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 관찰결과 (1): Background Belief
저작권과 인공지능.
아직 이 분야에서는 결론이란 제목을 붙이고 마무리를 짓기에는 이르다.
지금까지의 관찰결과라는 이름으로 마무리를 지어보자.
우선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로 시작해보자.
“Outside of their particular area of expertise, scientists are just as dumb as the next person”
자신의 전문 분야 밖에서라면 과학자들 역시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우둔하다.
-리처드 파인먼-
이 말은 과학의 발전에 의해 ‘과학주의Scientism’가 팽배해진 20세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과학만능주의’, ‘기술 만능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주의는 일종의 철학이며 과학의 유한한 범주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잡을 경우, 자연과학 이외의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란 것은 다양한 학문에 적용가능하지만 역시 특정 분야의 기술이다.
천재물리학자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인공지능 전문가도 마찬가지이다.
인공지능개발에 기여해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을 포함해서, 다들 특정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중 어떤 이들은 특별히 인공지능이란 기술에 직접적인 연구자가 아니기도 하다.
인공지능 회사는 CEO 역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이윤을 최대화 해야하는 의무를 가진 기업인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렇게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갭 사이에서 ‘일반인’은 CEO가 마케팅에 나선 구조의 발화와 또 그걸 보도하는 언론 사이에서 ‘세일즈 스피치’를 듣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중 일부는 ‘과학’이 주는 이미지 덕분에 그들이 ‘과학적인 것’을 팔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다.
미국의 대공황부터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쳐온 반올림하면 100살이 되는 워렌 버핏은 뭐라고 말할까?
워렌 버핏은 이발사에게 가서 자기가 이발이 필요한지 묻지 말라고 말한다.
[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라는 전제가 어쩌면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학적으로는 이 역시 ‘아무도 모른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배타적 주장을 하는 것이기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라는 또 다른 긍정적인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의 주장과 그들의 주장 뒤를 살펴보니 기술에 대한 이해도 외에도 여러 가지 전제가 숨어 있었다.
어떤 것들이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영향을 미치는지 일부 나열해보자:
투자자의 관점에서이다. AI 회사에 대한 투자여부가 AI의 현단계와 미래에 대한 예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정 기업인의 특정 견해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이 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
또 일상 생활 속 온라인/오프라인 활동 비율, 게임 속의 가상현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게임으로 도피하는 청소년들이 있는 것만큼 현실보다 온라인 환경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생물학, 특히 분자생물에 대한 이해도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우열을 이야기할 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조프리 힌튼의 경우, 뇌의 ‘신경망’이 작용하는 원리에서 착안하여 ‘인공 신경망’을 구축하고 수 많은 레이어의 ‘뉴런’을 쌓아서 이미지나 음성 인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생물의 뇌의 신경망과 기계의 신경망은 다를 바 없고,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 어떤 것을 학습하는 것이 기계가 ‘학습’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믿는다. 철학자가 보면 아마 '자연계 과학자'의 철학적 얕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볼 때는 이미 기계는 ‘학습’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느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의식’, 혹은 ‘자아’를 발현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그의 관점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인터페이스’는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비하면 열등하다. ‘디지털 존재’는 손쉽게 복제가 가능하고, 물리적 제약을 받지않는다는 거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가 이런 견해를 밝히면 세간의 사람들은 그 찬란한 과학자의 권위에 ‘비평적 사고’를 적용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2011년, 스티븐 호킹이 “천국은 어둠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 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반팍하는 같은 대학의 수학자 존 레녹스 교수는 이렇게 반론했다.
그렇다면 저 역시
“무신론은
빛을 무서워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
라고 주장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 주장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조프리 힌튼의 주장에 적용시켜 볼 수 있겠다.
우선 조프리 힌튼의 생물학적 이해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아직 단세포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모르며
(아직 ‘살아있는 세포’ 안의 구성을 바꿔보며 실험하는 단계이다),
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장내미생물이 뇌에 미치는 ‘장-뇌-축’ 이론)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지,
인간이 어떻게 의미라는 것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는지,
인간의 지능이 정확히 어떻게 발달하는 지에 대해서도 여러 이론이 있을 뿐이다.
개념화된 이론상의 유사성은 만들 수 있으나,
유사성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동일하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철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미숙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닮은 것’이 ‘동일한 것’ 이 아니며, 유사성은 동일성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지식은 생물학적 기관들을 바탕으로 경험되고 개념화되고 추상화되어 축적된다.
‘미세한 전류’를 통한 신호, 그리고 여러 위치와 경로로 ‘네트워크’가 이뤄진 것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다를 뿐이다.
인간의 세포 안에서 미세소관(microtuble) 위를 걸어가는 운동단백질(motor protein)의 예를 보자, 키네신(Kinesin)과 디네인(Dynein)을 통해 우리 몸의 에너지원이 전달된다.
동영상을 직접 보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 https://youtu.be/wJyUtbn0O5Y?t=69
이미지 센서와 렌즈는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인간의 눈을 따라 잡으려면 멀었다.
이쯤 되면 도대체 ‘복제용이성’과 ‘확장가능성’ 외에 어떤 부분이 생물학적 인터페이스가 디지털 존재보다 열등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몸의 한 세포 안의 핵에서 이런 나노 단위의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대장균, 살모넬라 균에 있는 동력원인 ‘’편모 모터 (Flagellar Motor)’는 전기화학 에너지를 기계적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100%에 가까운 효율을 보인다.
인간이 만든 내연기관엔진은 엔진은 50%대이고, 전기 모터 중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ABB 모터가 나오거서야야 이런 박테리아의 모터의 효율에 근접하게 된다. 참고로 사이즈가 어마어마한 공장용 모터이다.
생물학적 지식 외에도 개인의 경험과 성향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프리 힌튼은 팟캐스트 인터뷰의 후반에 사별한 첫 아내와 두번째 아내 모두 암으로 잃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어서 본인이 은퇴하지 못하고 60대에 구글에 취직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경험을 겪는다고 모두 부정적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실의 경험과 삶 속의 고난은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소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지능, 인간의 의식의 발현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생명의 기원’이라는 미지의 분야로 발을 들여야 한다. ‘기원’까지 가는 건 너무 멀 수 있으니, ‘유전자’에서 멈춰보자.
생물학계에서는 유전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견해 역시 만장일치의 이론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맞았는지, 리처드 도킨스와의 토론 및 여러 매체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틀렸다는 걸 주정하는 데니스 노블 교수가 맞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거다.
일론 머스크 역시 청소년 시절 SF소설, 영화를 좋아했다.
X라는 알파벳을 좋아하는 것부터 아이들 작명,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GROK[그록]이라는 단어를 차용한 것 모두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GROK: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무언가를 깊이 또 직관적으로 이해하여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공계열, 좁게는 IT계열에 종사한 사람치고 SF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우리가 소비한 문화 콘텐츠는 우리의 가치관과 상상에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부터 화성에서 사는 인류 문명 등.
무엇을 보는가-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 지에 대해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