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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Apr 28. 2024

신을 향한 걸음

유대칠의 신을 향한 걸음 

신을 생각할 때, 이미 신은 우리 생각의 한 조각이 되어 버린다. 그 생각이 다시 말이 되면 신은 말 조각이 되어 버린다. 내가 '빵'이라고 말할 때 '빵'도 말 조각이고, 그 말 조각이 의미를 가진 말이 되는 건 생각 조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빵은 그저 사전적인 의미의 빵 그 이상일 수 있다. 그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녹아든 것일 수 있기에 말이다. 눈앞에 빵은 겨우 하나뿐 인데, 그 땅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르다. 다양하다. 그런데 그 다양한 생각이 서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그 생각은 그 다양성, 즉 서로 다른 모습을 줄여 버리고 말이 된다. 말이 되면 혹은 그 말에 붙은 글이 되면 그 다양성은 이제 그냥 '빵'이 된다. 그렇게 '빵'이란 글 혹은 말 조각이 이젠 교육이 사용된다. 차이성이 사라진 빵이란 말과 글이 교육에 사용되자 그 빵은 차이성을 상실한 규격화 혹은 표준화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표준화된 빵은 거대한 기업의 공장에서 만들어져 각 지역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배송되고 우린 그것을 소비한다. 규격화 이전, 빵을 맛본 이가 있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고, 너무 심할 수도 있는 그 맛, 그러니 그 맛을 참지 못하는 이는 다시 자신이 그리운 작은 가게를 찾아 빵을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직접 빵을 만들 수도 있다. 말과 글이 되기 이전, 나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삶이 녹아든 바로 그 나만의 빵, 그 생각 속의 빵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다. 가만히 보면, 과연 객관의 빵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결국 사람은 주관의 빵을 소비하고 그리워한다. 처음 생각 이전 빵이 생각 속에 들어와 생각의 빵이 되고 그 빵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빵의 객관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나만의 빵이란 주관의 생각, 그 생각 속  빵이 그리울 뿐이다. 신 역시 비슷한 것 같다. 신도 주관 속에서 기능한다. 결국 나만의 신이다. 나만의 신, 그 생각 속 신이 대화의 장에서 서로 대화하며 우리의 신이 된다. 그 우리의 신은 빵이 그러하듯 규격화되고 표준화된다. 빵을 먹는 방식, 그 예의가 서로 다를 수 있듯이, 우리의 신이 표준화되면 그 신을 향한 태도도 표준화된다. 다양한 우리의 다양한 신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신을 향한 태도도 다양해질 수 있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아도 나의 입맛에 맞지 않은 빵은 먹지 않고 심하면 버리듯이, 우리의 신과 우리의 신에 대한 태도가 아닌 것은 무관심하거나 심하면 이단으로 배척한다. 그렇게 우리 편의 신이 만들어지고 그 우리라는 집단의 신, 우리라는 집단적 생각의 신이 서로 싸우는 동안, 개인은 결국 자신이 만나고 그리워하는 신이 우리의 신이 아니라 생각하게 되고, 자기 신을 찾아 떠나며, 우리의 신, 그 개념에서 이탈하는 과정을 이어간다. 그 과정이 마치 언어를 넘어서 혹은 생각을 넘어서 신을 찾아가는 것 같지만, 언어와 생각을 벗어나면 우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결국 기존 언어와 생각에서 자기 신을 찾지 못한 이가 새로운 자기 언어와 생각 속에서 자기 신을 찾아간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2024 04 28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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