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알게 된 첫 순간.
하루하루 모두가 코로나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4년 전 어느 날,
역삼역 인근의 한 선술집에서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술과 사람이 어우러진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던 나는, 술자리 당시의 내 감정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몇몇 자리들이 있다. 그리고 이 날은 유독 내게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찾게 해 준 날이었다.
우리는 저녁 7시경쯤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를 다녔지만 대학교땐 한번 마주친 것이 전부였으니 얼마나 오랜만에 조우하게 됐는지는 계산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 급우였던 그 친구는 유명 홈쇼핑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소위 말하는 대기업 직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날개가 꺾인 백수 취업준비생이었다.
내 기억에 연락은 아마 평소에 먼저 연락을 자주 건네는 성격인 내가 먼저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 역시 반갑게 맞아주며 흔쾌히 약속을 정해주었다. 다른 의미는 없었다. 단지 막막한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는 나로선 정말 부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부유한 사업가보다 나는 그가 더 부러웠다. 취업준비생이란 신분은 그런 거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못 가지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걸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부러운 법 아니겠는가.
친구는 유명 백화점그룹 소속 홈쇼핑에 재직 중이었고, 업무 간 있었던 이야기들, 미팅에서 만난 연예인들, 회사 복지와 급여에 대한 만족 그리고 자부심 등 내가 구전동화로 들어온 많은 것들을 맥주 한 모금에 한 번씩 말해주었다. 나는 그저 듣고, 반응하며 '대감집' 사회 초년생의 높은 자존감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마땅히 없음에 좌절감이 밀려왔다. 시기 질투의 감정 따윈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너 학교 다닐 때 재능 많았잖아. 요즘 뭐 하고 싶은 거 또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로 모든 채용이 사라지기 전 승무원을 준비했던 당시 나에게 이제 취업준비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도통하고 싶은 게 있었던 건지조차 희미해져 갔다.
"기회가 된다면 글을 한번 써보고 싶어. 요즘 보여주기식 자소서를 하도 많이 썼더니"
대학시절 인스타그램에 작문 포스팅하기를 좋아했던 나였지만, 이 당시엔 그저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어떤 진로와 취업 관련이 아닌 뜬금없이 글을 쓰고 싶단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뿔싸다. 얼마나 한량처럼 보였을까, 멋쩍게 웃으며 넘기려던 찰나 친구는 말했다.
"브런치라고 들어봤어? 요즘 사람들 거기서 글 많이 쓰는데 그거 한번 확인해 봐. 재밌던데"
다소 진지한 반응에 잠시 멈칫하니 브런치스토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순간.
대학시절 SNS에 많은 글을 남겼지만, 정작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은 차마 못했던 지난날의 나.
그 뒤로 고등학교 추억을 안주삼아 몇 번의 술잔을 더 기울인 후,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아마 인스타그램을 잠시 염탐하다가 창 밖을 보며 생각했을 테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취업하면.. 그래 취업해서 독립하면 꼭 그때 브런치를 시작해 보자."
그렇게 까마득히 잊은 채 살아온 지난 4년.
2024년 10월 27일 일요일 밤의 나는 만 3년 차 직장인이다.
내가 전혀 예상한 진로도, 업계도 아니지만 나는 어쨌든 서울에서 3년 가까이 거주하며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직장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야 브런치에 첫 글을 쓰게 된다.
4년 전 역삼역 선술집에서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아마 바뀌었다기보다는 조금 달라졌고, 아주 조금 더 성숙해졌고, 또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와중에 조금 더 신체적 기능이 저하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란 것이다.
두서없이 써 내려간 첫 글.
이 플랫폼이 말 많은 내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서울에서 보내는 11번째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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