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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May 17. 2024

정끝별의 '저녁에 입들'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유대칠의 슬기네 집)

저녁에 입들

정끝별     


한 이불에 네 다리를 꽂지만 않았어도     


서로 휘감기지도 엉키지도

그리 연한 속살이 쓸리지도 않았을 텐데     


한솥밥에 내남없는 숟가락을 꽂지만 않았어도     


서로에 물들지도 병들지도

그리 쉽게 행복에 항복하지도 않았을 텐데     


한 핏줄에 제 빨대를 꽂지만 않았어도     


목줄도 없이 묶인 채 서로에게 버려지지도

무덤에서조차 그리 무리 지어 눕지도 않았을 텐데     


한 우리에 우리라는 희망을 꽂지만 않았어도  

   

두부에 박힌 미꾸라지처럼 서로를 파고들지도

닫힌 지붕 아래 그리 푹푹 삶아지지도 않았을 텐데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우리가 된다는 건, 그 자체로 희망이지만 또 힘겨움의 시작이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한 이불에 네 다리를 꽂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남이 되어 서로의 슬픔이 남의 슬픔으로 지나가는 이야기로 머물렀을 거다. “한솥밥에 내남없는 숟가락을 꽂지만 않았어도” 우린 정말 너의 배고픔도 힘겨움도 남의 이야기로 살며 그저 홀로 살았을 거다. “서로에 물들지도 병들지도” 않고 남이 되어 살았을 거다. 그러면 “그리 쉽게 행복에 항복하지도 않았을” 거다. 서로에 물들어 병들어도 우린 행복했다. 어쩌면 그 행복에 항복해 어쩔 수 없이 도저히 어쩔 수 없이 너의 앞에 나는 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사랑의 크기가 서로 달라 누군가에겐 “목줄도 없이 묶인 채 서로에게 버려”진 것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고, 그 아픈 마음으로 “무덤에서조차 그리 무리 지어 눕지도 않았”어도 되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너로 인한 행복에 항복할 수 없었기에 너의 앞에 나는 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홀로 행복한 행복의 그 외로움보다 너와 더불어 행복했던 그 힘든 행복이 나에겐 더 소중했기에, 그 행복에 항복하고 “한솥밥에 내남없는 숟가락을 꽂”으며, “한 이불에 네 다리를 꽂”으며, “두부에 박힌 미꾸라지처럼 서로를 파고들”어 “서로에 물들”어 산 거다. 그 삶이 나에겐 행복이었기에. 그 삶이 온전히 나의 삶이기에, 그 모습이 온전히 나의 누구임이기에 말이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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