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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Tube Jan 27. 2021

제7편 '이병'

제7편 '이병'

두 개의 칼자루

무릇 호랑이가 개를 복종시킬 수 있는 까닭은 발톱과 이빨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일 호랑이에게서 발톱과 이빨을 떼어 개에게 사용하게 한다면 호랑이가 도리어 개에게 복종할 것이다. 군주는 형과 덕으로 신하를 통제하는 자이다. 그런데 지금의 군주가 형과 덕을 신하에게 주어 사용하게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통제될 것이다.


형과 덕(또는 상과 벌)은 군주의 강력한 무기이며 신하에게 절대 줘서는 안 되는 무기입니다. 만일 신하에게 그 무기 중 어느 하나라도 준다면 해당 신하는 그 무기를 마음대로 사용할 것이고, 백성들은 군주가 아닌 신하에게 잘 보이려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세력을 형성해서 나중에는 군주를 시해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반란은 이런 이인자로부터 시작되고, 그런 것을 막고자 이인자를 절대 두지 않는 냉혹한 일인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공평무사하게 원리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찌 보면 개인의 수양을 닦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군주의 역할이 잘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상과 벌은 오로지 군주가 쥐고 있습니다. 일의 성공을 위해 상과 벌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니까요. 신하들은 그 기준 하에서 본인의 이득을 늘리기 위해 행동합니다. 당연히 상은 추구하고 벌은 회피 하겠죠. 때문에 모든 리더에겐 그 2가지가 모두 다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준다면 훌륭한 매니저(군주)라 하더라도 그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나 또는 내가 속한 곳의 리더는 과연 그 2가지를 모두 다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형/명이란 (진술한) 말과 (실제) 일의 성과를 말한다. 신하 된 자가 의견을 진술하면 군주는 그 말에 근거해 일을 부과하며, 전적으로 그 일에 따라서 그의 공적을 심사한다. 공적이 그 일에 들어맞고 일이 그 말과 들어맞으면 상을 주고 공적이 그 일에 들어맞지 않고 일이 그 말과 들어맞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과장해서 말을 하였다가 공적이 적으면 벌을 받게 되니 공적이 적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공적이 명목과 들어맞지 않아서 벌을 받는 것이다. 신하들이 (애초에) 진언한 것은 보잘것없는데 큰 공을 이룬 경우에도 벌을 주어야 하는 것은 큰 공적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명목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큰 공을 이룬 것보다 해로움이 크기 때문에 벌을 내리는 것이다.


한비자를 읽고 난 후에 딱 한 구절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구절을 꼽겠습니다. 한비자 내용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구절이자 '고성과'가 최고라는 흔한 통념에 제대로 의문을 던지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은 당연히 좋고, 공을 적게 세운 사람은 당연히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비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공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처음에 약속한 것과 얼마나 합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신하가 자신의 역량과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그것에 맞게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에 정확히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의 역량은 모두 다르기에 모두의 목표도 당연히 다릅니다. 단순 성과만을 놓고 누가 더 잘했네 못했네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최선은 모든 사람이 본인의 역량의 최대치에 맞는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공적인 영역에서 목표는 보통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을 내 역량에 맞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를 실제 행하는 사람이 정해야 합니다. 군주는 그것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결과에 따라 상과 벌만 시행하면 됩니다. 이는 매우 이상적이고 이론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렇게 불가능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일반적인 통념과 많이 다를 뿐이죠. 과한 목표를 무조건 달성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나, 목표를 크게 초과 달성했다고 좋아하는 것이나, 한비자에 따르면 모두 부적절합니다.


일반적인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고 그 사람들의 연봉, 즉 기대치가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과연 그 기대치에 맞게 사람마다 다른 적절한 목표가 설정되는지는 의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과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채찍질하죠. 또는 고연봉자의 성과만 칭송하기도 하죠. 어쩌면 그 사람에게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요. 큰 방향성은 모두가 함께 바라보는 것이 맞지만, 세부적인 실천 목표는 각 개인의 상황과 역량에 맞게 설정되어 그것을 100%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그 어떤 요인으로 초과 성과를 낼 수는 있겠죠. 그것이 본인이 돋보이기 위해 처음부터 지나치게 낮은 목표를 잡은 것만 아니라면 괜찮을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개인도 더 의욕이 생기고, 매니저는 서로 다른 개개인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결과를 더 수월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목표 달성이든 실패든 어떤 경우에도요.


한비자의 이 구절만큼은 모두가 곱씹어보고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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