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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Apr 25. 2024

이병률의 '사람'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유대칠의 슬기네 집)

사람

이병률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 지지요.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자주 만나자 한다. 자꾸 만나야 서로 친해진다며 말이다. 사실 난 그런 만남이 싫다. 바라지도 않고 바라는지 묻지도 않고 결정된 만남, 나는 그런 만남이 참 싫다. 힘겹다. 싫다는 말이 어렵지만, 나는 싫다는 말을 단호히 건넨다. 싫은 만남은 이어가 결국 남는 건 내 마음의 상처뿐이니 말이다. 조금도 의도하지 않는 그의 가시가 박히고 박혀 어느 순간 이게 내 살인지 상처인지 모를 지경이 될 것이니 말이다. 어느 순간 그 만남으로 남은 상처를 익숙하고 당연한 삶으로 여겨 버리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나 역시 가시가 되어 그의 가시보다 더 독한 날카로움으로 그를 향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니, 내 주변 모두를 향할 것이니 말이다.      

사람은 선인장이 된다.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난다. 또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난다.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다. 지나는 이가 스쳐도 아프지 않고, 배고픈 짐승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이슬이 그 널따란 이파리에 모이면 목마른 누군가의 목마름을 덜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사람도 그랬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은 널따란 이파리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널따란 이파리의 사람은 죽고, 가시 가득한 선인장이 된다. 널따란 이파리로 살다 생긴 상처가 아프고 아파 이젠 독한 마음에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살기 시작한다. 마치 사람이 그렇듯이 말이다. 누군가에게 이슬을 내어주면 다가와 이슬을 먹고 이파리도 먹고 줄기도 먹고 뿌리도 먹어버린다.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 조금의 고마움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그게 당연한 숙명이란 듯이 말이다. 그렇게 널따란 이파리의 무엇은 독해지고 독해진다. 그 독기는 그대로 가시가 된다. 사람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만남이라 말하지만 하나하나 차지하고 빼앗더니 조금의 미안함과 고마움도 없이 자기 좋음만을 따지는 그 차가운 미소 앞에 가시가 된다.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된다. 실패하지 않으려 그 가시로 나를 찌르고 괴롭히며 나 보이지 않게 웃던 그들과 같이 나도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어 뒤로 웃는다. “세상 모든 가시들은” 결국 “사람을 아프게” 한다. 어쩌면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프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마나 슬픈가. 그 아픈 가시에 자신도 자신을 안지 못하니 말이다. 그저 아프게만 할 뿐, 상처 주기만 할 뿐, 온 존재가 무기가 되어 있을 뿐, 자기도 자기를 앉아주지 못하니 말이다.      

가시, 가시가 이렇게 잘 사는 세상인 걸 보면 이 세상은 지금 사막이다. 한없이 덥지만, 한없이 차가운 가시의 공간 말이다. 그리고 이 “사막은 자꾸 넒어”진다. 선인장이 된 사람이 이젠 아무렇지 않다. 선인장이 된 사람이 이제 사람이 되어 버린 거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나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것이니.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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