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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22. 2024

3부 안쓰러운 엄마

3-7 엄마의 언어로 대화하기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와서 엄마가 혼자 계시는 시간이었다. CCTV 카메라를 확인하는데 엄마가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는 누가 전화를 했나보다 생각하고 내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확인을 해봐도 엄마는 계속 통화 중이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그 자세 그대로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하던 일을 멈추고 가보니, 역시나 엄마는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웃기도 하며 전화 통화를 계속하고 있다. 누구랑 통화하는데 저리 길게 통화를 하지? 생각하며 집으로 다시 와서 내 일을 하고 저녁 식사 때가 되어서 갔는데도 엄마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     


“엄마, 누구랑 통화해?” 


엄마는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통화를 한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엄마가 붙들고 있는 핸드폰에 귀를 가까이 댔다.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아 네 고맙습니다. 네네!” 엄마는 연신 반응하면서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 누구야? 이제 그만하고 끊어” 나는 상대편이 들리지 않도록 엄마 귀에 속삭이며 손짓으로 끊으라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상대방은 엄마의 말에 응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같은 톤으로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이다. 다시 보니 그것은 휴대폰이 아니라 휴대폰 크기의 소형 라디오였다. 그 순간 놀라움과 함께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라디오는 엄마가 성경 말씀을 좋아하고 목사님의 설교 듣는 걸 좋아하셔서 얼마 전에 사드린 한 손안에 들어오는 소형 라디오였다. 엄마 휴대폰과 색깔도 크기도 비슷하다 보니 혼동하셨나 보다. 나까지 속아 넘어갔으니 말이다. 엄마에게 이건 휴대폰이 아니라 라디오라고 그만 듣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손사래를 치면서 나더러 조용히 하란다. 그대로 두면 언제 끝날지 모를 기세이기에 머리를 썼다.


 “목사님!” 하고 라디오에 대고 크게 불렀다. 마치 통화하듯 “네, 목사님, 죄송한데요. 엄마가 지금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식사를 못 하고 계세요.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재빠르게 말하며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빨간 버튼의 전원을 껐다.     


“너는 지금 목사님하고 통화하는데 끊으면 어떡해?”

“엄마, 내일 다시 전화 주신다고 했어. 걱정마.”

“그래? 아이고, 재미있게 통화했네.”     


그제야 엄마는 안심되는 표정이다. 엄마의 치매가 점점 진행되면서 나도 치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내용을 묻고 또 묻고 해도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해주고, 모르는 것을 가르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는 없는 얘기, 말도 되지 않는 허황한 얘기를 해도 엄마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는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 말고 적당히 맞추어주면 된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치매 환자는 본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혼돈만 야기할 수 있는 일이기에.   

  

엄마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일어나지도 않은 이야기를 끝없이 한다. 어젯밤 큰오빠가 와서 하룻밤 자고 가면서 맛있는 것을 해주더라, 내일은 작은오빠가 온다고 하니 식사를 맛있게 준비해 두라느니. 오빠들에게 확인해보면 둘 다 “그런 일 없는데.” 한다. 

     

수시로 이어지는 엄마의 상상 속 이야기에 나는 늘 속고만 있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옛날처럼 나를 괴롭히는 엄마로만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싶었다. 엄마의 세상으로 같이 들어가서 맞장구쳐주고 추임새를 넣어주면 엄마는 신이 나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그다음에 어떻게 됐어?” 

“와, 엄마 좋았겠네?”

“아, 그랬구나!”     


위의 말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나의 양념들이다. 딸의 호기심 냄새가 나는 이 말들이 맘에 드는지 엄마는 끝없이 샘솟는 옹달샘에서 물을 퍼 올리듯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의 허구의 세상은 실제로 궁금하기도 재미있기도 했다.  

   

이제 우리 모녀는 배우와 관객이 되었다. 엄마는 배우 겸 연출가이고 나는 적절한 추임새를 넣는 관객이 되어 웃고 또 웃는다. 엄마의 치매가 더 이상 다른 롤러코스터로 옮겨가지 않고 이대로 멈추었으면, 돌아가실 때까지 이렇게 도란도란 속닥속닥 둘도 없는 콤비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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