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미 Mar 18. 2024

3부 안쓰러운 엄마

3-5 어디서 그런 힘이!

상상도 못한 모자간의 하룻밤    

 

나는 매일 카카오톡 그룹 채팅창에서 형제들에게 치매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돌보는 일상과 고충을 털어놓고 위로받곤 했다. 그런데 내가 대화창에 쓰는 내용을 본 형제들의 반응은 늘 있는 일상이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치는 것 같았다. 나에겐 심각한 일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서운함이 밀려오곤 했다. 최소한 내가 느끼기로는. 물론 두 자매는 간호사이니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직업으로서 환자를 돌보는 것과 집에서 내 부모를 24시간 돌보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 치열한 하루하루를 제대로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치매란 직접 경험을 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으며, 같이 생활하지 않고 잠깐 들러서 얘기해 보는 정도로는 그 심각성을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다. 요양 등급 받을 때도 세 번이나 신청하지 않았던가? 전화 통화로는 더더구나 정상인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안부 묻는 인사는 정상인처럼 너무 잘하시므로.     


’잘 있냐?, 모두 건강하제?, 얘들도 잘 있고?, 니 사업은 어쩌냐?, 어쨌든지 간에 늘 건강해야 한다, 잘먹고 다녀라.‘ 등등.     


“엄마랑 통화했는데 상태가 엄청 좋아 보이시던데? 내 사업 근황도 물어보고 모든 식구 안부도 물어보고 아주 멀쩡하더라.” 멀리 떨어져 자주 못 오는 오빠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빠들이 가끔 오면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엄마는 반짝 더 좋아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지, 아들이 와서 좋아서 그런 건지? 한번은 큰오빠가 엄마를 일주일만이라도 모시고 싶다며 자기 집으로 모셔갔다. 힘들 것이 불 보듯 뻔해서 말리고 싶었지만, 그동안만이라도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섰다. 더구나 진즉부터 오빠는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다만 며칠만이라도 모시고 싶다는 말을 노래처럼 해 오고 있었으니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모시고 간 다음 날 새벽 이른 시간에 오빠가 엄마를 다시 모시고 왔다. “도대체 몇 시에 출발해서 온 거야? 오빠 집에서 여기까지는 세 시간도 더 걸릴 텐데….” 하룻밤 사이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오빠와 올케언니 그리고 엄마까지 세 사람 모두 지친 흔적이 역력하다. “엄마 힘이 어찌 그렇게 쎄냐?”, “와~ 질려브렀다. 아무리 내일 모셔다 준다고 해도 막무가내이고, 밤새 현관문을 열려고 난리를 피워 밤을 꼴딱 새브렀다”, “현관문 자물쇠를 다 뜯어버렸다니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나?” 하는 말과 함께.     

나중에 오빠에게서 들은 그날 밤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집에 모시고 가서 일주일간 맛난 음식도 해드리고 그동안 엄마와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항상 마음에 걸려 모처럼 모자간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했지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고상하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고자 했다그런데 집에 도착하고서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경미집에 데려다 달라고 마치 다섯 살 난 어린애마냥 얼마나 떼를 쓰는지.    

 

엄마가 하도 난리를 쳐서 우린 저녁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게다가 당신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발악하듯 오빠 팔을 여기저기 물어뜯어서 열 군데나 상처가 났다오빠도 엄마를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둘러보기도 하고회초리로 방바닥을 내리쳐 보기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올케언니가 옆에서 엄마 놀랜다고 그러지 말라고 말렸지만성질 급하고 정신이 나간 오빠도 어떻게든 엄마를 제압해 보려고 했어급기야는 엄마가 내 팔을 물어뜯으면 오빠도 질세라 똑같이 엄마를 몇 군데 물기도 했는데 소용이 없더라나중에 보니 오빠 팔에도 엄마 팔에도 무슨 훈장처럼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어.  

   

오늘 밤만 자고 나면 경미 집에 데려다준다고 수도 없이 말리고 달래고 해보았지만자꾸 네 집에 간다고 밖으로 나가길 시도하잖아현관 번호 키도 단단히 잠가 놓았고또 동그란 보조키도 잠가 놓았고옆으로 밀면 잠김으로 되는 자물쇠까지 3단계 잠금장치라 몇 번 하다 안되면 말겠지 생각하고 내버려 뒀지그런데 엄마가 참 집요했어마치 자페아가 뭔가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해내듯 말이야땀을 뻘뻘 흘리면서 문을 열어보려고 수십 번을 시도하더니 급기야 문 열고 나가는 소리가 나는 거야어떻게 무슨 힘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자물쇠가 일부 뜯겨 있고 엄마는 밖으로 나가고 없었어급히 따라 나가보니 엄마는 무슨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서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이더라그래서 깜짝 놀라 이러다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허겁지겁 짐을 챙겨서 꼭두새벽에 출발해서 너한테 간 거야.”   

   

오빠는 본인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효도 한 번 해보려고 하다 무위로 끝난 것에 대해서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더구나 하루도 돌보지 못하고, 제대로 식사 한 끼도 대접하지 못한 채로 어쩔 수 없이 다시 춘천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으니 말이다. 지난 일이 아직도 마음속에 후회로 맺혀 아마도 천추의 한으로 남을 거라고 한다. 아들인 자신이 단 하루도 모시지 못했던 그렇게 어려운 일을 나를 비롯한 딸들이 지금까지 수년 동안 고생하면서 모시고 있으니 그 어찌 고맙고 탄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하면서.   

  

원래 불효자는 더 많이 운다고 했던가! 그런 사연 이후 오빠는 우리가 엄마를 함께 만날 때마다 형제들 중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곤 한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아니 어떤 날은 목포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6시간 이상을 펑펑 울었다고 올케언니는 전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 오빠는 나만 보면 “오메, 우리집 효녀 심청이!” 하며 입이 닳도록 얘기한다. 어떨 때는 그런 말들이 내게로 만 향한 것 같아 다른 자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자매들과 오빠들 모두 효녀 효자이므로. 더구나 언니는 엄마를 요양병원 보내기 전 마지막 7개월을 함께 살며 직장 일도 병행하면서, 엄마에게 효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보여 준 사람이기도 한데 말이다.  

    

오빠나 형제들이 이제야 제대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엄마가 사실 얼마나 심각한지, 치매 부모를 모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어 속으로 조금은 고소(?)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오빠랑 있을 때 딱 하루만이라도 엄마가 아들이 효도할 수 있게 얌전히 계셔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3부 안쓰러운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