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고행길인 병원 진료!
치매는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치매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실제로 그 증상이 20년 전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엄마가 가스불에 음식을 올려놓고서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냄비를 태워 먹은 일이 비일비재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엄마가 내 곁으로 오시기 전 하마터면 집을 홀랑 다 태워버릴 만큼 아슬아슬한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친정에 갈 때면 대청소를 해야 할 만큼 집안 여기저기가 너무 지저분했었다. 치우고 닦고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청소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프고 몸살이 날 만큼 힘이 들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그저 다른 일이 바빠서 청소를 못해 지저분한가 보다라고 생각해 버렸다. 주변에서도 나이 들면 다 그렇다고 하니, 노화현상이 진행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제 와서야 치매와 관련된 책을 읽고 보니 엄마의 집이 왜 점점 더러워졌는지 알겠다. 집이 점점 지저분해지면 그것도 치매 초기 증상 중의 하나라고 한다.
노인 요양 등급을 받고 방문요양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어 여러 가지로 좋았다. 낮 동안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노인을 돌봐주는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게 되니 나의 하루도 훨씬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늘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에서 벗어나 그 시간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음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치매 환자를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은 난관 중의 난관이었다. 남편이 회사에서 나올 수 있는 날은 별 문제 없이 다녀왔지만,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고 없는 날이면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했기에 정말 힘들었다. 엄마는 치매에다 무릎도 시원찮고 거동도 느린데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하니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동동거렸다.
병원에 도착하면 엄마가 걸음을 최대한 적게 걸을 수 있도록 병원과 가까운 곳에 엄마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주차하고 오는 동안에 말없이 사라지실까봐 나는 전전긍긍해야 했다. 어디 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여러 번 다짐을 받아놓고 움직여야 하는 건 필수 절차였다. 하지만 염려 마라라는 엄마의 대답에도 나는 늘 불안에 쫒기게 된다. 엄마는 아무리 강조해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엄마를 병원 근처에 내려주고 나면 나의 눈은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을 스캔한다. 내가 부탁을 할 때 어떤 분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순순히 손을 내밀 것인가? 바쁜 기색이 없는 사람, 인자한 얼굴 관상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나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 했다. 운이 좋아 먼저 “도와 드릴까요?” 하며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면 그날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치매 환자임을 설명하고 엄마가 그 사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도록 당부의 말을 한 후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렇게 선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혹시나 엄마가 그 사이에 그 사람과 함께 어디로 사라질까 봐 나는 늘 노심초사했다. 마음이 급해져서 허둥지둥 주차하고서는, 마치 응급상황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앞만 보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진해야 했다. 엄마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만약 그 자리에 없으면 어떠하지? 하는 초조감과 함께.
치매 환자는 대체적으로 매달 정기 검진이 있다. 진료가 있는 날에는 최소한 두 사람이 동행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 사람은 환자와 동행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차량 이동과 수납 등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붐비는 종합병원에 가는 날이면 내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엄마를 의자에 앉혀두고 접수하는 중에도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니 나는 늘 긴장 상태이다. 진료를 볼 때도 의사 선생님과 엄마와는 제대로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반드시 동행을 해줘야 하고, 의사의 지시를 꼼꼼하게 기억해두어야 한다. 진료가 끝나고 수납하는 도중에도 행여 어린아이처럼 무작정 어디론가 사라질까봐 눈은 환자를 계속 살펴봐야 한다. 모든 과정이 종료되고 집에 가기 위해 차를 가져와서 차에 태울 때까지도 안심할 수 없기에 나는 긴장감으로 머리가 아프기 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우리가 병원에 왜 왔는지도 모르니 계속해서 가자고 졸라댔고, “아이, 왜 이러고 있냐? 왜 집에 안 가냐? 뭘라 이렇게 맬갑시 앉아있냐? 니 옷이 이것이 뭐냐?” 하면서 쉴새없이 나를 힘들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새라 손가락을 입에 대고 “엄마 조용히, 조금만 기다려. 의사선생님 만나고 가야 해!”라며 엄마를 이해시켜야 했다. 물론 효과는 몇 초에 불과했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죄송해요. 치매라서 말을 해도 잘 모르셔서 그래요.” 게다가 엄마는 또 사람들에게 “멀라 나를 봤샀소?”하며 시비까지 걸라고 하니 병원에 있는 내내 보호자인 나는 안절부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몇 번 이렇게 어려움을 겪은 후로는 혼자서는 도저히 엄마를 감당할 수 없어서 진료 날짜를 바꿔가며 남편과 같이 다니게 되었다. 혼자 다닐 때보다 의지도 되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도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어 좀더 여유로운 동행이 되었다. 나 혼자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니던 어느 날은 아마도 생리적인 현상까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야 했던 기억까지 있다. 나 혼자 전담을 해야 했던 때에 비하여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둘이서 모시고 가도 이런저런 사건들로 진땀을 빼야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에게 가까운 친구나 이웃이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매번 도움을 청하는 것은 너무나 미안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