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52
1. SNS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도 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나면 시간을 허투루 쓴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데,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상당히 언짢은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다. 좋은 소식을 듣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하고, 새로운 곳을 알게 되고, 슬픈 일에 눈물이 나고,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고, 부럽다고 질투하고, 말도 안 되는 사건에 화가 나고, 세상이 어이없고, 우울한 마음이 올라오고,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하고. 좋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아닌 경우도 많아서 결국에는 크게 작게 영향을 받아 버린다. 오래 머물지 말아야지 자꾸만 다짐하면서 또다시 흠칫 놀라버리는 날이 되풀이되겠지.
2. 여행
한 친구는 올봄에 그렇게 원하던 몽골에 다녀왔다. 자연 옆에 자연, 그 옆에 또 자연을 느끼고 오게 되었던 계기. 광활한 초원과 사막, 생각보다는 많거나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던 별, 초원에서의 밤, 기다리는 시간, 오랜 이동, 그리고 신기했던 오아시스.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던 친구의 눈이 반짝였다.
다른 친구는 지금 이탈리아의 아시시에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시시는 글라라 성녀와 프란치스코 성인이 태어나고 활동한 도시이다. 작은 동네여서 여행자들은 보통 아시시를 당일 코스 혹은 길어도 이틀을 넘기지 않는다. 십 년 전, 나는 아시시에서 거의 일주일을 머물렀다. 글라라로 잘 살아가고 싶어서 글라라 성녀를 더 가까이서 알고 싶었다. 그 영성을 닮고 싶은 마음에. 친구는 글라라 성녀 성당(산타 키아라 성당 Basilica di Santa Chiara)에 다녀왔고 내 생각을 하며 기도하고 미사를 드렸다고 했다. 몸과 마음을 잘 챙기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새언니는 밤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간다. 여성들이 남편들과 아이들과 떨어져서 떠나는 여행이다. 친정어머니와 여동생과 새언니, 셋 만의 여행이다. 지난해 봄, 처음으로 셋이 꽃구경 갔던 일본 여행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패키지여행이라 여유롭지는 않았겠지만 시골에서의 일들보다는 덜 분주하고 덜 복잡하고 덜 힘들었으리라 예상했다. 새언니 어머님은 시골 일로 늘 바쁘셨고, 동생분은 아들이 셋이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달러는 소소하게 잘 쓰일 거라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아끼는 동생이자 대녀인 한 친구는 다낭 여행을 준비 중이다.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에 들뜬 마음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핑크 성당에서 대축일 미사도 드릴 거고 망고 젤리 같은 것도 사 오겠다며 활짝 웃는다. 나도 네 캐리어에 숨어서 따라가겠다고 농담 삼아 말을 건네고는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해외여행에 어떤 게 필요할지 무얼 가져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있다.
3. 삶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을 떠난 지 오래전이라 여전히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이제는 확신할 수가 없다. 전에는 일을 하고 돈을 모아 국내든 해외든 틈틈이 여행을 다녔는데, 지금은 일을 해도 생활비보다 적으니,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여행을 생각하면 돈이 먼저 떠오른다.
가까운 이들의 다양한 여행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울렁였다. 나에게도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 쉼은 낯설거나 익숙한 장소로의 여행에서부터 온다.
작년 1월, 주 수입원이 끊기고 그때부터 나는 계속 긴장 속에 살고 있다. 일을 늘리지 않는 대신 글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손에 잡히는 물성의 결과물이 없어서 위축되고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작업을 하지 않아도 집에만 있어도 제대로 쉬는 게 아닌 날들을 2년 가까이 보내고 있다. 다 내려놓고 싶다가도 그러면 또 뭐 하나 싶고,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에 한없이 가라앉다가도 막상 작업을 하면 집중하고 기운이 올라오는 나를 느끼게 된다.
여행이라...?!
개수만 많은데 생활에는 전연 도움이 되지 않는 통장들을 괜히 뒤적뒤적 살펴본다.
새언니에게 줄 달러를 환전한 내역이라고 생각하며 클릭한 곳에서 수령 가능한 홍콩달러를 발견했다. 원화 금액은 145,720원이고 외화로는 HKD(홍콩달러) 1,000, 원화로 재환전이 가능해서 살펴보니 178,330원이 되어있었다. 삼만 원가량 차이가 난다. 순간 혹했다. 돈으로 바꿀까.
난 이 홍콩달러를 왜 사놨을까. 2017년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홍콩에 다녀왔던 게 그 해던가. 그렇다면 왜 이 돈은 찾지 않았으며 어째서 여기에 그대로 있는 건가.
홍콩의 번잡한 시내에서 벗어나 고불고불한 산을 한참 지나 도착한 해변이 생각난다. 그 바다에 발도 담그고 나무로 그늘져 아름답던 한 구석에서 사진도 찍고 햇볕이 따스한 모래사장에 누워서 책도 읽고 과일도 먹던 그날이 떠올라 그리움이 가슴 가득 찬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해가 질 무렵에는 고소하고 진한 에스프레소에 연어 샐러드를 먹기도 했다.
나의 빙글한 미소를 살려주게 하는 기억.
아시시에 지금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비행기 표가, 그 금액이 얼마나 될지 차마 찾아보지 못했다. 대신 찰나의 기억이 여유로웠던 홍콩에서의 나로 이끌어 주었다.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시보다는 홍콩이 더 가까우니까, 언제든지 갈 수 있겠지. 홍콩달러는 여태 모르고 지냈던 것처럼 고스란히 이곳에 남겨두자고 마음먹는다. 비상금이 든든히 있으니 비행기 표만 끊으면 갈 수 있다. 이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었다.
여성의 인권과 죽음과 부재로 마음이 어수선한 날들에 이로써 조금은 따뜻해졌다.
참으로 이기적인 마음이다.