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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04. 2024

2부 나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2-1 별따기 보다 힘든 요양등급

가을에 접어들면서 엄마는 나를 당황하게 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나는 딱히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각한 스트레스와의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혼자 두어야 하는 시간이 발생하면, 나는 불안해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취미생활로 일주일에 두 번 저녁 시간에 다니던 발레 수업도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어쩌다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이 있는 날이면 참석해서 밥만 얼른 먹고 일찍 귀가해서 엄마를 보살펴야만 했다.     


어느 날 마음 불편하게 참석한 학부모 모임에서 꿀 같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어진 모임인데 이제는 다들 나이가 비슷비슷하여 자연스럽게 연로한 부모님들을 챙기면서 발생하는 애로사항들이 얘깃거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중 한 명이 사회복지사로 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엄마로 인해 지치고 힘든 나의 어려움을 듣더니 요양 등급을 받아 방문요양을 받을 수 있다며 신청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렴풋이 들어보긴 했지만, 엄마는 대상자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분들만 신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잘 이용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양보험 제도가 있다는 것을 나처럼 잘 몰랐던 분들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     


얼마 전 치매 아버지를 8년간 병간호하던 50대 아들이 아버지와 동반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숨진 부자는 관할구청이 제공하는 노인 장기 요양 서비스를 받지 않고 있었는데,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병간호하면서 일상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돌봄 정책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국가의 정책인 노인 장기 요양등급은 1등급~ 5등급까지 나누어지며, 등급을 받을 수는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노인에게는 가장 낮은 등급인 인지지원등급이라는 것을 받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이 사연의 아버지가 인지 지원 등급이라도 받았더라면 주야간 보호센터 돌봄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은 장기 노인 요양 등급을 신청한 기록조차 없었다.     


이 기사를 보며 나는 치매 간병 초기의 무지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2015년도의 내 모습이었으나, 아직도 나같이 무지한 사람이 있다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이웃은 무엇을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친구가 요양 등급을 신청해보라고 했던 날이 금요일 저녁이라 나는 주말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한 주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요양등급 신청을 했다.     


일단 신청접수를 했지만 등급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1차 심사에서 탈락하여 재수, 삼수까지 했기 때문이다. 접수 후 공단 직원이 처음 방문하던 날, 그날 따라 내가 수업이 있어서 유독 바쁜 날이었다. 아침에 나가면서 엄마에게 엄마가 건강한지 검사하러 누가 올 거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 꼭 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나갔건만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에 달려와 보니, 엄마는 공단에서 나온 직원들과 집이 아닌 밭에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아침의 나의 당부는 까마귀 고기가 된 지 오래였다.    

 

”뭘라 이 사람들이 왔다냐? 내가 다 해 먹고 살 수 있는디!“ 

”어르신 건강하시네요? 혼자 밥도 다 해 드신다고….“

“얼른 가란 말이요! 일 없응께!”     


매일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일어나기도 힘들다 노래하던 엄마가 집 바로 옆 텃밭에서 밭일을 하며 화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엄마 때문에 생긴 난처한 상황들과 발생한 일들에 대해 공단 직원들에게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 엄마 혼자 두고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했지만, 직원들의 의아한 태도로 보아 이번엔 안되겠구나 싶었다. 역시나 결과는 실패였다. 다시 신청하려면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이 나왔다. 엄마는 내가 봐도 건강한 사람처럼 밭에서 수확한 무를 한 아름 다듬어서는 씩씩하게 집으로 들고 들어가셨다.     


두 번째 신청하고 면담을 기다리던 날은 수업이 없는 날을 택했다. 나는 아침부터 엄마 교육에 들어갔다. “엄마! 내가 학교 수업 하러 갈라, 엄마 챙길라, 우리집 살림할라 얼마나 힘들겠어. 그분들이 그 사정을 알아야 도와주시는 분들이 집에 올 거 아냐. 도와주는 분이 계시면 내가 마음 놓고 학교도 갈 수 있어. 그러니 엄마는 그냥 일어나려고 애쓰지도 말아, 알았지?” “응, 내 딸이 시키는 대로 해야재.” 어째 오늘 아침엔 순순히 대답하신다. 오늘은 잘 되려나? 면담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초조했다.     


드뎌 담당자분들이 오셨다. 여러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하고 신체 능력을 테스트해 볼 차례다.  

   

“다리 한번 들어보세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엄마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가 벌떡 일어나셨다. ‘엄마,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해!’ 질책하는 눈으로 엄마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화장실을 가는가 싶더니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엄마, 왜?“ 

“아니, 이렇게 손님이 오셨는데 너는 뭐하냐? 얼렁 먹을 거라도 드려야재!”     


환장할 일이다. “어르신은 거동에 문제는 없는데요?”, “아, 그게 거동은 하시지만 늘 곁에서 붙잡아 줘야 해요” 애써 불쌍해 보이는 듯한 하소연을 해본다. 치매는 기복이 있어서 상태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지만 조사를 나오는 날이면 정신이 더 멀쩡해지시는 엄마. 내가 조사원에게 아무리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하소연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나 혼자 밥도 해 먹고 다 해요.”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엄마다. “아니, 엄마가 언제 혼자 밥을 해 먹었어? 내가 다 해주잖아!” 엄마는 단기 기억을 못하시니 예전의 당신 모습을 얘기하신 듯하지만 남들은 그 말을 믿기 십상이다. 애가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직원 두 분이 교환하는 눈빛에서 또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속으로 의사 소견서를 잘 받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병원에 가기 전 이삼일을 계속 엄마에게 말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 이렇게 세뇌시켜서라도 엄마를 통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의사 선생님이 물으면 다 힘들다고 해! 못한다고 하고! 일어서보라고 하면 아예 일어나지를 말아! 알았지? 그래야 등급을 받는다고!”

“알았어, 알았어, 그만 말해야!”     


엄마의 짜증이 묻어나는 대답이다. 그런데 엄마가 또 일을 망치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엄마가 나선다.     


“아무 문제 없어요. 이 나이에 벌써 생활을 못하믄 쓰것소?”    

 

엄마의 자존심이 살아난 걸까?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나···. 답답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도 예외 없이 엄마랑 실랑이가 오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몰아세우는 나로 인해 엄마도 머리에서 김이 뽀록뽀록 올라왔음에 틀림없다.     


삼수째 도전하던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엄마의 인지 상태가 구름이 가득 낀 날이다. 상담하는 사람과 대화도 안 되고 엉뚱한 말만 계속한다. 그동안 두 번이나 안 됐던 사정의 답답함을 호소하자 그 직원들도 공감하는 표정이다. “아니, 이런 상태인데 왜 계속 안 됐지?”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이제는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사 소견서도 잘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요양 등급도 5등급을 받았다. 치매 환자는 등급 받기가 참 힘들다. 같이 살지 않으면 의사도 그 심한 정도를 모르니까 나 혼자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격이었다.     


이렇게 조사 나오기를 삼세번 만에 엄마는 당시 가장 낮은 등급인 노인 요양 등급 5등급을 받았다. 이제 방문요양 제도를 이용할 차례였다. 나는 등급만 나오면 나의 걱정이 반으로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고,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이 시작되었다. 나는 하루 3시간만이라도 엄마로부터 벗어나 여유 시간이 주어질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치매로 성격까지 변해버린 엄마의 이상행동으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엄마와 요양보호사간의 갈등 문제가 불거졌다. 엄마는 낯선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 자신의 생활을 간섭한다고 받아들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요?”

“우리 집에 왜 왔소?”

”그거 만지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쓰시오.”     


싸우는 사람처럼 악쓰고 소리 지르고 낯선 사람만 보면 눈빛이 달라지는 엄마! 보호사 선생님이 아무리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해도 엄마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내 집에서 나가라고 쫓아내고, 꼬투리를 잡아 인격적인 모욕까지 일삼았다.     


“머리가 왜 그렇게 지저분하요?”

“생긴 것도 요상하게 생겨가꼬, 밥도 제대로 못하겠구만.”     


요양보호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셀 수도 없다. 나중에는 요양보호사를 파견해주는 센터에서 가장 경력이 많고 노련한 분을 섭외해 보내주는 노력까지 해주었지만, 그분마저 너무 죄송하다며 어머니를 감당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결국에는 더 이상 오실 수 있는 분이 없게 되었고, 더 부탁하는 것도 민망하여 방문 요양제도 이용은 포기를 해야 했다.     


방문요양을 활용하지 못하니 다른 프로그램이라도 이용해야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평일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 유치원처럼 노인을 돌봐주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주간보호센터, 일명 노인유치원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물론 엄마가 순순히 따라나선 건 아니었다. 절대 가지 않는다며 고집을 부리는 엄마를 겨우 설득하여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도 다른 노인분들과 가끔 싸우기도 하고, 노인네들만 있으니 절대 안 간다며 땡깡을 부리기도 했다. “모두 다 병신들만 있는 곳에 내가 왜 가냐? 나는 똑똑해서 거기 갈 필요 없다.” 애를 써서 센터에서 모시고 갈 수 있도록 일정을 미리 다 짜놓아도 막상 센터에서 차가 오면 안 간다고 악을 쓰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 설득해서 보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고 작전을 짜야만 했다. 아마 가시게 되기까지 한 달은 족히 걸렸을 듯싶다. 해결책은 젊은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었다. 키도 크고 젊으신 분이 엄마를 모시러 온 날부터 고집도 안 부리고 순순히 따라 나섰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다니게 된 센터에서 엄마는 조금씩 적응해가기 시작했고, 나도 낮시간에 학교 수업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잠시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었다.        

                      

Tip!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국가에서 실시하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사회보험제도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대상으로,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신청받아 심사하고 지원 대상을 확정하게 된다. 노인 장기 요양 등급을 받게 되면 등급에 따라 국가에서 85% 이상 지원하고 개인은 15% 이하의 저렴한 비용으로 방문요양이나 방문간호, 방문목욕, 그리고 주간보호센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신청하면 공단에서 직원들이 방문하여 해당되는 내용들을 검사해 가고, 이후 병원을 방문하여 받은 의사 소견서의 결과 내용을 가지고 심사를 거쳐 장기 요양 인정 등급이 확정된다. 당시에는 1~5등급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지원 가능 범위가 확장되어 5등급 아래 인지 지원 등급까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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