고 할 일을 할 뿐이겠으나, 빼앗기는 자들은 고통으로 울부짖게 된다. 아름답게 빛나는 자연이 인간의 침략으로 불타는 장면이 내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던 것은, 이 영화가 '빼앗기는 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우월한가

인간은 그렇다면 타인에 비해 우월한가? 고도의 지적 생명체인 툴쿤을 사냥하며, 자신이 더 똑똑하다며 자신하는 순간 툴쿤에 의해 팔이 잘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사냥꾼의 모습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 우월감에 취해 많은 동물들을 짓밟고 학대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주민의 터전을 빼앗고 이득을 취했던 수많은 인간들을 떠올렸다. 이 영화가 단지 가상 현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우화이며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부끄러워졌다.

 다시, 인간은 우월한가? 오히려 타인인 나비족이 더욱 우월했던 것 같다. 자연과 교감하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감사할 줄 알며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그들이 적어도 인간보다는 낫지 않은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다.

나비족의 입장에 동화되어 함께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영화를 관람한 터라 누군가가 죽는 장면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크의 첫째 아들 '네테이얌'이 총에 맞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인 '스파이더'를 구하기 위해 배에 침투했다가 죽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이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을 훼손하려 할 때 대항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네테이얌의 장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주 오랜 세월 있어온 생명의 기원, 바다는 네테이얌을 갓 태어난 아기처럼 소중하게 품는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장면은 죽음의 장면이었음에도 무척 아름답고 숭고했다.


파랗고 우리보다 조금 큰, 반짝이는 그들.

그들은 정말 타인일까.

우리는 그 타인과 다를까.


영화 아바타는 아직도 나에게 물음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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