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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20. 2024

3부 안쓰러운 엄마

3-6 치매는 롤러코스터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처럼 엄마와 함께하는 치매 돌봄의 여정도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게 한다. 롤러코스터에 탑승하는 순간 사람들은 긴장과 기대, 두려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며,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엄마를 돌보는 일상에서도 이와 유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게 된다. 때로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기억 상실이나 행동 변화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만,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모성애를 보여주는 순간의 기쁨은 그 어떤 스릴러 기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

     

치매 증상은 기복이 심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상태가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엄마의 경우 어떤 날은 고약한 폭언으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온순하게 변해서 고분고분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칼 가위로 눈에 띄는 것마다 잘라 버리기도 하는 등 여러 기행으로 자주 돌변했다.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는 시늉을 하며 내 머리를 잘라준다고 접근해올 때의 공포는 마치 공포영화 속 악당이 나를 헤치려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혹시 잘못하여 살점이라도 베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극도의 스트레스로 머리가 곤두섰다. 그런 엄마의 증상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스트레스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 때는 정신과 진료까지 받은 적도 있었다.     


치매증세는 시시때때로 진화했다. 엄마는 텔레비전 속 등장인물이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허구와 현실을 구분 못 할 때도 있었다.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든지,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옷을 갈아입느냐?”는 둥. 그런데 이렇게 오락가락하다가 언제부터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엄마의 난폭하고 두려운 증상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는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도망가고픈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두렵다기보다는 즐거운 추억을 쌓기 위해 엄마의 변화무쌍한 삶을 공포감 없이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행동은 여전히 뇌에서의 잘못된 명령으로 실례를 한 기저귀를 가방 속에, 서랍 속에, 옷장 속에, 이불 사이에까지 감추어 두어 나의 빨래양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말이다. 치매란 놈이 스멀스멀 강탈해간 잘못된 시간개념으로 인해 자정을 넘긴 한밤중에 자다가 깨어나서 소파에 앉아 손뼉 치며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고, 좋아하던 섬마을 선생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순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었고 오랜만에 내게도 평화와 행복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빙의된 것처럼 매일 자주 웃었다. 일명 ’웃음 치매‘로 변한 것이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을까? 엄마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너무도 웃겨 죽겠다는 듯이 웃는다. 화장실을 가다가도 배꼽을 잡고 웃고, 딱히 우습지도 않은 일에도 깔깔 웃는다. 하품과 웃음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그런 엄마를 보면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온다. 얼마 만에 웃어보는 웃음인지!. 주간보호센터에서도 “어머니가 너무 귀여운 아기가 되었어요.”라고 한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엄마가 웃음 치매로 바뀌고 나니 표정까지 달라졌다. 화내고 성질내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험악했을 때는 얼굴만 봐도 심술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천사가 된 것처럼 온화하고 이쁘게 변한 것이다.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소파에 앉아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는 엄마 옆에서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서로 눈맞춤도 하며 사랑을 받는 호사스러운 날도 즐기게 되었다. 너무 많이 웃어 눈물까지 닦아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엄마와의 평화로운 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저녁 인사로 “굿나잇” 하면서 일어났다. 엄마는 갑자기 웃으면서 “사요나라”라고 대답했다. 엄마 입에서 일본말을 듣게 된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엄마 어렸을 적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를 배워서였을까? 갑자기 그 시절로 돌아간 것일까? 사요나라를 시작으로 “오하이오 고자이마쓰, 굿모닝, 굿바이.” 등등. 엄마가 아는 외국어가 가끔씩 튀어나왔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새로운 영어표현을 하나 가르쳐 볼까 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sleep tight! 엄마! 엄마도 나에게 슬립 타이트 해봐! 자다 깨지 말고 아침까지 쭉 잘 자라는 뜻이야.”

“슬립 파이트”     

엄마는 안되는 발음으로 잘해보려고 입술에 힘을 줘가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며 다시 주문했다.     

”엄마 다시! 파이트 아니고 타·이·트, 슬립 타이트!“

”슬립 파이프“

”파이프? 하하하. 아니고 타이트! 다시, 슬립 타이트.“ 

”슬립 타이트!“     


엄마는 다시 아랫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참아가며 침까지 튀겨가며 간신히 발음했다. 동시에 마치 학생이 선생님의 합격 불합격 판정을 기다리듯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어 엄지손을 치켜들었다. 우리는 둘 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순간의 행복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엄마의 치매는 점점 심해져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도 못 하고 그저 누워만 계신다. 다행히 엄마의 영상들과 옛 모습들을 유튜브에 잘 보관하고 있어, 가끔 그때의 영상을 들춰보곤 한다. 예전의 흥이 넘치는 엄마로 돌아와서 나에게 ”노래를 좀 해봐라, 춤을 춰봐라” 하며 다양한 주문까지 하셨던 엄마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는 즐기지 않지만, 엄마와 함께하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의 여정은 울렁증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마와 나누는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도 했다.  

   

이제 엄마의 롤러코스터는 배터리가 다 닿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주황색 주의 등을 깜박거리고 있다. 그래도 나의 소원은 예측할 수 없이 두려움에 떨던 그 시절로 몇 시간만이라도 다시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도 있다. 그깟 약간의 롤러코스터 울렁증이야 잠시 참으면 되는 것이니까.   

  

https://youtu.be/-sGJDDEFiOE?si=P7Q73NTRp32pHS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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