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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11. 2024

3부 안쓰러운 엄마

3-2 엄마의 첫 배변실수

갈수록 심해지는 엄마의 치매로 나는 학교의 강의 시간을 줄여야만 했고 취미생활도 중단해야 했다. 점점 더 엄마에게 매달려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는 허리 골절까지 입어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주간보호센터에 가는 것도 잠시 중단해야 했다. 수업이 없는 낮에는 무엇을 하든 엄마 곁에서 보내야 했고 밤도 같이 지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강의가 있는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의식은 있으시니 화장실에 혼자 가려고 시도하며 몇 시간 동안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으리라. 거동을 못 하니 엄마를 화장실로 모시고 가는 일은 나에겐 너무나 버거운 일이어서 그때마다 초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남편이 있는 시간엔 남편에게 SOS를 요청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오롯이 나 혼자 밤낮으로 감당해야 하는 중노동 같은 일이었다.         


엄마는 덩치가 큰 편이다. 나는 체구가 작아서 엄마를 안아 이동시킬 수는 없으니 나름대로 머리를 써야만 했다. 먼저 엄마를 일으켜 다리 방향을 화장실로 향하게 앉히고, 나도 엄마와 등을 맞대고 앉는다. 그다음 나는 엉덩이를 바닥에 밀착시키고 다리를 구부린다. 이때 양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바닥을 박차고 밀면 엄마의 엉덩이가 조금씩 밀려 화장실 쪽으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무거운 엄마를 옮기려니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고작 한 뼘도 되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여정은 십 리 길처럼 느껴졌다. “엄마, 나 혼자 힘으론 안 돼! 엄마도 좀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힘을 좀 쓰란 말이야.” 이처럼 화장실 한번 다녀오는 일은 우리 모녀에겐 엄청난 사투와도 같았다. 두 시간여 씨름을 하면서 한 번씩 다녀오고 나면 둘 다 땀으로 범벅이었으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요양 등급을 받으면 환자들이 필요한 복지 용구나 물품을 대여하거나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엄마 같은 경우엔 골절로 일어나는 일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에 의료용 침대와 이동식 변기 등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그 당시에는 정보를 몰라서 그렇게 몸 고생만 심하게 한 셈이었다.   

      

 나는 평상시 천연발효 식초를 만들어 먹곤 했다. 식초로 초란을 만들어 마시면 골절에 좋다는 말을 듣고 엄마를 위해서 초란을 만들어 드렸다. 엄마는 처음에는 절대 안먹는다며 너나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고집을 피웠다. ”엄마가 이거 마시는 것을 봐야 나 학교 갈 수 있어. 안 마시면 나도 학교 안 갈 거야.“ 협박이 통했는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엄마는 초란을 마시기 시작했다.    

  

두어 달 가까이 초란을 먹은 후 그 식초 효과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날 ”니가 준 식초 덕에 깨끗이 나았다.“고 하시며 한참을 꼼짝없이 누워만 지내시던 엄마가 기적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셨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서울의 큰 병원에 수술 대기자가 많아서 예약해놓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원에도 못가고 누워만 계셨었는데, 아무튼 그 덕분에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골절은 좋아졌지만 치매 증상이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발생하지 말았으면 했던 우려했던 일까지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킁킁거리는 나를 보고 엄마가, "왜 그러냐? 나 아무것도 안 쌌다."라고 하는데 그게 더 수상했다. "알았어. 근데 이리로 좀 와봐, 화장실 한번 가보게." 엄마를 살살 달래서 변기에 앉히고 속옷을 내리니 옷 속에 변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인 눈으로 확인하던 엄마도 깜짝 놀란다. 우린 둘 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문을 잃고 서로의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온 천지가 멈춰 버린 듯했다. 시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으로 본 현장을 인정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본인도 놀라는데 나까지 수선을 떨면 안 될 것 같아 엄마를 씻기는 동안 나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애를 써야 했다. 엄마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하느라 바빴고, 내 손은 부지런히 엄마를 씻기는 데 집중했다. ‘어떡해야 하지? 이제는 어쩌지? 뭐라고 위로해야 하지?’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엄마를 소파에 앉혀드렸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엄마는 눈물을 훔치면서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수치스러움과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의 눈물인 것 같았다. 본인도 얼마나 당황하고 속이 상했을까!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나이 들면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거래! 나 어렸을 때 엄마가 내 기저귀 갈아주며 키웠듯, 이제는 내가 엄마의 은혜를 갚을게! 걱정하지 마! 잘했어! 변을 잘 봐야 건강한 거야. 너무 잘했어!”

”아이고, 어짜끄나, 내가 왜 이렇게 되븟다냐!“

”엄마 잘했어~. 엄마가 건강하다는 증거야! 변비면 더 힘들지~.“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서 우리 경미 고생시키네! 어쩌면 좋을꼬.“       

엄마의 흐느낌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엄마를 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는 미안함과 수치심 그리고 절망 때문에, 나는 엄마가 불쌍하고 속상해서!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아기의 모습으로 와서 아기의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심각한 질병 없이 자연스럽게 쇠퇴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더없는 행복이겠지만, 치매가 진행되어 이렇게 대소변까지 조절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면 얼마나 난감할까? 무엇보다 본인이 그 사실을 인지할 때 생을 마음대로 마감할 수도 없고 정말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호자들은 더 신중한 태도로 임해야겠다. 보호자의 반응에 따라 또 다른 심각한 치매의 증상으로 발현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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