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미 Oct 30. 2024

치매로 가는 길목에서

소름돋는 타이밍! 누구일까?

그녀는 죽어가고 있다. 

아니, 우리 모두는 궁극적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것이다.


며칠전 나의 일기장이다. 


종합병원 신경심리검사실 오전 10시.

SNSB-2검사 이외에 11건의 검사를 받고 있는중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나간 스토리를 되짚어 상담중이라 나의 눈물샘은 이미 제어불능으로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어 코맹맹이 소리가 되어 '좀있다 전화할게!'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세상에 태어나 내 할일은 다한거 같아서 가끔씩은 아니 어쩌면 매일 순간순간 문득문득 이 생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물론 이런생각은 나의 머릿속에서 그저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지만 때로는 구체적으로 마지막날을 상상하기까지 했다. 바닷물을 보면서 저 파도 넘어 멀리멀리 그냥 걸어들어가면 추위와 공포를 이겨내고 끝까지 실행할수 있을까? 손목을 그을 용기가 있을까? 우리집엔 욕조가 없어 안되겠구나.


안되겠구나의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이생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만나면 뭐라고 하실까? 내가 늘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편은 어떻게 남은생을 살아갈까? 엄마가 이렇게 사라진후의 우리 자식들은 그 아픔을 어떻게 달래며 살아갈까? 등등...


그동안 그만큼 봉사도 많이 했고, 시댁의 종갓집 맡며느리로서 나의 본분을 다했고, 아이들도 장성하여 자기의 역할들을 잘하고 있고, 이제 가도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을것 같은 생각이 밀물 썰물이 되어 늘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무엇보다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그만 둔 나의 커리어에 다시 불을 붙여질 기회도 사라진지 오래고 점점 능력이 없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을 끌어올릴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아주 오랜동안 분명히 누군가가 늘 나를 따라다니며 내 인생을 지켜주고 인도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아왔다. 내가 만약 기독교인이라면 신앙간증을 수십번도 더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수호신이 누굴까? 계속 질문하며 여러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많은 검색을 했다. 신앙을 가져야겠구나 생각하며 몇해동안 교회와 성당을 저울질했다. 지난달엔 가까운 교회에 참석했다. 어쩐지 너무나 어색한 내가 잘 섞이지 못할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이상 그교회로 돌아가지 않았다. 


12일전 MRI와 PET CT 검사를 끝내고 귀가하던날 가을인데 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집에 돌아오던길에 집에서 가끼운 성당 두군데를 들렀다. 주말에 한군데를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주말마다 일들이 생겨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터다.


그런데 다시 연결된 수화기 너머 후배의 말을 들으면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도대체 그 나의 수호신은 누구일까? 하느님? 예수님?


우리나라에서의 카톨릭의 역사 문헌을 번역해줄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단다. 눈이 반짝거렸다. 희망의 등불같았다. 성당에 가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이런제안을 받다니... 내가 성당을 다니기 시작하긴 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너도 성당다녀? 어느성당다녀?"

"소양로성당이요."

"그래? 며칠전 내가 가고싶은 성당이라 생각하고 답사하던 성당인데? 언덕위에 있는거 맞지?"

"네 맞아요!"

"기도에대한 응답같은 느낌이 드는데... 나 기도는 하지 않지만 말이야! 넘 신기하다야!"


난 늘 그래왔다. 뭔가 걱정을 하거나 갈팡질팡할때 이렇게 누군가가 길을 안내해 주었다. 늘 내가 강구하지도 않는데 알아서 척척 징검다리를 놓아주며 안도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분을 누굴까? 이번엔 그 답을 찾게 되는건가?


그분은 심리상담 검사할때 옆에서 다 듣고 있었던것일까? 이 생을 포기할 생각까지 한 나를 위해 그분의 마음이 급해졌나보다. 다시 살아가야할 이유를 내 후배를 통해 이렇게 내 손을 잡아끄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나 그 일 하고싶어!"


그녀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바라본 하늘은 그리고 마리아상은 나를 환하게 맞아주는 느낌이었다.

'넌 바보가 아니야. 너의 삶의 의미는 아직도 있어! 힘내서 살아야지!' 나에게 이렇게 위로하는것 같았다.


눈물이 차올라 앞이 흐리긴 했지만 갑자기 눈빛이 달라져옴을 느꼈다. 발걸음도 경쾌해졌다. 그래 오늘부터 다시 살아내는거다. 웃자. 쓸데없는 생각은 말자.


그분을 만나보자. 나를 이렇게나 과분하게 사랑해주는 그분을....




작가의 이전글 치매로 가는 길목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