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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01. 2024

1부 예고도 없이 찾아온 운명

1-2 염병할 년!

 나는 어려서부터 효녀라는 소리를 자주 들으며 컸다.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특히 즐거웠다. 결혼 당시에도 시댁에 할머니가 계신다고 해서 더 좋았다. 언제 어딜 가나 할머니들은 내 차지였다. 결혼 후, 나의 꿈도 양가의 부모님을 다 모시고 살 수 있는 이층집을 지어서 사는 것이었다. 결혼 초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그저 꿈에 그치고 말았지만, 내 꿈을 이룰 만큼 여유가 생겼을 때는 아쉽게도 두 어머니가 치매를 일찍 앓게 되어 그 꿈은 말 그대로 한낱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내가 나이가 들었듯, 엄마들도 할머니가 되었다. 그들과 지내는 것은 나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니, 오빠, 동생도 있었지만, 엄마를 모시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당연한 도리로 여겼다. 오히려 엄마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랐다. 엄마를 모시는 것은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되어갔다. 나의 희생을 통해 모두가 행복하고 엄마도 만족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날이 갈수록 엄마의 이상행동으로 인해 나는 지쳐갔고 더 이상 착한 효녀가 아니라 못된 딸로 변해가고 있었다.     


늙어 병들고 허리도 구부정하고 조금만 걸으면 숨차하는 모습이 어찌나 촌스러운지 엄마가 저 멀리에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써지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치매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엄마가 점점 싫어지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점점 더 함부로 말하고, 욕하고 야단치면서 나를 마치 부모 말을 무척 듣지 않는 초등학생 말썽꾸러기 대하듯 했다. 하루는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날따라 전화 목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옆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누구예요?” 묻는다. 숨기지도 못하고 “우리 엄마”라고 하니 모두의 눈이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아니! 엄마가 딸에게 그렇게 함부로 해도 돼? 진짜 치매가 무섭긴 무섭구나!” 모두 걱정하는 눈빛으로 위로하듯 한마디씩 했지만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래도 이번엔 욕이라도 안 했으니 다행이었다.    

 

엄마는 언제 어디서든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윽박지르듯 큰소리쳤고, 똑같은 악다구니로 되갚아 주었다. 엄마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말을 무수히도 많이 했다.     

그러다 취미로 다니던 노래교실에서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를 배우던 날, 난 한 구절도 따라부르지를 못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치고 돌아 앉아 우시던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세라 안먹어서 약해질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세라 사랑땜에 아파할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노래 속 가사가 예전의 엄마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추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나는 아마도 엄마가 제일 이뻐하는 딸이었을까?     


엄마는 어디를 가도 나를 데리고 다녔다. 엄마 등에 업혀 장에 가던 날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인자한 자랑스러운 엄마였는데 몹쓸 치매라는 녀석이 숨기고 싶은 엄마로 만들다니. 외롭게 혼자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감정을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눈치도 없이 자꾸만 솟구쳤다. 마침내 노래 강사님이 무슨 일인지 물었고, 사정을 얘기하니 같이 모시고 오라는 배려를 해주었다. 원래 우리 엄마는 노래도 잘하시고 흥이 많았던 분이라 부축해서 어떻게든 모시고 오면 좋아하실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어깃장 놓는 소리만 해댔다. “뭘라 여기 와서 이러고 있냐, 이런 것이 노래 교실이다냐, 선생님이 나보다 못하구만.” 등등. 나는 노래 강사님 뿐만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민망하고 미안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엄마의 치매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도망가는 거리만큼 쫒아 가는 나도 날이 갈수록 언성이 높아졌다, “그것도 몰라? 몇 번을 말해야 해! 울 엄마 맞아? 왜 그렇게 엄마는 내 말을 안 들어? 왜 그렇게 고집이 쎈 거야? 아니 다른 집은 자식이 속을 썩인다는데, 우리 집은 어떻게 된 게 거꾸로 됐어? 엄마는 자식들 속을 왜 이리 괴롭게 하는 거야?”     


엄마와 마주할 때마다 잔소리해대는 나에게 엄마는 점점 더 호랑이 같은 눈을 부라리며 입에 담지 못할 욕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퍼부었다.     


“염병할 년!’

”뭐라고? 염병할 년? 엄마는 딸에게 그렇게 욕이 하고 싶어?“

”염병할 년 지랄하고 자빠졌네! XXXX 뭣이 어쨌다고 그러냐?“

”딸이 염병에 걸렸으면 좋겠어?“     


나도 질세라 한마디 더 대꾸하며 소리 질러 보았지만, 엄마의 눈은 이미 분노로 활활 타고 있는 듯 무서워서 더 이상 엄마 옆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뛰쳐나오듯 엄마 집 대문을 나서면서,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너무나 기가 막힐 일이고 내 신세도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지만 염병할 년이 된 나는 며칠간 엄마를 보지 않으리라 독한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겨우 하루 만에 독하게 먹은 마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다시 엄마에게로 향했다. 그때는 치매라는 병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해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이해인 것을 전혀 몰랐다. 180도 달라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 치유되지 못할 마음의 상처와 앙금만 쌓여갔다.     


그런 엄마의 변화 속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때론 내 마음을 찌르는 가시가 되었다. 엄마의 불평과 어깃장은 나의 인내심을 시험했고, 그 어느 때보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멀어져가는 듯했다. 게다가 엄마에게 다그치지 말라는 나를 향한 가족들의 질책이 엄청 큰 상처가 되어 마치 나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정작 위로 받을 사람은 주 간병인인 나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닮은꼴의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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