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확인하는 방법 중에서 비교적 쉽고 확실한 방법이 나와 비슷한 또래의 타자와 비교해 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는 나를 확인하기에 최상의 비교대상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동네에서 같이 자라며 오늘까지 변함없이 함께하는 죽마고우 친구가 있다. 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새벽부터 포천을 출발해 서울역을 향했다. KTX에 몸을 싣고 출발한 지 얼마지 않아 동대구에 도착한다. 친구가 마중 나온 것이다. 반갑게 서로의 손을 잡고 지난 3년간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짧다면 짧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많은 일들을 겪었다. 각자의 직장과 가정을 지키며 힘겹게 버텨준 시간이 한편 대견스럽다. 전화로 서로의 안부만 묻고 살기를 3년. 다행히 감염 상황이 완화되어 친구의 얼굴이라도 보자며 큰 맘먹고 집을 나선 여행길이다.
한 녀석은 대구와 인접한 현풍에서 근무하고, 자식들 공부를 위해 집은 부산에서 살고 있다. 주말 살이가 길어지면서 번 돈 도로에 다 깐다며 늘 푸념이지만 싫지는 않은 눈치다.
또 한 녀석은 30년을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고 있는 한 우물형 인간이다. 전형적인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현재는 포항에 살고 있다. 5년 전이었던가? 회사에서 정기검진을 받던 중에 갑상선 암이라는 청천벽력의 판정을 받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자신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고 포항 인근에 조그만 땅을 개간하며 주말이면 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농막 하나 빼고 나면 손바닥만 한 밭뙤기가 남는다. 그곳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며 갖은 품종의 작물과 꽃들을 심어 놓았다. 일명 소량 다품종 전략을 실천하는 셈이다. 오십 중반의 나이를 넘어가는 세명의 친구가 이곳에 모인 것이다.
사흘의 밤과 낮을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고 떠들기를 수차례. 어느덧 헤어짐은 아쉬움으로 남고, 어김없이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아침나절부터 주변 풀무더기를 예초기로 정리하고 감자밭 두 고랑을 캐서 바구니 가득 담아 놓는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묵묵히 행동으로 전해 주고 포천으로, 대구로, 그리고 포항에서 내년의 오늘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다
한 번씩 크게 아파본 경험을 갖은지라 하나같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 달 전에만 해도 어렵게 약속된 시간을 오로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보내려는 마음을 먹었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금언처럼 두 친구는 건강에 크게 놀라고 힘들어했었기에 조금 더 나은 내가 그들의 얘기를 치유해 주듯 들어 주리라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한 잔 두 잔 잔들이 부딪치고 심산유곡 계곡의 물소리와 물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깊어지는 밤은 반짝이는 별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얘기는 얘기를 부르고 청춘의 연애 얘기도 무르익어 간다. 간간이 사는 얘기가 섞이고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은 심정을 토로하였다. 한참을 얘기하는 동안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만 주자고 단단히 마음먹은 일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곤 내 사는 얘기를 친구들이 미소 지으며 듣고 있지 않은가.
아뿔싸! 미안하고 또 미안한데 나도 너희들과 있으니 너무 편해서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리라.
결국 나의 썰로 밤을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