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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Apr 20. 2022

준비될 수 없는 부모라는 타이틀

"돈을 왕창 벌어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야겠어.
미래 내 가정의 부유를 위해 기반을 쌓자. 그 전엔 결혼은 없어.

 불과 20대의 끝자락까지 가슴속에 새기고 주변인들에게 선포하던 나의 의지였다. '세상은 의지대로만 살아지진 않더라' 라는 걸 처음 크게 느낀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어릴 적부터 정적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많은 사람과 있을 땐 늘 중심이 되고 싶어 했고, 하루라도 혼자인 시간이 싫어 여기저기 연락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술버릇은 또 얼마나 피곤한지 핸드폰에 저장된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해대는 이상한 버릇도 있었다.


 엄마는 날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키워주셨고 나도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편모 가정에 외동으로 태어나 바삐 일하시는 엄마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란 난 늘 심심하고 외로웠고, 나중에 내 아이들이 생기면 나처럼은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고 늘 이상하리 만큼 집착했던 것 같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평범한 남자.

무슨 바람이 불었었을까, 만난 지 두어 달 만에 상견례까지 마치고 반려자가 되어준 예쁜 아내와 19개월 된 작은 딸, 아내의 뱃속에 3개월째 자리 잡은 조금 더 작은 생명, 그리고 갈색 푸들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이 가정을 이룬 지 이제 막 3년 차에 들어선 나는 외동에 이른 나이부터 오랫동안 독립하여 살았었고, 대부분 시간 동안 외국에서 지내느라 제대로 된 명절 모임 한 번을 못 갔었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가족이란 단어가 조금 어색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밥그릇이 다섯 개 라니 참.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둘만의 추억도 제대로 쌓지 못하고 빠르게 식을 올린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계획에 없던 첫 번째 선물까지 내려왔다. '아토'라는 태명을 붙여준 이 아이가 생겼을 땐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도 육아도 처음이었기에 자신과 주변을 제대로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쫓기듯 바빴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아내도 이제 막 본인의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 시기에 집에 묶여 육아를 하다 보니 많이 힘들어했고, 우리는 서로 웃고 의지하다가도 시답잖은 일에 자주 얼굴 붉히며 눈물 흘리기도 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렇게 안팎으로 어색했던 일들을 배우고 기록해가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문득 내가 익숙했던 세상과 멀어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많이 바뀐 사회의 분위기 탓일까 아직 내 주위에 결혼한 지인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아이가 있는 집은 극히 드물다. 소위 말해 '딩크족'이라고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새로운 내 세상과의 공감대가 없어지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 자체도 많이 없어졌다. 세상과 단절되어 간다는 걸 새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다 그렇게 일하고 아이만 키우며 산다'라는 말도 '과연 그럴까..? 집집마다 다른 거 아냐?'라고 대충 흘려 넘기며 그저 먼 미래의 일일 줄만 알았는데, 결국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어떤 늪에 빠진 것 마냥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토가 태어난지 대략 2년 가까이가 지나고 슬 어린이집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엔 이제야 조금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새벽마다 깨서 울던 신생아 시절을 지나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 저녁에 육아 퇴근이란 걸 하게 된다. 그 짧게나마 찾아오는 자유가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때까지도 밖에서 주변인들을 만나 늦게까지 놀고 여러 문화생활을 즐기고 아내와 데이트를 하고 이런 것들은 그저 꿈같은 일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둘째가 내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토도 계획에 의해 철저히 준비된 일은 아니었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맞닥뜨린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게 또 적잖게 힘든 시간이었기에 둘째 소식에 당장 조금은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천사 같은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물론 아이가 주는 행복과는 분명히 다른 결이다. 요즘 MZ세대라 칭하는 우리 또래 일찌감치 부모가 된 분들이라면 혹시 공감할까 싶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셨을까.. 세상 모든 부모님들에게 무한한 리스펙이 생긴다.


 그렇게 준비하지 못한 채, 아니 준비할 생각도 못한 채 정말 가족을 구성해 버렸다. 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가며 배우는 것들이 정말 많다. 이 작고 여린 소중한 아이들이 태어나서 세상을 경험하고 배워가는 것만큼 부모들도 많은 걸 배워간다. 그렇지만 백지에 천천히 새로운 걸 담아가는 아이들에 비해 부모들은 비워야 할 것들도 무수히 많다. 그로 인해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다는 감정, 그런 감정에 우울해지다가도 오늘 아이들의 웃는 미소, 행복해하는 모습 하나에 결심하게 된다.


 이제 자유롭던 나만의 세상보단 새로 만들어 가는 너희의 세상이 힘듦 없이 행복해지도록 내가 조금 포기하더라도 튼튼한 나무가, 견고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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