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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Apr 30. 2022

헤어짐을 준비할 때

晩書 홍 윤 기_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예고된 이별은 준비할 수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헤어짐은 슬프고 당황스럽다. 내가 녀석을 입양할 때도 가장 신경 쓰였던 문제가 엉뚱하게도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잘 키우기는 하겠지만 정(情)을 많이 주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어디 정(情)이란 것이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맺고 끊을 수 있는 것이던가? 녀석과 함께 황혼을 바라보며 남은 세월을 살아가다가 내가 먼저 내 원향(遠鄕)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 이별의 아픔을 최소화하는 길이겠지만 그러면 또 녀석의 아픔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가급적 비슷한 시기에 떠날 수 있다면 슬픔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 싶어서 남은 세월을 계산하게 되었다. 녀석은 ‘뽐’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다. 내게 삶의 시간이 열다섯 해쯤 남았다면 녀석들의 평균 수명도 그 정도 된다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아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입양하기로 해서 2019년에 생후 2개월 된 녀석을 데려 왔다. 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는 예정된 원향(遠鄕)으로의 여행을 떠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헌데 문제는 요즘을 일러 100세 시대라고 하니, 어쩌면 내 삶의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처럼 녀석들의 평균수명도 20 년쯤으로 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노령화 고령화 시대로 가는 동안 녀석들도 노령화되고 있어 주위에 열대여섯 살 난 노견(老犬)들이 제법 많다. 동물병원들이 성업을 이루는 이유다. 우리 ‘뽐’ 이만 해도 처음에 중성화 수술을 해야 건강하게 큰다고 해서 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만만찮은 수술비를 쾌척하여 수술을 했다. 심장 사상 충에 대한 예방차원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석을 지내고 나니 너무 많이 먹었는지 설사를 해서 또 거금 10만 원을 들여 병원을 다녀와야 했다. 나는 국가에서 작은 공헌을 했다고 병원이 무료인데 녀석은 돈 덩어리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녀석에 대한 보험을 들었다고 7만 원 상당에 보험금이 나왔다. 살다 보니 ‘개 보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뽐’이는 우리 집 식구로 자리 잡았다. 


자식 자랑이 팔불출이라니, 개(犬) 자랑은 구(狗) 불출쯤 될법하다. 해서 자랑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녀석이 기특하긴 하다. 생후 두 달 만에 집에 들어온 후 약 2개월이 지나고 난 후 어느 날부터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본다. 가끔 집에 오는 애들이 천재 견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보자고 하는 걸 내가 말렸다. 개는 개답게 사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사료도 자율배식이다. 제 그릇에 넉넉하게 사료를 주면 스스로 알아서 먹을 만큼 먹고 남긴다. 내가 보지 않을 때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용변 보고 왔다고 뒷발질로 내게 보고하면 녀석에게 간식을 준다. 시끄럽게 짖는 일도 없고 조용하더니 두 살이 넘더니 자기 고집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제 맘에 들지 않거나 처음 보는 것은 먹지도 않는다. 장난감도 시큰 둥이고, 다만 밖으로 나가자면 좋아한다. 


아직은 어려서인지 몰라도 산책 중에 만나는 낯선 개들을 보면 무조건 달려가 친구가 되잔다. 대형견이던 소형 견이던 가리지 않는다. 관찰을 해 보면 그들은 그들대로의 위계를 아는 모양이다. 나이 먹은 개들은 천방지축 들이대는 녀석을 어른스럽게 지켜보다가 지나치다 싶으면 큰 소리로 꾸짖듯 으르렁 거리고 '뽐'이는 기겁을 하고 꼬리를 내린다. 어른도 몰라보는 인간의 요즘 세태에 비하면 훨씬 보기 좋다. ‘개만도 못하다.’란 말이 무색하다. 녀석이 집에 오고 난 후부터 집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첫 번째 변화는 내가 볼일 보러 나갔다가 얼큰해서 돌아와도 녀석은 그저 반갑다고 난리다. 내가 취해서 돌아오면 입이 한자는 튀어나와 인상을 쓰던,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도 녀석을 보곤 웃고 만다. 여하튼 녀석 덕분에 웃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때면 녀석을 데리고 아내와 외출을 하는데 녀석을 집에 두고 가야 할지가 늘 걱정되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이동용 케이지를 구입해서 녀석을 데리고 다닌다. 승용차일 경우엔 문제가 없지만 전철을 이용할 경우엔 안성맞춤이다. 녀석은 전철을 타면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아주 침착하고 조용하게 잘도 기다려 준다. 이 정도라면 서울에서 춘천 정도의 여행은 가능할 것 같다. 승강장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승강기를 타게 되면 녀석은 스스로 알아서 케이지로 들어간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녀석을 기특하다면서 훈련을 했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 녀석에게 미안하고 못쓸 짓을 한 것 같아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 개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지만 나름대로 사랑을 주고 가족의 일원으로 정성을 다해 키우고는 있다. 그러나 ‘중성화’ 수술을 한 것이 미안하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낳는 것이 순리인데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거세되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짓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 거창한 명분과는 상관없이 그냥 미안하다. 처음에 아이들이 중성화 수술을 해주면 성격이 온순해지고 건강하다는 단순한 말에 별생각 없이 동의했고, 수술 후에도 잘 크고는 있지만 인위적으로 녀석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다. 더 많은 사랑을 주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그랬다. ‘개도 팔자(八字)가 있다.’고 그러고 보면 그런 것 같다. 어느 연예인의 고양이 케이지가 삼백만 원짜리 명품이라고 한다. 이른바 반려동물들도 인간의 빈부(貧富)에 따라 호사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주인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는 유기 견, 유기 묘들의 삶의 차이가 팔자소관이라면 그도 할 수 없는 일일까? 나는 부자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 '뽐'이 역시 부잣집 강아지가 아니다. 그러나 행복이 꼭 재물이 많고 적음에 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행복의 척도가 재물로 가늠할 수 없다면, 그들 역시 주인의 빈부(貧富)가 대수 이겠는가? 어떻게 하면 나와 내 강아지가 편안하게 삶을 다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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