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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ICO Sep 29. 2020

엄마의 뒷모습

낡은 주택가 안 다락방이 얹어져 있는 투박한 빨간 벽돌집에서 살 적에, 나는 집으로부터 10분 너머에 있는 학교를 마치면 할인마트에서 산 듯한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실내화 가방을 이리저리 흔들며 또래의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하교한다.


그때 당시에 인기 있던 메이플 스토리, 바람의 나라, 크레이지 아케이드 등의 대화로 정말 쉴 새 없이 얘기한다.

같은 동네지만 방향이 다른 친구들과는 인사를 하며 헤어지고, 작은 언덕을 살짝 넘어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면,

대문의 페인트가 까져서 살짝 흉이진 녹색 대문이 보인다.


문 앞에 나와계신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드리고 우리 집 2층을 쳐다보면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다. 집 안으로 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가 난다. 신나서 계단을 탁탁 탁탁 뛰어오르면, 언제나 그렇듯 문 앞에서 부터 멸치육수를 우리는 향이 나고, 앞치마를 두르고 파와 어묵을 썰고 빨간 바가지에 떡을 불려놓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내가 오기 전에 빨리 하나라도 더 준비하기 위해서인지 내가 집에 온 것도 모른 채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다. 잦은 일로 인해서 주부습진으로 피부가 까져서 고통스러워하시면서도 하얀 장갑을 끼고 서있다.


내가 인기척을 내면 고개만 살짝 돌린 채 서둘러 손부터 씻고 양치부터 하라던 우리 엄마. 손을 탈탈 털고 나오면 맹물만 끓고 있던 프라이팬에 어느새 떡볶이가 준비되어 있다. 떡볶이가 완성되자마자 도착한 누나.


누나와 내가 사이좋게 떡볶이를 나눠먹는 모습을 보면서 은은하게 미소를 한 번 짓고는 TV를 보던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엄마가 해주시던 특이한 멸치육수 향이 나던 짭짤하고도 고소한 떡볶이의 맛.


떡볶이를 허겁지겁 먹어치운 누나와 나는 프라이팬을 설거지통에 넣고 물을 붓는다.

그리고 냉동실을 열어 월드콘을 하나씩 집고는 서둘러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간다.


다락방 문 사이로 비치던 옅은 오후의 햇빛과 잠자는 아기의 숨처럼 새근새근 불어오던 바람.

다락방에 들어와 창문을 열고 누워있으면, 어느새 엄마가 빨래를 널고 계신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집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낡은 가전제품을 산다며 스피커를 달고 길을 지나가는 라보, 다락방 아래에서 TV를 보며 웃던 엄마의 웃음소리.


영원할 것만 같은 엄마의 뒷모습들은 어느새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때의 엄마의 앞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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