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여름을 보내며
나는 더위도 많이 타고, 추위도 많이 탄다. 하지만 '여름이니까 덥고, 겨울이니까 춥지'라는 생각으로 무난하게 넘기는 편이었는데, 올 2024년의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이렇게까지 더울 수 있나 싶을 만큼 지독하게도 더웠다. 인간적으로 추석만큼은 반팔과 긴팔의 중간 옷을 입여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9월 중순이 지나 찾아온 추석까지도 참 오래, 길게, 대단히 더웠다.
학창 시절, 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주변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었다.
"더울 때 시원한 데서 일하고, 추울 때 따듯한 데서 일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해."
공부를 적당히 열심히 했고, 적당히 잘한 나로서는 학원강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여름에는 카디건이 필요할 만큼 에어컨이 빵빵했고, 겨울에는 패딩이 필요 없을 만큼 열기가 가득했다. 여름과 겨울의 한복판에 있을 때마다 예전에 어른들께 들었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공부 열심히 하길 정말 잘했다.
지난달 전기세만 순수하게 24만 원이 나왔다. 누진세 다음 등급으로 가기 직전이라 덜 나와 그나마 다행이라며 남편이 말했다. 2층 집을 에어컨 빵빵하게 틀며 시원하게 보낸 것 치고는 괜찮은 금액 아니냐며 서로를 위로했다. 특히나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지 않는가. 여행 가서 머무는 호텔의 1박 비용으로 한 달을 시원하게 살았으니 되었다. 까짓 거 24만 원밖에 안 나왔으니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지난주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넓어진 공간만큼 내년 여름에 전기세가 얼마나 더 나올지 궁금하다.
3일 내내 제주에 비가 왔다. 장대비라고 말하기도 아까울 만큼의 무지막지한 비가 왔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환기창이 열린 욕실로 들어가려는데 꽤나 선선했다. 어머나, 드디어 여름이 지났나 보다. 처음으로 느낀 공기의 온도에 꽤나 당황스럽기도 했다. 더 이상 아침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된다니, 창문을 열면 고온다습한 바람이 아닌 시원한 공기가 느껴진다니, '더워 죽겠네'라는 말을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된다니.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요상타. 막상 여름이 지나니 섭섭하다. 그래도 여름까지는 한 해의 한복판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올해도 얼마 안 남았네'를 확인받는 것 같다. 꽤나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깊게 훅 들어온다. 언제 그렇게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하늘은 파랗고 높다. 그래, 가을이구나. 가을이 맞는구나. 가을을 타는 거 보니 나이 들었나? 아니,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 뇌과학자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지금 쓸쓸한 기분으로 가을을 타는 게 아니라, 가을을 온전히 느끼며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쉬워만 하기에는 가을이 참 짧다. 올 가을, 내 아이의 일곱 살의 가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행복하게 보내야겠다. 지독했던 여름 안녕, 반가운 가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