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세상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주간보호센터에서 귀가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4시 40분쯤이다. 집에 오면 몇 시간은 엄마 혼자서 지내야만 한다. 그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늘 엄마 걱정에 안테나를 곤두세워야만 했다. 그러니 제대로 일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고충을 들은 아들이 어느 날 전화기에 앱을 깔고 홈캠 cctv를 설치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밖에 있다가도 카메라로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혹시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로 지켜보곤 했다. 그 카메라 장치는 전화처럼 대화도 할 수 있어서 ‘엄마!’하고 부르면 엄마는 너무나 신기해했다. “사람은 없는디 어디서 소리가 난다냐?” 하시는 엄마의 그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어 우리는 한바탕 웃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엄마를 여러 번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제는 일어날 만도 한데 소파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누워만 계신다. 엄마가 저렇게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는 날은 없었는데 의아했다. 늘 부산하게 움직이고,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서랍을 열어서 이것저것 꺼내고, 냉장고 음식을 이것저것 꺼내어 일을 만들곤 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일까?
‘어! 그런데 저게 뭐지?’ 카메라 렌즈를 회전시켜서 확인해보다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방 안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불길한 느낌이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 몸으로 흡수되듯 느껴졌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저건 뭐지?’ 순간 용수철처럼 일어나 엄마 집으로 향했다. 옆집 엄마집까지 채 1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달려가는 거리가 천 리나 멀게 느껴지고 시간도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떠올랐다. ‘혹시 잘못된 걸까? 숨을 안 쉬면 어떡하지? 돌아가셨으면 어떡하지?’ 제발 악몽이기를….
방문이 부셔져라 요란하게 문을 열었는데도 엄마는 꼼짝을 안 했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약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약병에 내용물은 안보이고 뚜껑이 열린 채로 빈 병만 나뒹굴고 있었다. 매일 한 알씩 드셔야 하는 약을 다 드셔버린 것이다. ‘아니, 이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인데….’ 엄청난 긴장감이 엄습해왔다. “엄마! 엄마!” 몇 번을 흔들어 깨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엄마…. 다행히 숨은 쉬고 계셨다. 너무나 놀라서 엄마를 모시고 어떻게 병원에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엄마가 응급실 들것에 실려 들어가고, 갑자기 바빠진 의사들과 간호사 선생님이 위 세척을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기도하게 되었다.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제발 엄마가 무사하기를….
엄마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바로 전날 엄마한테 퍼부었던 모든 가시 돋친 말과 행동들이 떠올랐다. 시골 마을이라 몇 명 되지도 않는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얼마나 사납고 적대적이며 공격적인 언어를 써댔는지, 동네 사람들은 딸인 나와 엄마가 너무나도 다르다며 엄마가 무섭다고들 했다. 유순했던 엄마를 포악한 성격으로 바꾸어 버린 치매인지라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동네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시골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다들 착하신 동네분들이라 이해해주면서 같이 걱정도 해주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주치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동네 분들을 만나면 또 눈을 부릅뜨고 사나운 소리를 해댔다.
망나니 자식도 아니고 말썽꾸러기 어린아이도 아닌데 엄마는 왜 이렇게 내 속을 썩이는지 “도대체 엄마는 어떻게 된 거야? 엄마는 진짜 이상해. 왜 그렇게 자식들 속을 썩여?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엄마 때문에 동네 창피해 죽겠어! 진짜 미치겠어.” 하면서 독설을 퍼붓곤 했다. 자식들 중에서 제일 효녀라며 늘 마음 편하게 생각 하고 편한 상대가 나였는데 엄마에게 그런 막말을 퍼부었으니 엄마도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엄마의 화난 듯 풀죽은 모습에 가슴이 아파 달래도 보고, 항상 웃는 얼굴로만 지내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도 하고, 잘살아보자고 손도장까지 찍었건만 늘 그때뿐이었다.
관을 삽입하여 위를 세척하는 동안 엄마는 극심한 고통으로 동물이 울부짖는 이상한 소리를 질러댔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빨리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엄마, 꼭 일어나! 나에게 이 나쁜 년, 염병할 년, 아니 입에 담지 못할 더 심한 욕을 해도 괜찮아. 엄마한테 뭐라 하지 않을게. 내가 미안해!’ 엄마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도록 해야 했는데, 귀찮다고 힘들다고 소홀히 하지 말아야 했는데….
치매여서 모르고 드셨을까? 아니면 내 모진 말들에 더 이상 살아서 뭐 하나 비관하고 자살을 기도한 것일까? 엄마하고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으니 진실을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모두 내 책임임에 틀림없었다. 엄마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연신 흘러나오는 눈물과 콧물을 손등으로 닦아내야 했다.
위세척의 고통으로 더 수척해진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의식이 얼마나 돌아왔나 알아보기 위해 말을 걸어보았는데, 얼마 후 엄마가 “여기가 어디냐? 집에 안 가냐?”라고 묻는다.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엄마는 의식을 회복한 후에도 중환자실에서 3일을 더 지내야 했다. 그곳에서는 엄마의 팔다리를 종종 묶어놔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엄마를 면회하러 갔는데 간호사로부터 엄마가 링거 바늘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다 빼버려서 할 수 없이 손발을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침대 난간에 양손이 묶인 채 바둥거리는 엄마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간호사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 했다.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고 간호사를 이로 물고 발로 차고 난동을 부렸다고 하니 뭐라고 불만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마주한 엄마의 시선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나의 마음도 너무 아팠다.
“여기는 내 집이 아니여야. 왜 사람들이 나를 못 가게 붙들고 있냐?”
“엄마, 여기서 며칠 더 있어야 해. 엄마가 많이 아파서 이분들이 도와주고 있는 거야. 잘 참고 있어. 그리고 도와주시는 분들이니까 욕하지 말고 감사하다고 말해야 해!”
이해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엄마의 표정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중에 나 좀 데려가라고 애원하는 듯한 엄마의 간절한 눈빛이 병실 문을 닫고 나올 때까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집에 와서도 그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3일 후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야 휠체어에 의지한 채로 퇴원했다. 엄마는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우리의 품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며칠 후, 평소 엄마가 좋아하는 순댓국집에 모시고 갔다. 주문한 순댓국이 나오자 엄마는 아주 맛있게 드셨다. 엄마와 함께 이렇게 나들이를 나올 수 있게 되니 새로운 날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내 눈은 눈물 때문이었는지 뜨거운 순댓국물의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때문이었는지 시야가 흐려졌지만, 엄마를 마주 보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다. 엄마에게 더 잘해야지.
그때 이후로는 약병을 엄마의 손이 닿지 않는 나만 아는 곳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약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치매 환자는 특히 약병 관리를 잘해야 한다. 꼭! 꼭 명심해두자! 이때라도 잘 기억하고 명심해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