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한 날의 이야기
며칠 전의 일이다. 남편과 평소처럼 대화를 하던 중에 사소한 말다툼이 감정싸움으로 커졌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서운함을 토해내느라 울음도 터졌다. 남편도 나도 잠시 이성을 잃고 서로를 몰아붙였다. 그 순간, 방 안에서 흥얼거리던 은우의 노랫소리가 멈췄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문 뒤에서 숨죽이고 있을 내 아이가 보였다.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남편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운 듯한 얼굴을 지운 뒤 방으로 들어갔다. 은우는 잠자리에 누워 눈을 꼬옥 감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더욱 메었다.
"은우야, 큰 소리가 나서 놀랐지?"
그제야 눈을 뜬 은우가 입을 삐죽거리며 내게로 와 안겼다.
"네 엄마,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무서웠어요. 방문을 꽉 닫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마음이 슬프고 속상해요. 울음이 나올 것 같아요."
부모의 싸움이 아이들에게는 전쟁과도 같은 공포라는 말이 떠올랐다. 두려움에 떨었을 은우의 모습을 상상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은우야, 유치원에서도 친구들끼리 다툰 적 있지? 엄마랑 아빠는 부부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해. 그래서 가끔 다투기도 한단다. 하지만 곧 화해할 거야. 원래 친구랑 싸우기도 하지만 화해하면 다시 잘 놀잖아."
"맞아요 엄마, 책에서도 봤어요.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자주 다툴 수 있대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라서 금방 화해한다고 했어요."
"책에서도 봤구나. 맞아, 엄마 아빠는 사랑하는 사이라서 자주 다투기도 하지만 화해도 잘해.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은우를 놀라게 한 건 엄마 아빠의 실수니까 그 부분은 사과할게. 미안해."
"네, 이제 괜찮아졌어요. 엄마~ 아빠~ 이제는 사이좋게 지내세요!"
은우의 훈계(?)를 받으며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었다. 은우가 본인의 두려움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이라서 감사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잘 해결해 줄 수 있음에 다행이다. 우리 부부의 다툼이 은우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일 때가 있다. 나 역시 부모님의 싸움이 무섭고 두려웠다. 동생과 함께 숨죽여 떨었던 기억이 상처로 남아 있다. 그때 한 분이라도 상황을 설명해 주었으면, 우리의 두려움을 덜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다. 왜 그때 그러셨을까? 최선이었을까?
지난주에 읽은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다. 무지 때문에 저지른 부모의 죄를 용서하라.' 30여 년 전 젊은 부부였던 부모님도 무지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으리라. 은우가 솔직하게 두려움을 말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될 수 있었다. 나는 적어도 은우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