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
군주는 어떤 논의 거리도 더불어 하지 않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홀로 처리하도록 하여야만 한다. 위에 있는 군주는 진실로 문을 굳게 닫아 안쪽에 빗장을 채우고 방에서 뜰을 똑바로 보아 아주 가까운 거리의 일도 눈앞에 펼쳐지면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상을 줄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형벌을 가할 자에게는 벌을 내리고, 그 행동한 바에 따라서 저마다 스스로 보답을 받게 한다. 선하건 악하건 반드시 미치는 바가 있으면 누가 감히 군주를 신뢰하지 않겠는가. 법도가 확립되어 있다면 다른 일도 모두 정렬될 것이다.
군주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신하가 맡은 일을 하게 하고 그것의 결과로 상과 벌만 내리라고 합니다. 군주도 사람인데 신하에게 모든 걸 맡기고 본인은 호불호를 드러내지 말고 있으라고 하다니, 한비자를 읽다 보면 사람이 아니라 AI와 같은 군주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다르게 보면 공평무사한 매니징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실무를 군주 한 사람이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중에 일부 군주가 직접 하는 일은 그 중요성이나 의미를 떠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다른 일은 소외될 수도 있고요. 때문에 이 구절은 군주는 매니징이라는 본분에 충실하고 신하에게 전권을 위임하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 신하가 맡은 일에서 만큼은요. 그리고 군주는 그 신하에게 상과 벌을 확실하게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군주의 일입니다.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고, 그러기 위해 계속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 실무를 하지 않으면서 모든 실무의 상황을 다 파악해야 한다니, 매니징이 그래서 어렵습니다. 역시 기본은 명확한 법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사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전쟁이기도 합니다. 전쟁에서는 장군이 곧 군주죠. 장군은 직접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지휘만 할 뿐. 하지만 승리의 공과 패배의 책임은 장군에게 가장 많이 갑니다. 병사들이 그런 장군을 얼마나 신뢰하고 잘 따르는지에 따라 좋은 장군인가 그렇지 않은 장군인가가 나뉩니다. 현실의 전쟁 같은 삶에서는 전쟁 같은 행태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홀로 분격해 하다
군주의 이익은 능력 있는 자를 얻어 벼슬자리에 임명하는 데 있고, 신하의 이익은 무능하면서도 일자리를 얻어내는 데 있다. 군주의 이익은 일 잘하는 사람을 얻어 작위와 봉록을 주는 데 있고, 신하의 이익은 공이 없으면서도 부유해지고 귀하게 되는 데 있다. 군주의 이익이란 호걸들에게 능력을 발휘시키는 데 있다면, 신하의 이익이란 패거리를 지어서 사리를 도모하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나라는 영토가 깎여도 세도가의 집안은 부유해지고, 군주는 비천해져도 대신들은 권세가 막강해지는 것이다.
한비자에서는 이익이 중심이고, 그 이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때문에 군주와 신하의 이익은 명백하게 다르고, 이를 인정해야 그것을 이용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충성스럽고 좋은 신하들도 많은데 신하들을 너무 좋지 않게만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법가는 성악설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나 봅니다. 하지만 저때까지의 역사도 그렇고, 그 이후의 역사도 그렇고, 좋은 신하들은 극히 드뭅니다. 성군 역시 극히 드물고요. 한비자는 사람에 기대지 않고 시스템에 기대는 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합니다. 좋은 시스템이 있어야 사람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원칙이 계속 지켜질 테니까요. 물론 그 좋은 시스템이란 군주에게 힘이 강하고, 군주가 법에 따라 술을 행하는 시스템입니다. 군주의 법술이 명확하다면 신하는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본인의 이득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러고 보면 힘이 있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힘은 나 혼자만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의미하고, 그런 힘이 클수록 더 큰 책임이 따르니까요. 영화 <스파이더맨>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