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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Apr 05. 2024

4부 엄마 미안해!

4-4 이제 엄마 집은 요양병원이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오신 지 7개월이 지나면서 또다시 골절 사고로 불가피하게 동생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처음 입원했을 때와 같은 거부의 몸짓은 없었다. 치매가 중증으로 발전한 엄마는 아무 반항 없이 순조롭게 입원하셨다. 이제 엄마는 요양병원이 엄마의 집이 되어 내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인지 상태가 된 것이다.     


벌써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가신 지 만 6년이 지나고 있다. 우리 형제들은 매년 한두 번씩(모두 멀리서 살기에) 엄마와의 재회의 날을 잡는다. 병원에 외박 신청을 하고, 엄마를 모시고 나와 동생 집에서 하루나 이틀 모여 파티를 한다. 모일 때마다 늘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되는 건 아닐까 아쉬워하며 엄마와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면회 금지로 엄마와의 재회 파티를 못하게 되면서 2년이 그냥 지나갔다. 아니, 재회 파티가 가능했더라도 우리 식구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시부모님 간병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마도 참석하지는 못했으리라. 만약 코로나 시기 중에도 그 행사를 계속했더라면 시부모님 때문에 참석을 못 하는 내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매우 서러웠을 텐데! 코로나가 유행하기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엄마를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동생 덕분에 거의 매일 영상으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경우 동생이 그 병원에 있어 영상으로라도 만났지만 면회가 금지되었던 다른 많은 가족은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그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을지 이해가 된다.    

 

다행히 코로나가 끝나 3년 만에 면회할 수 있게 되어 작년부터 가족들이 엄마를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다시 얻게 되었다. 시어머니 간병 때문에 한번은 참석을 못 했지만 우리는 오랜만에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와 형제들과의 1박 2일 가족 행사에 참석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모시고 있던 치매 시어머니도 요양원에 보내드린 지 3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오랜만에 보살펴 드려야 할 가족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엄마를 보러 가게 되었다. 친정 식구들은 보통 모이게 되면 4대가 모이게 된다. 그래서 더 기대되고 설레는 날이었다.     

동생이 매일 같이 보내주었던 사진이나 영상으로 미리 엄마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 본 엄마의 모습은 또 현저하게 달랐다. 작은오빠가 엄마를 업고 동생 집 2층 계단을 올라오는 순간 우리 모두는 가슴이 미어졌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 오빠 등에서 축 처진 엄마의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소파에 엄마를 여럿이 붙들고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니 엄마의 눈빛과 표정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뭔가 알 것 같은 사람들, ‘반갑다, 얘들아! 오메 오메, 우리 자식들이구나!’ 엄마의 눈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 보고자퍼 나는 절대 눈을 못 감을 거다.“라고 말하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지금 얼마나 반갑고 좋을까. 엄마가 움직일 수만 있다면 아마도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었을 게 분명하다.   

  

”엄마! 오메, 엄마 자식들 다 모였네! 엄마, 우리 알겠어? 여기 엄마가 좋아하는 작은아들, 여기는 큰딸, 또 맨날 경미! 경미! 하면서 잊지 않았던 둘째 딸, 여기 막내도 있네! 손주들도 있고, 여기 증손녀도.“ 엄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엄마의 눈동자는 기쁨에 넘쳐 출렁이듯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분명 우리를 잊지 않으셨나 보다. 우리는 모두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힘들게 숨을 죽이며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말하는 방법까지 잃어버렸다.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가며 모두를 둘러보고 약간 밝아지다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듯한 모습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를 못했다. 그 순간, 우리는 엄마에게서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팔다리는 점점 굳어서 펴지질 않았고, 살도 다 빠져서 팔이며 다리며 겨우 뼈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관속에 들어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모습이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여태껏 생존해계신 것은 날마다 간식에 보조식품에 여러 가지로 정성을 쏟은 동생 부부의 헌신 덕이리라.   

 

이번이 정말 마지막 만남일까? 우리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따뜻한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어보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하고, 엄마 볼도 한 번 더 비벼보고, 손녀딸을 안겨드리기도 했다. 손녀도 무엇을 아는지 증조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리고 볼에 뽀뽀도 해주었다. 간식과 식사도 돌아가면서 시중을 들었다. 가족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엄마도 행복해 보였다. 엄마의 눈빛과 표정을 통해 당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족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확실히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다시 병원으로 모셔다드리기 전, 정해진 식순처럼 항상 해왔던 목욕을 시켜드리는 차례였다. 목욕은 항상 내가 도맡았다. 그러나 엄마가 점점 스스로 앉지도 못하게 되고 팔과 다리도 굽어져서 자세가 어색했기에 이제는 두세 명이 필요했다. 특히 엄마는 눕혀야 하고 우리는 엎드려서 목욕시켜줘야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이번에는 오빠도 함께 도와야 했다. 뼈만 남은 엄마의 몸은 가벼웠지만, 엄마가 다칠세라 세심한 주의를 해야 했기에 우리는 모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물기를 닦아주고 머리를 말리고 새 옷을 입은 엄마는 얼굴이 발그레지고 화사해졌다. 입 밖으로 서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마치 엄마를 보내는 마지막 의식처럼 엄숙하기까지 했다.     


엄마를 요양병원에 다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져 올수록 우린 점점 말이 없어졌다. 엄마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눈가에 또 이슬이 맺혔다. 우린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엄마를 꼬옥 안아 드렸다. ‘엄마, 안녕! 잘 가! 또 올게!’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애써 참고 있던 감정의 무게가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몰려와 모두를 울음의 도가니로 넣을 것만 같아서였다.   

  

엄마가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우리 형제자매는 두세 달 후 봄이 되면 다시 한번 더 모이기로 했다. 그때까지 엄마가 살아 계시기를 기원하며!     


우리는 이렇게 부모님이 우리의 손으로 돌보기가 버거워질 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리의 전통으로는 그렇게 부모님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처럼 동생이 있는 병원에 보내는 것도 수십 번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하물며 다른 많은 치매 가족은 오죽하겠는가!     


우리는 엄마를 동생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시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여러 차례 망설이기도 했다. 동생이 근무하는 병원이 너무 멀어서 가까운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여러 곳을 방문하여 대기자 명단에 등록까지도 해 놓았었다. 가능한 한 자식들이 많은 곳에 엄마를 모셔두고 싶었던 이유는, 엄마가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돌아가면서 자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 끝에 다른 자식들이 사는 곳과 거리상으로는 가장 먼 곳이었지만, 수간호사인 딸이 함께할 수 있는 동생이 있는 병원을 최종 선택했다. 가까운 곳에 모셨다면 코로나 시기에도 방문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과 함께 있어 엄마가 외롭지 않게 코로나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가족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치매 부모님을 또는 배우자를 돌보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간병의 마지막 단계로 시설에 모셨더라도 이렇게 정해진 날을 함께 함으로써 부모님의 외로움도 덜어주고 가족 간의 사랑과 따뜻함을 재확인하는 소중한 순간들이 덤으로 오기도 한다. 이러한 끈끈한 가족애가 모여 가족 간의 연결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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