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해 줄 수 있는 것
그렇다고 해서 내 아이가 영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 특출 난 부분이 있을 뿐, 세상이 정한 영재는 분명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그럼에도 제목에 '영재'를 넣은 것은 최근에 몇몇 분들에게 '은우는 영재가 분명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은우를 어떻게 키웠는지에 대한 질문도 요즘 들어 자주 듣는다.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은우를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은우는 올해 한국 나이로 7살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발달장애의 경계에서, 혹은 자폐 스펙트럼의 의심에서 한참을 방황했었다. 그저 아이의 발달에만 관심을 쏟을 뿐, 학습적인 것에는 욕심을 낼 여유가 없었다. 6살까지 기관에 보내지 않으며 가정 보육을 했고, 7살인 현재도 유치원 대신 숲탐험대를 다니고 있다. 은우에게 한글, 수학, 알파벳 등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행동 발달이 또래 친구만큼만 이라도 따라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랬었는데, 최근에 은우를 담당해주고 계신 발달치료 선생님께서 영재검사를 권유하셨다. '은우는 정말로 똑똑한 아이니 잘 키워보자'고 어깨도 두드려 주셨다.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것을 참느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7살 은우와의 대화)
"엄마,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 이렇게 세 나라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글쎄, 어떻게 됐어?"
"신라가 세 나라를 통일했어요. 그래서 통일신라 시대가 되었어요."
"어머나~ 정말? 그랬구나. 신라가 통일을 했구나."
"그런데 신라가 자기의 힘으로 통일을 한 게 아니에요. 당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아이고 그랬구나. 신라는 왜 당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자기들이 힘이 약해서요. 그래서 힘이 더 센 당나라에게 도와달라고 한 거예요. 엄마는 당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한 신라의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엄마 생각에는 너무 성급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은데. 은우는 어떻게 생각해?"
"제 생각도 그래요 엄마. 그 결과 당나라가 우리나라를 뺏으려고 했거든요. 저는 그냥 우리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통일 신라에 대한 은우의 이야기가 30분째 이어진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한국사 지식들이 가물가물한데, 은우 덕분에 되살아난다. 더듬더듬 말하는 아이의 말을 30분 넘게 들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업무도 있고, 밀린 집안일도 있고, 무엇보다도 피곤한 날에는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꼭 지키는 원칙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며, 아이의 입을 바라봐주며, 진심으로 끄덕이며 경청하는 것! 이것만은 은우를 위해 꼭 해주자고 다짐했다.
'어머나, 그랬구나'라는 말에 아이는 더 신나게 본인의 지식을 뽐낸다. 잘 모르는 질문을 할 때에는 '글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되물으면 아이는 본인의 생각을 들려준다. 그렇게 30분 넘게 떠들던 아이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신나게 말한다.
"엄마, 제가 더 공부해서 또 알려줄게요."
그 아무도 아이에게 공부를 권한 적이 없지만, 아이는 스스로 공부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부모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해야만 하는 책임감도 갖게 되었다. 아이의 공부를 체크하고 검사하는 대신,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자율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세상세상 처음 듣는 재밌는 이야기라는 듯이 말이다.
학원을 보내고, 학습지를 풀리고, 문제집을 사주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조금 더 피곤한 일을 선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30분 이상 아이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중간 말을 자르며 '이제 그만 이야기하라'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대단한 건 못해주겠으니 '경청'만이라도 해주자는 합의에 이르렀고, 힘들지만 매일매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다방면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게 된 우리 은우. 어느덧 한국사와 세계사를 달달 외우며 지식을 넓혀가고 있다.
이것이 영재 소리를 듣게 된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